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20

좋은 글은 갖춰야 할 조건 있어
쉽고 간결하고 명료하고 정확해야 좋은 글
쉽게 쓰려면 완벽한 이해가 필요
군더더기를 싫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짧은 글에 깊은 뜻 담는 이가 고수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잘 쓴 글은 어떤 글인가요?” 좋은 글의 조건을 묻는 사람이 많다. 반응을 일으키는 글? 얻는 게 있는 글? 그때그때 분위기에 맞춰 대답한다. 답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면 이런 소리 듣기 십상이다. “에이, 그런 고리타분한 거 말고요.” 그래서 주저한다. 여기에도 쓸까 말까 망설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쉽고 간결하고 명료하며 정확하게 쓰라는 주문이다.

쉽게 쓰기

글을 읽다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읽는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나는 고전을 읽다가, 고매한 교수님의 동영상 강의를 듣다가 알아듣지 못했다고 주눅 들지 않는다. 다만, 나는 쉽게 쓰겠다고 다짐한다. 확실히 알 때까지 쓰는 걸 늦추거나, 모르는 것은 쓰지 않겠다고 되뇐다.

확실하게 알아야 쉽게 쓸 수 있다. 요즘 강의하면서 절실히 느낀다.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을 수강자가 물어보면 어렵게 대답하게 된다. 대통령 연설문 쓸 때도 잘 모르는 내용은 나조차도 무슨 소린지 모르게 썼다. 신문기사도 기자가 잘 알고 있으면, 번역서도 번역자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쉽게 쓴다.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도 어려운 글을 만들어낸다. 라디오 방송 진행을 한 적 있다. 게스트가 어렵게 말하면, 진행자인 나는 아는 내용일지라도 청취자를 위해 쉽게 풀어서 말해달라고 주문해야 한다. 마치 몰라서 묻는 것처럼. 그러나 이게 쉽지 않다. ‘진행자가 그것도 모르나? 수준이 낮구먼.’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다. ‘내가 알면 남도 알 것이다’라는 예단, ‘이 정도도 모를까’ 하는 교만도 글을 어렵게 한다.

문제는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남들에게 어려운지 쉬운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방법이 있다. 쓰고 싶은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해보라. 말하면서 알 수 있다.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를 말이다. 또 상대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내 말이 어려운지 쉬운지.

쉽게 읽히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가. 한자어를 가급적 쓰지 않는다. ‘명약관화하다’는 ‘불 보듯 뻔하다’로 쓴다. 어려운 개념이나 복잡한 내용은 비유나 사례를 들어 이해를 돕는다. 전문용어는 알기 쉽게 풀어써 준다. 배경과 맥락 설명에 충실한다. 한 문장이나 한 문단 안에는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다. 추상적이거나 현학적 표현을 삼간다. 쉬운 것부터 쓰고 어려운 것으로 나아간다. 첫째, 둘째, 셋째 정리해준다. 긴 글에서는 이정표를 세워 알려준다.

문장도 문어체보다는 구어체로 쓴다.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단문으로 쓴다. 수식어는 피수식어 바로 앞에 둔다. 이중부정이나 피동형 문장을 피한다. 무엇보다 물 흐르듯 술술 읽히게 쓴다. 읽다가 스크롤을 다시 위로 되돌리지 않게 한다.

■ 간결하게 쓰기

노무현 전 대통령 글을 쓰는 동안 연설비서관실 다섯명이 늘 함께 모여 고쳤다.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은 불필요한 걸 빼는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군더더기를 싫어했다. 보고서도 한장짜리를 요구했다. 그가 마지막 남긴 글에도 뺄 게 없다. 딱 한 문장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에서 군더더기가 눈에 띈다. 왜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고 하지 않았을까. 연설문이었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너무’와 ‘들’은 사족이 아니다. 그의 마음이었다.

‘쉽게’와 ‘간결하게’는 서로 충돌한다. 쉽게 쓰려면 길어지고, 간결하게 쓰면 어렵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면 좋은 글이 된다. 짧은 글에 깊은 뜻을 쉽게 담아내는 이가 고수다. ‘너 스스로를 알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진리는 단순하다.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수식어나 수사법이 과다하지 않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달덩이 같은 딸’ 같은 상투적 표현, ‘가장 최초로’, ‘새로운 신제품’ 등의 동어반복이 없다. 힘이 있고 직관적이다. 응축의 미가 있고 여운이 있다.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간결함은 이런 자세에서 나온다. 내가 이것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따져본다. 애써 찾은 자료를 써먹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가지 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추가할 것 보다는 뺄 것을 먼저 찾는다. 써야 할 것을 안 쓰는 잘못보다 안 써야 할 것을 쓴 잘못이 크다고 믿는다.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을 추려내고, 불필요한 부분 걷어내고, 핵심을 잡아내고, 사물의 특성이나 속성을 추출하는 역량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이 없는 나는 표어나 슬로건, 광고 카피, 책의 목차, 칼럼 제목 등에서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 명료하게 쓰기

식사 자리에서 ‘간단하게 하시죠’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 모호한 말이다.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는 ‘간단한 식사’는 의미가 여럿이라고 했다. 간단한 재료로 만든 식사, 돈을 들이지 않은 식사, 준비하기 쉬운 식사 등등. 밥을 사는 사람이 ‘간단하게 하시죠’ 하면 결례가 될 수 있다. ‘돈을 들이지 않은 식사’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 소식하자’는 뜻으로 썼더라도 말이다.

명료하지 않을 때 ‘애매모호하다’고 한다. 그런데 ‘애매’와 ‘모호’는 적용되는 상황이 다르다. 애매는 뜻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자유’, ‘민주주의’ 같은 말이 애매한 단어다. 손에 쥐여주듯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반해 모호는 뜻이 협소하고 한정적이어서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됐어요’ 같은 말이다. 나는 어렸을 적 ‘됐어요’를 입에 달고 살았다. 할머니가 밥 먹었냐고 물어도, 필요한 거 없느냐고 물어도 ‘됐어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가 힘드실까 봐, 돈이 없을까 봐 그랬다.

우리말은 암시적이고 우회적이다. 이리저리 에둘러 표현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는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하려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그 말을 끝내 하지 않고 듣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 두기도 한다. 상대와의 관계, 상대에 대한 배려, 분위기와 맥락을 중시한다. 그러나 글까지 그래선 오해를 낳기에 십상이다. 글에는 이심전심이 없다. 명료해야 한다. 글은 의미 전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명료하다는 것은 주제가 명확하고 의미가 분명하다는 뜻이다.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제목에서 밝힌다. 글의 서두에 명시한 후, 말미에서 거듭 상기시킨다. 주제어 혹은 주제 문장을 반복한다. 주제에서 벗어난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의미를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서는 모호한 표현을 쓰지 않아야 한다. ‘사냥개가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가는 노루를 쫓고 있다’에서 피투성이가 된 건 사냥개인가 노루인가. ‘적당히, 적절하게, 일각에서는, 최근에, 머지않아, 어디선가’, 그리고 지시대명사의 남발을 삼가야 한다.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보다는 ‘선거에서 떨어졌다’, ‘3만여명’보다는 ‘3만450명’이라고 쓴다. 한마디로 똑 부러지게 쓴다.

명료한 글은 또한 정의, 주체, 상황이 분명해야 한다. ‘글이 싫어졌다’란 문장에서 글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읽는 글을 의미하면 독서가 싫어진 것이고, 쓰는 글을 뜻하면 작문이 싫어진 것이다. 싫어진 주체가 학생이라면 공부가 싫어진 것이고, 작가라면 문학이 싫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글이 싫어졌다면 글이 부역의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일 것이고, 독재 치하에서 글이 싫어졌다면 행동하지 않는 글이 싫어진 것일 수 있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쓰는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할 말이 분명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려고 할 때도 글은 모호해진다. 비록 불충분할망정 자신만의 입장과 시각을 가져야 한다. 편견이 될지언정 자기만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봐야 한다. 관점이 확실한 글이 명료한 글이다.

■ 정확하게 쓰기

판사인 후배에게 연락이 와서 “요즘 법관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법관, 법조인, 법률가를 구분해달라고 한다. 통상 법관은 판사를 지칭하고, 법조인은 판사, 검사, 변호사를 말하며, 법률가에는 이들 외에 법률을 연구하는 학자 등까지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검사를 나무랄 거면 법관이라고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건 정확성이다. 정확성을 의심받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부정확하면 모든 걸 잃는다. 무엇보다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 수치나 이름, 연도, 지명을 비롯한 사실의 오류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확신이 가도 원점에서 확인해야 한다. 원문을 찾아보고 출처를 확인해야 한다.

사실 확인에만 그쳐서도 안 된다. 거짓과 왜곡이 없어야 한다. 불편부당해야 한다. 아전인수, 견강부회는 금물이다. 확실한 근거를 갖고 말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한다.

이 밖에도 정확한 글은 오탈자가 없다. 단어가 제자리를 지킨다. 꼭 맞는 어휘를 선택한다.

쓰고 보니 이 글도 앞서 말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충족 못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많이 어긋나 있다. 그러나 그런들 어떠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거다. 세상에 하나뿐인, 남과 다른 나만의 글을 쓰는 거다. 나답게 쓰면 좋은 글이다. 글쓰기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끝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