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해 ㅣ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국어에 색채어가 많다고들 한다. 하지만 ‘하얗다, 까맣다,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다섯 가지가 전부다. 여기에 ‘청색, 녹색’처럼 한자어나 ‘살구색, 오렌지색, 팥색’처럼 식물이나 열매 이름, ‘쥐색, 하늘색, 황토색’처럼 동물이나 자연물에서 온 이름이 더해졌다.

이들 다섯 가지 색에 ‘노랗다, 누렇다’처럼 모음을 바꾸거나, 접미사를 붙여 ‘노르스름’ ‘노리끼리’ ‘누르스름’ ‘누리끼리’를 만든다. 접두사를 붙이면 ‘연노랑’ ‘샛노랑’ ‘진노랑’이 되고 반복하면 ‘노릇노릇’ ‘푸릇푸릇’이 된다. 그런데 이들은 색이 아니라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입고 있는 옷을 보고 거무튀튀하다거나 누리끼리하다고 하면 기분 나쁘다. 튀김이 노릇노릇하면 군침이 돈다. 얼굴이 누렇게 떴으면 쉬어야 하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 화를 가라앉혀야 한다. 맛도 비슷하다. ‘달다, 쓰다, 짜다, 맵다, 시다, 떫다’를 바탕으로 ‘달콤, 씁쓸, 짭짜름, 시큼, 떨떠름하다’를 만들어 감정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얼핏 촘촘한 그물처럼 현실을 잘 담는 듯하다. 하지만 말은 세계의 진면목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달다’만 보자. 사과와 배와 수박과 꿀의 맛은 다 다르다. 그럼에도 사과도 달고 배도 달고 수박도 달고 꿀도 달다고 한다. 말은 세계의 차이를 지워야만 성립한다. 개념은 차이를 단념하고 망각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를 보완할 방법이 없는가? 있다. 내 언어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모국어를 의심하고, 좌절하는 것이다. 표현 불가능함을 집요하게 표현하는 것, 인간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