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서울 유석초등학교 교사
<초등 자존감의 힘> 저자

수선화, 예쁜 꽃이다. 꽃 이름 속엔 외롭게 죽은 이가 새겨져 있다. 그리스 신화의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 미모에 반해 빠져 죽었다. 그 자리에 피어난 것이 미소년과 같은 이름의 꽃, 수선화(나르키소스)다. 죽어서도 예쁜 꽃으로 피어나야만 했던 ‘나르시시즘’(Narcissism), 즉 자기애적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자기애적’ 성향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기애적 인격 장애’ 수준에 이른 아이들도 있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기 관리가 이루어지고, 능력 갖춘 리더의 모습을 보인다. 자기애적 아이들이 그룹의 ‘짱’,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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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적 성향에 빠진 아이와 진짜 존재감을 지닌 리더를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타인의 의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면 안다. 자기애가 강할수록 반대 의견을 견디지 못한다. 다른 의견에 화를 내고, 교묘히 왕따시키며 배제해버린다. 자신을 중심으로 무리를 만들고 권력을 행사하며, 착취의 과정을 누린다. 나르시시즘 왕국에서 적당한 서열을 누리며 만족해하는 리틀 나르시시즘 어린이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다. 그 그룹에 속하지 못했을 때 낙오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스스로 나르시시즘 리더의 부하를 자처한다. 조직폭력배 얘기가 아니다. 교실 속 일상이다.

왜 그런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초등 및 그 이전의 시기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한다. 이 시기 자기중심성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한다. 보호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게 된다. 아직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기 전 이러한 관심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가 어쩐지 ‘쓸모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한 자기만족을 충족한 뒤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로 들어와 혼돈의 시기를 거친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는데, 다른 친구들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서서히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고학년이 되면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재정립한다. 일반화된 긍정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이 타인을 인지하는 시기가 자꾸 늦어지고 있다. 만나는 친구들도 엄마가 연결해준 타인일 뿐, 그들과 모여 있어도 늘 중심은 자신에게 있다. 내가 더 좋은 무언가를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무엇이든 더 잘해야 하며, 더 돋보여야 한다. 자기중심성에서 타인으로 연결되지 않고, 나르시시즘으로 굳어진다. 부모는 이러한 아이에게 “이쁘다”고 말해줌으로써 다른 관계로의 확장을 막아버린다.

나르시시즘은 ‘자존감의 적’이다. 자존감은 나 홀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자기만족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그 반대다. 내가 형편없고 하찮게 여겨지는 상황에 있을지라도, 많은 타인이 나를 반대한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힘이 자존감이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아이들은 언제든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다. 수많은 타인은 나에게 동조하기보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무수히 내놓는다. 그 속에서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 과정은 나르시시즘이 아닌,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비로소 시작된다.

아이들이 타인과의 관계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용기를 가질 기회를 자주 주어야 한다. 그 용기에서 자존감이 움트기 시작한다. 타인과의 관계성 없이 ‘나’만 바라보는 아이는 자존감이 ‘0’(제로)이다. 우리 아이의 자존감을 지켜주고 싶다면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관계성을 배우는 시간(함께 놀기)을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 존재감이 수선화가 될지 나비가 될지는 ‘관계성’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