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법] 청소년인권법 제정운동 10년
학생인권조례 법적 강제력 없어
두발규제·욕설·체벌·종교 강요…
학교현장 인권침해 여전히 심각

보수정권 때 학생인권 논의 부진
첫 조례 만든 김상곤 장관 취임에
‘청소년인권법’ 제정 목소리 커져
“내 앞머리 싹둑, 법으로 금지하라”

‘매 맞지 않을 권리’, ‘머리카락을 기를 권리’, ‘차별 받지 않을 권리’ 같은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이 나라의 10대들. “청소년도 사람이다”를 외치며 지난 10년간 이어진 청소년인권법 제정 운동으로 전국 네 곳엔 겨우 ‘학생인권조례’가 싹텄지만, 법이 아닌 조례이기에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기 힘든 현실이다. 10대들에게 학교는 여전히 강제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곳이며, 아직도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이 이뤄지는 곳이다. 학생인권조례를 처음 만든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교육부장관이 된 2017년, ‘청소년인권법’이 필요한 학교 현장을 생생히 들여다봤다.

10대 청소년 김민하(가명)는 지난 7월말 집을 나와 청소년 쉼터에 머물고 있다. 올해 초 부모님의 강요로 한 대안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교’라는 이름을 내건 이곳은 민하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하고 욕설과 체벌, 두발 규제, 휴대폰 규제 등 인권침해성 통제를 가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부모님은 끝까지 이 ‘학교’에 다닐 것을 요구해 민하는 집을 나왔다.

민하가 다닌 교육시설은 ‘국제학교’라는 간판을 걸고 있었지만 교회와 학원 허가를 받아 운영하는 서울의 미인가 대안학교였다. 이곳은 학생들에게 매일 예배를 드리게 하고 ‘인성교육’이란 이름으로 반인권적 교육을 실시했다. 대중가요를 들으면 “세상의 노래를 듣는 것은 나쁘다”며 금지하고, “외부 친구들과 연락하지 말라”며 휴대폰 사용을 엄격히 규제했다. 학생들은 전교생이 초대된 단체 카톡방에 ‘오늘은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 외엔 소망이 없습니다’라는 다짐을 매일 올려야 했다. 학교가 강조하는 사항에 위배된 행동을 하면 ‘사랑의 신고’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해 목사에게 보고했다. 학교가 원하는 생활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나는 찌질이입니다”를 외치게 했다. ‘학교’는 욕설과 막말, 성소수자 혐오를 가르쳤다. 기합, 체벌도 있었다. 민하는 올 초 같은 반 학생이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사로부터 나무 막대로 엉덩이를 맞았다.

민하는 이곳에서 경험했던 인권침해 내용을 경찰에 신고하고, 국가인권위원회, 국민신문고, 서울시교육청에도 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경찰은 부모님과 대화하라고 한 뒤 돌아갔다. 학교는 교육당국의 관리감독 테두리 안에 없었다.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은 “교회로 운영되어 지도감독권이 없다”며 민원을 반려했다. 민하로부터 학생인권침해 권리구제 신청을 받은 서울시교육청도 “인권침해 권리구제의 근거가 되는 서울학생인권조례에 ‘종교의 자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 학생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지만, 적용 범위가 학교로 한정되고 법적 강제성이 없어 이 경우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10년째 이어지는 ‘청소년인권법 제정’ 목소리

종교의 자유, 체벌 금지, 두발 자유,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 학생 인권을 보장하라고 명시한 학생인권조례가 실효성이 약한 ‘조례’ 수준이라 제도적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지난 7년간 전국 4개 시·도에서 제정됐지만, 여전히 제정되지 않은 곳이 많은데다 위반 시 제재할 법적 강제력도 없어 10대 인권을 보장하기엔 턱없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가정, 지역사회, 학원 등 각종 시설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인권문제를 전국적으로 보장할 ‘청소년인권법’이 필요하다며 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인권법 제정 운동은 올해 11년을 맞는다. 이 운동은 2006년 ‘학생인권법’이란 이름으로 최순영 의원(민주노동당)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촉발됐다. 같은 해 ‘학생인권법 국회 통과를 위한 100만인 서명 운동’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이듬해 초·중등교육법에 학생인권 보장에 관한 의무 조항이 삽입되는 성과도 있었다. 이후 2010년 경기도, 2011년 광주광역시, 2012년 서울, 2013년 전북 등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과학기술부에 조례가 아닌 법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라며 ‘학생인권기본법’ 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19대 국회에서 ‘아동·청소년인권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 정권 9년간 청소년 인권 논의는 크게 진척되지 못했다. 오히려 청소년의 ‘예절’과 ‘효행’을 강조하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제정됐다.

첫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이 교육부 장관이 되자 청소년인권법 논의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청소년인권단체들은 이달 19일 ‘촛불 청소년인권법 제정 운동’(가칭)이란 단체를 만들고, 김상곤 장관을 찾아가 ‘청소년인권법 제정에 힘써달라’는 제안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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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의 삶은 왜 아직도 그대로인가

7년 전 경기도에서 첫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학교 현장에서 체벌은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조례의 ‘체벌 금지’ 조항을 두고 보수 교원단체 한국교총이 강한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치열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젠 학교 현장에서 ‘학생에게 체벌은 안 된다’는 인식이 상식이 됐고, 많은 학교에서 체벌이 사라졌다. 하지만 나아갈 길은 아직 멀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수년간 서울시교육청에 들어온 체벌 민원이 100여건에 이른다”고 했다. 최근 경기도 김포외고에서 교사가 대걸레 자루로 학생을 때리는 일이 벌어졌고, 지난해 서문여중·고에서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년간의 성희롱·성추행 등이 드러나는 등 학교 안 폭력이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

폭력만이 아니다. 10대들에 대한 포괄적 인권보장 수준은 여전히 낮다. 학생인권조례 5주년을 맞은 서울도 각종 인권 침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서울지부가 지난 5월 서울 중1~고3 학생 1042명(남 149명, 여 889명)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일어나는 소지품 압수 실태에 대해 조사했더니, “소지품을 압수당한 경험이 있는가”에 응답자 90.1%(938명)가 ‘1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사생활의 자유’에는 “교직원은 학생의 동의 없이 소지품을 검사하거나 압수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소지품 검사를 ‘5회 이상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38.5%(401명)에 달했다. 학교에서 압수당한 소지품 1순위는 화장품(82.1%, 855명), 2순위는 휴대전화(72.9%, 760명)였다.

학생들의 응답에는 학교의 반인권적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들어와 욕하고 혼내면서 화장품을 쓰레기봉투에 버렸다. 학교가 다 끝나고 화장실에서 화장한 것인데 너무 억울하다. 화장품들이 20만원은 넘는데, 다 버렸다. 선생님한테 한 대 맞고 벌청소도 했다.”(서울 강남구 ㄱ고) “선생님이 함부로 얼굴을 티슈로 지워본다. 클렌징티슈에 (화장이) 묻어나오지 않는데도 입술이 빨갛다며 화장품을 강제로 압수해 갔다.”(서울 강남구 ㄴ중) “아르바이트를 가야 해 사복을 챙겨 왔는데, 그걸 빼앗아가고 성찰실까지 가게 됐다.”(서울 강서구 ㄷ고) “엄마가 생일 선물로 준 이니셜 목걸이를 학교에 하고 갔는데 선생님께 상황 설명을 드렸는데도 가져가 학기 마칠 때까지 돌려주지 않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온 뒤 길을 전혀 몰라 휴대폰이 필요했는데, 휴대폰을 가져왔다는 이유만으로 2주간 빼앗겨서 엄마가 며칠간 등하교를 도왔다.”(서울 노원구 ㄹ중) 여전히 학교는 학생들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고, 욕설하고 벌주는 곳이다.

지난 6월 경북의 ㄱ중학교에서 한 교사가 규정에 어긋난다며 학생 5명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랐다. 사진은 앞머리가 잘린 학생들의 모습. 사진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제공.
지난 6월 경북의 ㄱ중학교에서 한 교사가 규정에 어긋난다며 학생 5명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랐다. 사진은 앞머리가 잘린 학생들의 모습. 사진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제공.
■ 충돌하는 법·제도, 지역 따라 달라지는 청소년 인권

청소년 인권에 관한 법·제도 조항들이 불명확하거나 서로 충돌해 ‘청소년인권법’으로 이를 정비하고 포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는 “(학생을 지도할 때)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해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며 체벌을 금지한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이 조항만으로 학교 현장에서 벌어지는 체벌을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는 “일부에선 이 조항을 왜곡해 해석하며 도구, 신체가 아닌 언어폭력 등은 법에서 허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며 “왜곡된 해석의 여지가 없는 명확하고 강력한 법으로 교육이란 미명하에 일어나는 10대 폭력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상위법 앞에서 힘을 쓰기 어려운 상황도 빈번하다. 두발 규제 등은 학생인권조례에서 금지하는 학칙인데도 학교장들이 “학칙을 만들고 개정할 권한은 학교장에게 있다”는 초·중등교육법을 들이대며 구시대적인 학칙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조례도 전국 네 곳에서만 존재해, 나머지 13개 시·도에선 학생인권 침해 사건이 더욱 흔하다. 지난 6월, 경북의 ㄱ중에서는 담임교사가 반 학생들의 두발 단속을 하며 학생의 앞머리를 강제로 잘랐다. 이 학교는 “두발은 스포츠형으로 하며 염색·파마 등으로 변형해서는 안 되고, 스프레이·젤 등을 바를 수 없다”는 학칙을 뒀는데, 교사는 두발 단속 과정에서 학생 동의 없이 5명의 앞머리를 잘라버렸다.(사진)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시·도에서는 여전히 조례 제정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쥬리 ‘인권친화적학교+너머운동본부’ 활동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권리인 인권은 지역에 따라 어떤 곳에선 보장되고 어떤 곳에선 무시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시·도별로 달라지는 인권 기준이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시연 전국학생회장연합회 회장은 “전국 각지 학생회장단들과 연락해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 학생들과 없는 지역 학생들의 권리 의식에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 학생들은 10대의 권리 행사에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