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ㅣ2회 박물관 속 우리말

옛 도자기 보며 아름다움에 감동
설명 글 어려워 정체 파악 안돼

글자만 한글로 바꿔 써선 뜻 몰라
옛말 고집해 언어비용 들인 사례

어려운 전문용어를 나열하기보다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설명해주길
한 가족이 강원 영월군에 있는 조선민화박물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 가족이 강원 영월군에 있는 조선민화박물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박물관에 가보면 토기와 도자기 같은 그릇들을 자주 보게 된다. 새삼 깨닫는 것이 그릇의 중요성이다. 그릇이 없다면 음식을 해 먹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니 그야말로 생활필수품이다. 생필품에서 예술품으로 진화한 도자기. 그중에서도 한국의 대표 도자기들을 모아놓은 국립중앙박물관 ‘조각·공예관’으로 가보았다.

고운 비췻빛에 세계 최초라는 상감기법으로 학, 국화, 모란, 구름무늬 등을 넣어 빚은 고급스러운 고려청자, 순백색의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조선백자, 그리고 활발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분청사기. 섬세하고 기품 있는 도자기들의 선과 빛깔과 형태에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기회에 여러 번 본 것인데도 막상 다양한 실물을 가까이에서 보니 다시 감동이 차오른다.

그런데 그 도자기를 설명한 글 중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어려운 말들이 있어 도자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 조선 후기에는 문방제구를 비롯한 서책과 화권, 매화와 파초, 취우와 산호, 고동기와 보검, 생황과 당비파 같은 온갖 희귀 청완물에 대한 문인들의 청완풍조가 두드러졌다. 이는 당대 문인들이 애호하던 분재, 괴석초화, 기명절지도 등이 청화 백자에 투영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대나무 연꽃 국화 분재무늬 항아리’ 소개글

문방제구: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여러 물품. 붓, 벼루, 화선지, 연적 등의 문방구.

화권: 두루마리 그림.

취우: 푸른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

고동기: 구리로 만든 옛날 그릇.

청완물: 맑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품격 있는 감상품.

청완풍조: 사대부가 청완품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경향.

괴석초화: 모양이 독특한 바위와 꽃과 나무.

기명절지도: 여러 가지 그릇과 꽃, 과일을 섞어서 그린 그림.

* 복잡한 투조 문양으로 장식한 희귀한 예로 원통형의 내호와 모란꽃을 투각한 장식외호의 이중으로 구성되었다. 어깨 부분에 넝쿨무늬대를, 몸체 아랫부분에는 한 줄의 양각선과 여의두무늬를 두르고 그 사이 전면을 모란무늬로 채웠다. ―‘모란 넝쿨무늬 항아리’ 소개글

※투조: 조각에서, 재료의 면을 도려내어서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 도려냄 기법.

내호: 안쪽 항아리

투각하다: 조각에서, 묘사할 대상의 윤곽만 남겨 놓고 나머지 부분은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들거나, 윤곽만 파서 구멍이 나도록 만들다.

장식외호: 장식용 바깥 항아리.

양각선: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을 도드라지게 새긴 선.

여의두무늬: 어린 고사리 머리와 닮은 장식문양.

예전에는 ‘대나무 연꽃 국화 분재무늬 항아리’를 ‘백자청화죽연국분재문호(白磁靑畫竹蓮菊盆栽文壺)’라고 썼다. 한자만 한글로 바꾼 것인데, 한글로 썼다 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을뿐더러 어디서 띄어 읽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제 말까지 우리말로 바꿔 ‘대나무 연꽃 국화 분재무늬 항아리’라 하니, 비로소 이 도자기의 정체를 알 수 있겠다. 우리 조상이 만든 도자기가 한층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화권’도 마찬가지인데, 글자만 한글로 바꿔 쓴들 그 뜻을 알 수가 없으니 ‘화권(畵卷)’처럼 한자를 같이 쓰거나, 한자를 읽지 못하거나 읽어도 뜻을 알 수 없는 사람을 위해 ‘화권(畵卷, 가로 길이가 긴 족자)’으로 뜻풀이까지 넣어서 쓰곤 한다. ‘두루마리 그림’이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들을 것을 옛말을 고집하느라 언어비용을 많이 들인 사례다. 그런데 아직도 시대를 거슬러 ‘畵卷’의 시대와 ‘화권(畵卷)’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안타깝다. 현대에 걸맞은 ‘두루마리 그림’의 시대로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

도자기 전시관의 벽에는 ‘고려청자’ ‘조선백자’ ‘철화 백자’ ‘청화 백자’ 등 도자기 종류마다 만든 시기와 만드는 방법, 만든 곳, 사용처 등을 상세히 적어 두었다. 어쩔 수 없이 전문용어를 써야 할 때는 그 뜻을 전문용어 뒤에 괄호를 쳐서 친절하게 풀이하기도 했다. 덕분에 도자기를 알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박물관에서는 전시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글에서도 뜻을 알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나열하기보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으로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계당교양교육원(분원) 부교수 서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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