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글쓰기에 관한 글쓰기 19
모든 글에는 목적이 있어
타이밍이 중요한 사과 글
거절하는 글은 관계 악화 막는 게 목적
위기 대처하는 글은 사실 파악이 중요
위로가 필요한 시대 진심 담은 위로 글
좌절한 이에게 큰 도움이 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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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사람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네 가지라고 했다. 잘난 체하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 멋진 문장을 쓰고 싶은 미학적 열정, 진실을 기록하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적 목적인데, 그는 이게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라고 했다. 모든 글에는 목적이 있다. 쓰는 이유가 있고, 써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일상에서 쓰는 이런저런 글. 목적을 이루고 목표가 이끄는 글은 어떻게 써야 하는가.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쓰기 이야기다.

사과하는 글

사과의 목적은 용서받기다. 사과에 인색하지만 않아도 ‘나쁜 놈’ 소리는 안 듣는다. 용서받는 사과가 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빠를수록 좋지만, 너무 이른 사과는 무성의해 보일 수도 있다. △내용이 구체적이고 명료해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면 안 된다. 마지못해 해서도 안 된다.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조건 달면 안 된다. 전면적, 전폭적일수록 좋다. 주어가 나여야 한다. 유체이탈 화법은 곤란하다. 핑계와 책임 전가는 화를 더 키울 뿐이다. △논리적 해명보다 정서적 호소가 중요하다. 후회한다, 부끄럽다, 내 잘못으로 얼마나 화가 나느냐.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물론, 기왕에 하는 것 상대가 미안할 정도로 기대 이상의 사과를 하는 게 좋다. 사과 글에서 여섯 가지는 필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 서술(시인), 진심으로 뉘우침(반성), 피해자에게 미안함 표시(사과), 잘못의 근본적 원인 파악(규명), 보상 또는 복구대책 언급(책임), 재발 방지 약속(다짐)이다. 일본의 사과가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칭찬하는 글

직장상사, 선생님, 부모가 하는 말은 칭찬 아니면 꾸중이다. 정도에 따라 ‘매우 칭찬’, ‘그냥 칭찬’, ‘그냥 꾸중’, ‘매우 꾸중’으로 나뉠 뿐이다. 꾸중보다 칭찬이 많은 게 바람직하다. 둘 다 해야 한다면 꾸중으로 시작해 칭찬으로 끝내는 게 좋다. 칭찬의 목적은 무엇일까. 주마가편(走馬加鞭), 즉 더 잘하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잘했다고 말한다. 그 ‘무엇’은 결과보다는 과정, 재능보다는 노력에서 찾는다. △잘한 이유는 무엇인지 실제 사례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앞으로 무엇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는 것까지 얘기한다. 이를 테면 격려의 말이다. 칭찬이건 격려건 잘하기 위해선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한다. 영혼 없는 칭찬은 안하느니만 못하다. 칭찬이 의례적으로 느껴져선 안 된다. 과해도 안 된다. 조미료 많이 넣은 음식은 느끼하다. 칭찬의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여성 외모에 대한 칭찬은 신중히 해야 한다.

꾸짖는 글

나는 아내에게 자주 혼난다. 술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다. 애정의 발로라는 건 알지만, 혼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반성과 개선이다. 무턱대고 “어떻게 허구한 날 술이냐”고 말하면 뉘우치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한다. “내가 언제?” 물론 그러다 더 혼나지만 바뀌진 않는다. 누구나 자기가 우선이고, 누구에게나 나름의 사정은 있는 법이다. △사실을 말해야 한다. “이번 주에만 월, 화, 금 세 번째다.” 이렇게 적시해줘야 한다. △자신의 심경을 말해야 한다. “당신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다.” △아울러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꾸짖게 됐음을 밝힌다. “당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그래야 공감한다. 사실에 심정을 추가해줘야 한다. 글 쓰는 사람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이유다. 꾸중할 때 조심할 것도 있다. 인격을 건드리지 않는다. 근거 없이 의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과거까지 들추진 않는다. 같은 질책을 반복하지 않는다.

거절하는 글

살다 보면 거절하는 글도 종종 써야 한다. 거절 글의 목표는 관계 악화 방지다. 이를 위해 △자신을 믿고 부탁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 △거절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한다. △거절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당신이 싫거나 당신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해서 거절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또한 거절 사유를 부탁하는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서 찾으면 상처를 덜 줄 수 있다. △대안이 있을 경우 제시해주는 것도 좋다. 그러나 여지를 남겨 희망 고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들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거듭 표명한다.

부탁하는 글

부탁 글은 거절하지 않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쓰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어려움을 너무 강조해 과한 부담을 준다. △언젠가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 적 있다고 하거나, 들어줬을 때 무엇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왜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안 들어주면 나쁜 사람인 거처럼 몰아간다. △들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부탁하는 사람이 스스로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능력 있다고 추켜세우며 부탁 내용이 당신에게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한다.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선택지를 줘서 고르게 하는 것이다. 선택지 안에 들어주기 쉬운 일과 어려운 일을 넣는다. 들어줄까 말까의 선택이 아니라,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고민하게 한다. 결국 쉬운 것 하나는 들어준다. 다른 방법 하나는 상대가 거절할 이유를 생각해보고 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내용으로 선수를 치는 것이다.

위기 대처 글

위기가 닥쳤을 때 한마디로 규정해야 한다. 위기상황이 되면 언론이 뭔가를 쓰기 위해 안달한다. 정보 공백 상황이 지속될수록 위기는 증폭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이 전부는 아니다. 잘못한 게 없더라도 밖에서 잘못한 것으로 보면 그것도 사실에 속한다. 공중의 시각, 즉 ‘인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진짜 사실과 밖에서 믿는 사실, 이 두 가지를 다 봐야 한다. 그게 객관적인 관점이고, 사태를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한마디로 규정한다. “이번 사태는 이것이다.” 내게 유리하면서 밖에서도 인정하는 한마디를 찾아야 한다. 유리함과 인정, 사실과 인식 사이에서 절묘한 위치를 찾아 거기 서야 한다. 그 한마디가 파장의 크기와 이후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개하는 글

‘자소서’를 비롯해 소개하는 글의 목적은 누군지 알려주는 것이다. 읽고 나서 그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라야 한다. 들어갈 내용은 궤적과 인성이다. 살아온 궤적은 하드웨어이고, 인성은 소프트웨어다. 궤적으로 인성을 보여줘야 한다.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면 △인생 연표를 작성해보고, 글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를 남길지 생각해본다. △그런 이미지를 각인하는 데 적합한 일화를 찾아 플롯에 따라 서술한다. ① 어떤 상황, 환경, 배경에서, ② 무슨 과제를 부여받아, ③ 그 일을 어떻게 해냈는데, ④ 이런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실패를 경험했고, ⑤ 위기, 전환점은 무엇이었으며, ⑥ 누구의 도움을 받거나 누구와 협력했고, ⑦ 결과는 이랬으며, ⑧ 교훈, 시사점은 무엇이었고, ⑨ 그런 경험에서 어떤 성장과 성숙을 이뤘다. ⑩ 이런 역량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

축하하는 글

축하할 일이 많다. 천하의 명문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축하받는 사람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겠다는 의욕에 불탄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생일 카드 하나 쓰는 것도 힘이 든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 축하의 목적은 본전 지키기다. 욕심부리기보다는 욕먹지 않기를 권하고 싶다. 펀치를 날리지 말고 가드를 올려라. 졸업식에서 욕먹지 않고 축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덕담만 잘하면 된다. 우선 대상을 빠트리면 안 된다. 학생, 선생님, 부모님, 학교는 필수이고, 내빈은 선택이다. 먼저 학생과 부모님께 ‘축하’ 인사를 해야 한다. 선생님과 학교, 그리고 내빈에 ‘감사’ 표시를 해야 한다. 학생과 학교에 대해 아낌없이 ‘칭찬’한다. 공부하느라 고생한 학생, 뒷바라지한 학부형의 노고를 ‘위로’한다. 학생들에게 잘 될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러면 기본은 한다.

감사하는 글

감사의 목적은 우호적 관계의 형성과 유지이다. 사소한 일, 예상하지 않는 일에 감사를 표하는 게 효과적이다. 감사할만한 일에 감사하는 건 예의나 격식을 갖추는 일에 불과하다. 감동이 없다. ‘어떻게’ 보다는 ‘무엇에’ 관해 감사하는지가 중요하다. 감사의 대상, 감사 글의 소재를 잘 찾으면 된다.

위로하는 글

위로가 필요한 시대다. 예기치 않은 사고와 이런저런 일로 힘든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만 있으면 살만한 세상이기도 하다. 위로받는 사람은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회복이 목적인 위로 글에 들어가야 할 것은 세 가지다. △당신의 심정과 처지에 공감한다는 내용. ‘그래, 그랬구나’ 하면서 탄식과 애통을 담담하게 받아주는 수준이면 족하다. 그 고통의 깊이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당신보다 더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둥, 혹은 참으로 안됐다며 동정하거나 충고하는 건 금물이다. △다음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내용이다. 긍정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전에도 너는 이렇게 잘 극복했잖아. 잘 될 거야. 넌 잘할 수 있어. 나는 널 믿어.’ △끝으로, 도울 일을 찾아 있는 힘껏 돕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행동으로 보여주면 금상첨화다.

아들아, 아빠가 60년 가까이 살면서 알게 된 것이다. 너는 6분만 읽으면 네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래도 안 읽겠다고?

강원국(<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