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학교 현장에 부는 메이커교육 바람

만들어진 물건만 사용하던 아이들
‘이게 왜 이럴까?’ 궁금증 품으며
도구·손 이용해 장치 직접 만들어
3D프린터 등 고가장비 중요한 게 아냐
색종이 한 장으로 ‘로켓 추진체’ 만들수도
친구와 토론하고 상상의 폭 넓히며
‘실패’ 아닌 ‘시도’에 방점 찍는 교육
지난 17일 대전 동방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에듀 메이커보드’를 활용해 다이오드 및 모터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다. 학생들은 ‘에듀 메이커보드’를 통해 로켓 발사대 만들기,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제어 등을 기획·구상하고 만들어보며 창의력을 키운다.  김지윤 기자
지난 17일 대전 동방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에듀 메이커보드’를 활용해 다이오드 및 모터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다. 학생들은 ‘에듀 메이커보드’를 통해 로켓 발사대 만들기, 크리스마스트리 불빛 제어 등을 기획·구상하고 만들어보며 창의력을 키운다. 김지윤 기자

■ 이 주의 교육노트

돌도끼 만들던 석기시대 인류 아시죠?
돌 골라서 갈고 다듬어 연장으로 만든 지혜.
무엇을, 왜,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겠죠.
‘메이커교육’의 핵심도 ‘생각하는 손’입니다.
작은 거라도 스스로 고민해 만들어보는 경험.
지식을 지혜로 만드는 힘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이번엔 8번 모터 각도를 45도로, 7번 모터 각도를 135도로 한 뒤, 0.2초 간격으로 초록 불빛이 들어오게 해보자!”

지난 17일 오후 2시, 대전 동방여자중학교 박현우 교사의 ‘정보-기술 교과 융합’ 시간. 이 학교 2학년 이지연·임경란양 등 학생 30여명은 실습실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실험’에 한창이었다.

오픈 소스 ‘에듀 메이커보드’로 수업

컴퓨터에서 ‘블록형 명령어’(이하 명령어) 스크립트를 작성해 ‘에듀 메이커보드’(이하 메이커보드)와 연결하니 이지연양이 생각한 대로 초록 불빛이 0.2초 간격으로 반짝거렸다. 임양도 이양과 함께 팀을 이뤄 점등에 성공한 뒤 자신감을 얻었다. 임양은 ‘거침없이’ 명령어를 수정해보고 빨간색, 노란색 전구를 차례로 연결하며 ‘한여름의 트리 불빛’을 만들어 나갔다.

메이커보드는 대전시교육청 산하 대전교육정보원 민한식 연구사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함진호 책임연구원과 만든 메이커교육용 교구다. 이를 이용해 아이들은 메이커교육을 보다 쉽게 체험할 수 있다. 메이커보드는 학교 현장에서 많이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스크래치’와 ‘엔트리’를 연동해 제작했다. 설계도 및 교재는 소프트웨어 교육 활성화를 위해 무료로 공유하고 있다. 민 연구사는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도 누구나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코딩교육에 활용할 수 있도록 누리집(cafe.daum.net/EDUMakerBoard)에 자료 등을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메이커교육은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시작한 교육으로, 아이들이 만들고 싶은 것을 직접 구상·기획·프로그래밍하고,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창의적으로 만들게 하는 교육을 뜻한다.

이양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시즌, 집에서 트리를 설치하다가 뜻하지 않던 고민에 빠졌다. 온갖 장식을 단 트리에 색깔별 전구를 걸친 뒤 코드를 연결했는데, 일부 전구에는 불빛이 들어오지 않았고, 점등 시간 간격도 일정치 않았다. 이양은 “거실에 놓인 트리 불빛이 내 뜻대로 반짝였으면 좋겠는데, ‘만들어진’ 전구를 구입한 거라 점등 시간과 횟수 등을 조절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내가 입력한 명령어에 따라, 초록색이나 빨간색 등 원하는 불빛 색깔을 0.2초, 0.5초 간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기술 과목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선 원리나 전기회로 이론 등을 접하며 실제 구현해볼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생소하기만 했던 프로그래밍 언어가 제법 눈에 익자, 아이들은 또 다른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수업을 통해 메이커보드를 알게 되면서 이양은 ‘전기자동차’를, 임양은 ‘급식 나눠주는 로봇 만들기’를 상상했다. 이양은 “메이커보드에 모터와 ‘버저’를 달아 로켓 발사대, 세탁기, 전기자동차까지 만들어볼 것”이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2학년 송민주양은 “내가 ‘메이커’가 되어 머릿속 아이디어로만 간직했던 다양한 기계의 모습을 하나씩 구현해볼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상상한 대로 모터가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방식으로 제어되면 바로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보고 친구와 이야기해보면서 답을 구해나가죠.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전선을 직접 연결해보고 모터를 탈부착해봤다. 교과서나 모니터 등 눈으로만 보는 학습에서 벗어나니 오후 수업임에도 조는 학생이 없었다. 박현우 교사는 “‘메이커교육’은 눈으로 읽고 단순 암기하는 학습이 아니다. 작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해본 경험’의 즐거움을 알려주면 아이들도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메이커보드 수업 뒤 아이들이 ‘휴대폰 벨 소리는 어떻게 울릴까? 소리의 크기를 조절하는 원리는 뭘까?’ 등 평소라면 지나쳤을 질문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문제의식’이 생기는 거죠.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직접 해결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벨 소리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전선을 연결해야 할까? 사운드 카드를 활용해볼까?’ 등을 고민하는 ‘능동적인 메이커’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피자홀더·트리…일상 속 아이디어를 현실로

2015년 개정된 교육 과정에 따라 2018년부터 중학교에서 소프트웨어(SW) 필수 교육이 시작된다. 중·고등학교는 ‘정보’, 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5~6학년 ‘실과’ 과목에서 진행한다. 소프트웨어 교육이 의무 도입되면서 그만큼 메이커교육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메이커교육을 통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 실험’ ‘로켓 발사대 만들어보기’ ‘모터 동력으로 움직이는 팔 만들기’ ‘피자를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홀더’ 등 ‘세상에 하나뿐인 결과물’을 완성해낸다. 이 교육에서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성된 명령문을 비롯해 ‘번듯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그 과정이 주는 교육적 의미가 크다.

민 연구사는 “뉴스에서 ‘로켓 발사 성공’ 소식을 접하고, 색종이 한 장으로 ‘로켓 추진체’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로켓’이 만들어지면, 아이들은 그것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를 머리를 맞대고 그려본다”고 했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통해 설계도를 그렸다가 수정하고, ‘발사대 모터’의 원리에 관해 토론합니다. ‘오픈 소스’를 활용해 명령어를 다양하게 ‘변주’해보는 경험도 가능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너와 나의 생각이 모두 정답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더군요. 메이커교육은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지식 공유’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과정입니다.”

내년부터 소프트웨어 의무 교육이 시작되지만 교실 등 교육현장에서 체계적인 ‘메이커교육 콘텐츠’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민 연구사와 함 책임연구원이 메이커보드를 만든 이유도 여기 있다.

입체(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고가의 장비를 활용한 메이커교육도 필요하지만 ‘만들기’에 대한 토대를 다지는 작업도 중요하다는 게 민 연구사의 생각이다. 그는 “메이커교육도 ‘기본’부터 시작해야 심화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며 “아이들이 상상했던 기계, 동물, 로봇 등을 작은 보드 위에서 일단 만들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메이커’가 되어 엘이디(LED) 전구에 직접 불을 켜본 아이들만이 티브이, 휴대폰 백라이트 등 다양한 곳에 적용된 조명을 알아볼 수 있겠죠. 알아야 보이고, 보여야 개선하고, 다시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학교로 찾아가는 ‘메이커 버스’도 있어

학교에 메이커교육을 알리러 다니는 버스도 있다. 창의 메이커교육을 진행하는 ‘메이커스’는 ‘카카오’와 함께 취약 지역 학교들을 대상으로 입체 프린터 활용 등 ‘만들기 교육’을 확산시키자는 뜻에서 3년째 ‘메이커 버스’를 운영한다. 지금까지 전국 100여개 학교 및 기관을 방문해 3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메이커교육 및 워크숍을 진행했다.

지난 19일 오후 2시에는 인천소양초등학교 6학년 학생 대상으로 메이커 버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한민서양은 이 시간을 통해 ‘만들기의 힘’을 알게 됐다. 3시간 동안 이어진 메이커 버스 프로그램에서 한양은 ‘상상이 손에 잡히는 재미’를 느꼈다. 한양은 “‘북극에 사는 상상 속의 동물 만들기’부터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디자인으로 표현해보기’ 등 활동이 즐거웠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힘’이라는 글자를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직접 그리고 만들어봤어요. 늘 갖고 다닐 수 있도록 열쇠고리 형식으로 만들었죠.”

이 학교 전우성 교사는 “물건이 필요하면 마트에 가서 돈을 주고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이, ‘만들기’ 수업을 시작하자 주변을 관찰하고 한 번 더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작은 장난감 하나를 만들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의지,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스스로 찾아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수동적인 학생이 아닌 ‘기획력’과 ‘문제해결력’을 갖춘 ‘메이커’를 만드는 게 교육의 지향점이라고 봅니다. 만들기 과정에서 ‘실패’는 없어요. ‘시도’와 ‘과정’만이 있는 거죠. 아이들도 마음 편하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

지난 19일 인천소양초교에서 ‘찾아가는 메이커교육-메이커 버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디자인한 제품을 만들어 보며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메이커 교육’을 경험했다.  메이커스 제공
지난 19일 인천소양초교에서 ‘찾아가는 메이커교육-메이커 버스’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프로그래밍·디자인한 제품을 만들어 보며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메이커 교육’을 경험했다. 메이커스 제공

■ 메이커교육의 의미는?

“공유·협업 정신 키워주는 게 핵심”

메이커교육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창작자’를 뜻하는 ‘메이커’(maker)라는 개념이 가장 먼저 나온 곳은 미국이다. 차고에 놓인 철사나 목재, 타이어 등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구상한 로봇을 만들어보거나, 실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도구 등을 개발하는 이들을 메이커라 불렀다. 2005년 ‘메이크 매거진’이 발행되기 전까지 이들 대부분은 홀로 작업했다.

이후 인터넷 환경이 정비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영상 공유가 쉬워지면서 다른 메이커의 의견을 듣고 서로의 기술에 피드백해주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메이커들은 초기에 ‘혼자 스스로 하기’(Do It Yourself)에 집중했지만 ‘메이커운동’이 시작된 뒤에는 ‘함께하기’(DoIt-Together)가 모토가 됐다. 거친 장비를 다루는 등 성인 중심의 ‘메이커운동’이 가진 ‘창의력, 협업, 공유’ 등의 가치는 미국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메이커교육을 적용하면서 학교 현장으로 전파됐다.

아이들이 주로 교과서나 문제풀이로 접하는 수학도 메이커교육으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다.

서울 문백초등학교 박찬규 교사는 “아이들이 수학 도형 단원에서 넓이 구하기, 다양한 도형의 종류 등을 어려워한다. 이때 모델링 프로그램을 통해 각 도형이 모양을 잡아가는 과정을 함께 깨닫고, 3D프린터를 활용해 실제 도형을 출력하면 쉽게 이해한다”고 했다. “바퀴 달린 ‘햄스터 로봇’을 만드는 과정에 교사와 학생이 ‘메이커’로 참여합니다. 교과에 흥미 없던 아이들도 ‘내가 만든 로봇으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피드백 오가는 과정을 교사와 학생 모두 즐기게 되는 것이죠.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실수했다고 외면하는 건 ‘메이커 정신’이 아닙니다.”

국내에 메이커교육을 적극적으로 알린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과 교수는 “메이커교육의 핵심은 ‘공유’, ‘협업’”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이 교수는 “과거 교육과정에서 각종 실험·실습 등 만들기 교육은 ‘과학영재’를 대상으로 한 것이 많았지만 메이커교육은 다르다. 뜨개질하거나 요리하는 사람 등 스스로 ‘만들기 아이디어’를 내고 하나씩 손끝으로 구현해내는 과정 자체를 중시한다”고 했다. “이제는 몇 명의 리더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죠. 수평적 관계로 팀을 이룬 뒤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며 ‘서로 돕는 메이커’가 주목받는 때가 올 겁니다. ‘이타적 창작자’를 키워내는 것이 메이커교육의 목표입니다.”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