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에 멍드는 교실
유튜브 등에 만연한 ‘혐오 문화’
쉬는 시간에 ‘얼평·몸평’하는 아이들
잘못된 발언이다 지적하면
‘뭘 그렇게 예민하냐’며 타박
민주시민 양성의 관점에서도
‘나와 다른 너’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학교 내 혐오표현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공교육의 주된 목표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점에서, 혐오 없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성평등·페미니즘 교육이 요구된다. 지난 2018년 2월27일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학교 내 혐오표현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공교육의 주된 목표가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점에서, 혐오 없는 교실을 만들기 위한 성평등·페미니즘 교육이 요구된다. 지난 2018년 2월27일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을 위한 네트워크'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교육, 지금 당장!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와대 청원에 대한 입장 발표 및 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남자애가 자기 성기 크기를 손으로 잰 뒤 여자애들 뺨에 대보고 ‘식도까지 들어가겠네’라고 말하면서 웃더라고요. 교실에서요. 선생님한테 말해도 ‘장난이겠지’라며 아무런 조치가 없었어요.”

“엠X, ‘느금마’, ‘니애미 창X’…. 애들이 싸우다가 너무 화가 나면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제일 심한 욕이 다 ‘엄마’랑 관련된 거고, 교실에서 허리 흔들면서 ‘○○야, 나랑 섹스하자’고 하거나, 다문화 친구한테 ‘잡종은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해요.”

지난 17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최아무개군과 중학교 2학년 이아무개양의 말이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말의 대부분이 상대를 비하하는 말이거나, 성행위를 묘사하는 식인데 이에 대한 학교 차원의 ‘브레이크’는 없다고도 말했다. ‘말투나 행동이 여성스러운 남학생’ ‘남들보다 살집이 있거나 조금 특이한 친구들’에 대한 일상적 혐오 표현 역시 ‘장난인데 뭐’라는 말에 묻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이양은 덧붙였다. 교사에게 문제제기를 해도 ‘걔가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닐거야’ ‘친구랑 싸우지 말고 잘 지내야지’ 정도의 해결책을 내놓는다고 했다. 혐오표현을 듣고 기분이 상한 학생에게 ‘네가 참아라’고 말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탓하는 전형적인 화법이다.

‘미워할 이유’ 찾아내는 교실

학교라는 울타리, 그 안에서도 교실 한 칸. 이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은 어떤 친구를 ‘혐오의 대상’으로 골라낼까. ‘교실에서 누가 혐오의 대상이 되느냐’의 문제는, 아이들이 어떤 기준으로 ‘정상인’을 구분 짓고 있느냐는 말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난 8일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학교 안 혐오 현상과 교육의 과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는 민윤 별망초등학교 교감, 박진아 경인교육대학교 외래교수, 이신애 학익초등학교 교사 등 공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교사·교수 등이 참여했다. 보고서는 학교 안 혐오 현상 극복을 위한 학급, 교실 차원의 과제, 학교가 성평등한 공간인가에 대한 인식, 학교에서 여성혐오 표현을 하는 주체를 비롯해 연구 참여 학급에서 사용되는 욕설 등 참여관찰 연구로 포착한 교실 속 혐오 표현에 대해 설명한다.

교실 속 혐오 실태에 대한 프로젝트를 이끈 이혜정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떤 이유에서든 혐오 표현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아이들은 ‘다름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게 된다”며 “상대를 비하하고 모욕하는 말과 행동이 교실의 ‘질서’로 자리 잡을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위원은 학교 안 혐오 현상이 지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보도됐는데, 그 시점부터 최근 스쿨미투 운동, 페미니즘 교육 등 대안적 움직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교실 속 혐오 현상이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에 대한 문제이며, 대안과 대책을 강구하는 등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이야기다.

성희롱 하지 말라고 하면 ‘예민하다’ 공격

중2 이아무개양이 기자에게 들려준 혐오 표현 방식의 다양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매일 얼굴을 맞대고 공부하는, 같은 반 남학생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나 배경 이미지가 여성 성기 사진인 경우도 있었다. 함께 모둠활동을 하면서 ‘불편하다. 성희롱이다’라고 말해도 ‘너 페미니스트냐. 네가 예민한 거다’라며 입을 막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담임 교사에게 피해 학생들의 의견을 전달해도 “원래 그 나이대 남자 애들은 성에 관심이 많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고 했다.

이양은 “불편하다고 말하면 ‘까다로운 애’가 되어버린다”며 “우리 또래들은 성평등한 젠더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라오지 못하는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쉬는 시간에 남자 애들이 온갖 혐오 표현을 쓰면서 여자 애들 얼평(얼굴 평가), 몸평(몸매 평가)하는 건 기본이에요. 얼평, 몸평하면서 ‘강간하고 싶다’ ‘납치하고 싶다’는 말까지 하는 데 놀랐어요. 놀라면 놀라는 대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놀라는 거냐’며 더 놀리고요. 답이 없어요.”

서울 ㅂ초등학교 김아무개 교사도 최근 학급 아이가 “선생님도 ‘김치녀’예요?”라는 말에 학교 안 혐오 표현 실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다. 우스갯소리라고 생각해왔던 단어를, 교실 안에서 직접 듣고 보니 아이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부모세대 등 어른들이 온라인 공간과 각종 미디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써오던 표현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흘러들어가 하나의 ‘놀이 문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김 교사는 “특정 성별을 비하하거나 업신여기는 표현을 아이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쓰고 있다”며 “문제는 이런 말들이 왜 잘못됐는지 아이들은 물론 교사들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들 성장기에 또래문화라는 건 생각보다 센 힘을 가진다. 남을 미워하는 말은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도, ‘옆자리 민수도 쓰는 말을 내가 쓰면 왜 안 되는 건데?’라고 접근하기 일쑤다. 초등 공교육 과정에서부터 민주시민교육의 관점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 키워야

‘여성스러운 남자애’ ‘운동 좋아하는 여자애’. 부모세대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니지만, 교실 안에서는 다르다. 자신이 생각하는 ‘정상성’이나 교실의 암묵적인 ‘룰’과 조금만 달리 행동해도 ‘특이한 애’라고 낙인찍으며 혐오 표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과 공격은 더욱 심하다. 교사까지 나서 “너는 대체 ‘게이같이’ 왜 그런 걸 좋아하느냐”라고 묻는 순간, 차별과 혐오의 공기는 1년 동안 그 교실을 지배하는 주된 정서가 되어버린다. 아이들 스스로 ‘소수자는 약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혐오 논리를 체화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의 92%가 성소수자임을 숨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학교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게 드러나면 친구들이나 교사에게 차별과 괴롭힘을 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실제 다른 학생으로부터 혐오 발언을 한 번이라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92%에 달했다.

특히 학교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배운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전체 응답자의 48%로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13.5%는 성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내용을 배웠다고 응답했다. 대다수 학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혐오의 ‘타깃’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다.

30대 게이 남성인 최아무개씨는 “초등 시절부터 공교육 과정에서 언제나 배제되는 느낌을 받았다. 친구들이 내게 욕을 해도 선생님이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기름을 끼얹는 경우도 많았다”며 “‘남자가 왜 축구도 못해, 고추가 없나?’ 등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비하하는 말을 초·중·고 12년 내내 들으며 생활했다”고 말했다. 같은 반 교실에서 서열이 높은 남학생이 ‘좀 특이한 친구’를 혐오하는 말을 쓰기 시작하면 동참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혐오 표현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안 쓰면 배척당하는 것이다. 교사 개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공교육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혐오 표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감수성 교육을 진행해야 하는 이유다.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송지은 상근변호사는 “교실에서 발화된 하나의 소수자 혐오 표현이 또래나 교사 등 누구로부터도 지적받지 않고 그저 웃어넘겨지는 순간, 그 교실 전체에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용인되는 효과를 낳는다”며 “그런 교실 안에서 소수자 학생이 경험하는 소외와 위축감, 그로 인한 우울 등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다. 학교를 떠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학교가 모든 학생이 혐오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위축되는, 다양성이 수용되지 않는 공간이 되고 마는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학교뿐 아니라 가족, 직장, 사회에까지 동일하게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성평등·젠더 교육이 ‘혐오’ 없앨 수 있다

혐오 표현에 멍드는 교실, 해결 방법은 없을까? ‘성평등 교육 의무화’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학교 내 언어 폭력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 공교육 현장 교사들이 ‘인권, 소수자 혐오’ 등에 대한 정보를 업그레이드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혜정 연구위원은 “교실 속 여성혐오, 소수자 혐오 표현에 대해 아이들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환경의 뿌리는 성평등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든지, 여자는 예뻐야 한다든지 등 성별 고정관념은 잘못됐다는 것, ‘페미니즘은 성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개념만 공교육 과정에서 자리 잡아도 교실 속 혐오 발언의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연구위원은 “‘요즘 아이들은 이런 말도 하더라’며 학생들을 악마화하거나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의 혐오 표현은 우리 사회 속 어른들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부모세대부터 성평등·젠더 교육에 대한 이해 수준을 높이고, 자라나는 세대에게만큼은 ‘혐오 없는 세상’을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