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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 기억과 미래] 교육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12-12 (토) 12:38 조회 : 447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나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 경복고등학교에서 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나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제비뽑기로 합격자를 정하자.”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는 최근 출간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명문대학 지원자들의 학습능력은 별 차이가 없으니 추첨으로 뽑자는 것이다. 실제로 숙련된 입학사정관들조차 지원자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학교 내신, 스펙, 추천서를 점수로 합산해서 선별하는 것은 아무래도 억지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대학 입학 선발 절차를 신비화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문제는 합격한 학생들이 자기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룬 성공으로 착각해서 오만해지고, 떨어진 학생들은 열등감에 시달리기 쉽다는 것이다.

능력 평가에 따라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은 능력과 성실성의 증거가 된다. 반대로 실패는 능력이 모자라고 게을렀다는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승자는 노력에 비해 과도한 특권을 당연시하고, 차별당하는 패자는 굴욕감과 억울함에 분노한다. 그렇게 사회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능력주의에 대한 환상을 깨기 위해서 샌델 교수가 제안한 방법이 ‘대학추첨제’다. 일정한 관문을 넘은 학생을 무리하게 다시 줄 세우지 말고 그냥 ‘제비뽑기’로 입학시키자는 것이다.

일견 엉뚱한 주장인 듯해도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반세기 이상 시행하고 있는 대학입시 방식이다. 불평등한 고등교육 제도를 개혁한 ‘68혁명’ 이후, 독일에서는 인문계 고등학교 졸업시험 격인 ‘아비투어’ 합격자는 어느 대학이든지 진학할 수 있다. 프랑스도 철학 논술시험인 ‘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파리와 지방의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국가가 무상교육을 하는 대학은 선별 기능보다 균등한 교육기회를 보장하는 고등교육 기관이 되었다.

한국 상황은 어떤가? 올해도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엄중한 국가관리 아래 한날한시에 치러졌다. 객관적으로 공평한 조건에서 능력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수능 당일 날씨를 상세하게 예보하면서 수험생들의 건강을 위한 충고도 한다. 혹시 감기라도 걸리면 수험생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해서 앞날을 망치지는 않을지”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그 몇 시간 동안의 문제 풀이로 한 사람의 평생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다니 그런 도박이 어디 있나! 끔찍한 경기 아닌가? 한판 경기에 목숨이 오가는 로마 시대 격투기를 지켜보듯 온 사회가 숨을 죽이는 것도 당연하다. 혹시 다른 경기나 도박에서 그런 식의 판돈을 걸고 게임을 한다면 온 사회가 격분할 사행 행위다.

오늘날 한국 교육은 교육적 가치보다 경쟁적 게임에 중독되었다.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는 대학입시라는 교육게임은 승패와 순위를 다투는 스포츠나 게임들처럼 승리의 환호와 패배의 눈물이 교차하는 역동적 경기다.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면서 참여하는 사람을 흥분시키는 중독성이 있다. 게임 당사자인 학생뿐만 아니라 투자 결과를 바라는 후원자 부모나 트레이너 교사와 지켜보는 관객들까지 희열과 좌절을 느끼는 경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교육게임 중독의 폐해는 심각하다. 교육게임에 몰두하면서 부모-자식 관계가 왜곡되었고,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은 침식되었다. 개인적 성공에 대한 집착은 사회적 연대를 약화시켰다. 교육게임에 승리한 사람도 성공 강박증과 경쟁 불안증에 괴롭고, 패배한 사람도 사기 저하와 모멸감에 시달린다.

국가적 시험의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는 신분제 성격을 띤 학력차별 또는 학벌차별로 이어진다. 어느 학교 출신인가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학력과 서열에 따른 차별 논리는 다른 시험제도로도 확산되어, 지식 경쟁을 통해 선발된 고시 출신과 공채 출신은 특권을 당연시한다. 능력주의 시험 결과에 따른 사회적 보상을 ‘공정성’으로 여기는 것이다. 최근 두드러진 의사와 검사들의 특별한 지위 주장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현상이다.

현대국가의 능력주의 선발제도는 원래 출생 대신 능력에 근거한 엘리트 충원을 위해 고안되었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을 위해 만든 이 제도가 오늘날 ‘결과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특권을 공고화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능력주의에 따른 차별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교육게임은 달아오르고 게임의 열기만큼 사회적 차별은 확대 재생산된다.

공정한 능력 경쟁이란 미망에서 벗어나 교육게임을 멈춰야 한다. 제한된 지식 평가를 기준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사회가 아니라 다양한 능력과 직업이 존중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대졸과 고졸,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와 목수의 보수가 비슷한 사회가 ‘공정한’ 사회다.

정병호 ㅣ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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