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현장
농촌에 좋은 학교가 필요한 이유

면단위 3개 학교 합친 기숙형 공립중
8년간 통폐합 논의 거쳐 올해 개교
개인별 악기 레슨, 로봇·드론 수업도

교사 1인당 학생 5.7명, 질 높은 교육
에너지 자체 생산, 장애 친화적 건물

전학 문의 쇄도해도 귀농해야 가능
좋은 학교가 농촌 살릴까 기대감
지난 24일 찾아간 충남 청양군 기숙형 공립 정산중학교의 라온도서관 풍경.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4일 찾아간 충남 청양군 기숙형 공립 정산중학교의 라온도서관 풍경. 점심시간에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온통 논과 밭, 시장에 나가도 3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든 면 소재지. 줄어든 학령인구로 충남 청양군에선 소규모 중학교 세곳의 통폐합이 이뤄졌다. 8년 논의 끝에 최근 하나의 학교로 문을 열었다. 학교 수가 줄어든 대신 국내 최고 시설에 대도시 못지않은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자 전국에서 전학 문의가 쇄도했다. 시골에 좋은 학교를 지으면 인구가 도시에 몰리는 걱정을 덜 수 있을까.

“지난주 뉴스에 학교가 소개되고 나서 전국에서 전학을 오겠다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 20~30통씩 오고 있어요. 업무가 마비될 정도예요. ‘어떻게 하면 입학시킬 수 있느냐’ 묻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님들이 많아요.”(교감 선생님)

“이 지역에 사는 분들의 자녀만 입학이 가능하니 귀농을 하시든가 해야지요. 아이들만 입학시키는 건 불가능해요.”(교장 선생님) 지난 24일 찾아간 충남 청양군 정산면 정산중학교는 요즘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농촌지역에 인구가 줄자 면지역 중학교 세곳을 통폐합해 기숙사가 있는 공립 중학교를 새로 지었는데, 최신식 시설과 특급 교육환경이 전국에 소개되자 너도나도 자녀를 이곳에 보내겠다는 문의 전화가 폭주한 것이다. ‘주소지만 근처로 옮겨놓으면 학교에 아이를 보낼 수 있냐’는 문의에 학교는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여기 학원도 뭣도 아무것도 없어요. 이런 곳에 사는 아이들이 혜택을 받아야지, 뜬금없이 전학을 온다니 안 될 말이에요.” 때마침 학교에 찾아온 지역 주민은 목소리를 높였다. 인구 3만여명이 사는 충남 청양군은 주변이 논밭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9개 면 중 하나인 정산면은 시장에 나가도 3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면 소재지 농촌이다. 카페 대신 다방이 있고, 학원은 하나도 없다. 칠갑산이 보이는 천혜의 자연환경이지만 요즘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교육환경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대도시로 나가고 학령인구가 점점 줄어, 한창 학교에 다닐 10대 인구가 2004년 3991명에서 2018년 2419명으로 크게 줄어버렸다. 2012년 4개 면 지역에 흩어진 3개의 중학교가 통폐합 대상이 됐고, 8년간의 긴 과정을 거쳐 한곳으로 합쳤다.

최고의 시설, 교육 비용은 무료

학교 수를 줄이는 대신 최고의 시설 투자가 이뤄졌다. 친환경 사업에 공모하는 등 각종 예산을 끌어와 마련한 341억여원으로 전교생 기숙사 생활이 가능한 건물을 지었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설비와 지하에 꾸려진 지열발전 시스템으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해 팔 수 있는 국내 최초 ‘에너지자립학교’를 세웠다. 태양열 시설을 제대로 가동하면 쓰고 남은 전기를 한국전력에 팔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지하 150m에서 사계절 23도로 유지되는 지하수로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기숙사 냉난방을 한다. 또한 모든 건물을 문턱 없이 설계해 교실과 기숙사에서 휠체어 장애인 학생이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했고, 건물마다 범죄 예방을 위한 최첨단 보안시설도 갖춰져 있다.

교실과 복도 사이는 통유리로 돼 있어 블라인드를 열면 교실 안에서도 폐쇄감이 덜하고 탁 트인 시야가 가능하다. 장애인 학생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교실과 복도 사이 문턱 없게 설계됐다.
교실과 복도 사이는 통유리로 돼 있어 블라인드를 열면 교실 안에서도 폐쇄감이 덜하고 탁 트인 시야가 가능하다. 장애인 학생이 이용할 수 있도록 교실과 복도 사이 문턱 없게 설계됐다.

유리 천장을 통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도서관 앞 마루 공간
유리 천장을 통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볼 수 있는 도서관 앞 마루 공간

건물 지하에 설치된 지열 발전 시스템
건물 지하에 설치된 지열 발전 시스템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며 드는 비용은 아직 없다. 학교 두곳이 폐지되면서 받은 통폐합 지원금 186억원은 기금으로 운영해 한해 18억원씩 교육활동지원사업 등으로 학생들에게 쓰인다. 전교생은 학교가 지급한 개인 악기로 1인 1악기 레슨을 받고, 로봇·드론 같은 기술교육에 창의미술·요리 같은 방과후 프로그램도 있다. 다채로운 스포츠를 배울 수 있는 체육관, 마사토 운동장에 생태학습장도 갖췄다.

단지 시설만 좋은 건 아니다. 전교생 126명에 교사 22명으로 교원 1인당 학생 수가 5.7명이다. 전국 중학교 평균 11.7명에 비하면 높은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악기, 스포츠, 요리, 창의미술 등 외부 초청 강사만 27명이다. 그간 농촌에선 누리기 힘들었던 교육 환경이다.

대규모 시설 투자와 예산 지원으로 농촌지역 교육의 질을 월등히 끌어올리자 의외의 결과가 생겨났다. 시설 좋은 학교가 문을 연다는 소식에 올해 상반기에만 정산중에 9명의 학생이 전학을 왔다. 전국에서 전학과 귀농 문의가 쇄도했다. 시골에 좋은 학교를 지으면 도시로만 몰리는 인구 걱정을 덜 수 있을까. 초특급 시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의 학교는 농촌지역 학생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말로만 듣던 클라리넷을 배울 수 있다니”

중학교 3학년 전가영(가명·15) 학생은 올해 3월 새로 이전한 정산중에 전학 왔다. 원래 인근 면에 있는 장평중에 다녔는데 학교가 기존 정산중과 통폐합되면서 학교를 옮긴 것이다. 한 학급에 6명이었던 반 친구들은 이제 19명이 됐다. 20명 안팎의 전교생은 126명이 되었다. 조별 활동도, 다채로운 체육 행사도 가능한 규모가 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수업을 하다 지난달 27일 학교가 문을 열었고, 가영은 새로 지은 기숙사에 열흘 전 입소했다. 24일 점심시간 기자와 마주친 그는 “친구가 많아져서 좋아요. 같은 방을 쓰는 친구 네 명과 아침저녁으로 이야기하는 게 제일 재밌어요”라며 기숙사 룸메이트와 찍은 셀카를 보내줬다.

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가영의 하루는 분주하다. 아침 6시50분쯤 기숙사 스피커에서 나오는 악동뮤지션 음악을 들으며 잠에서 깨면 룸메이트와 가위바위보를 해 세수할 차례를 정한다. 씻고 나면 아침밥을 먹으러 급식실에 간다. 이날은 밥과 국에 용가리치킨, 깍두기, 깻잎 반찬이 나왔다. 급식을 먹고 나서 8시30분쯤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교실로 간다.

1인 1악기 예술교육에서 첼로를 택한 학생들이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사진 학교 제공
1인 1악기 예술교육에서 첼로를 택한 학생들이 강사의 지도를 받고 있다. 사진 학교 제공

밴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학교 제공
밴드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 학교 제공

댄스게임 펌프, 노래방 기계, 당구대 등 쉬는 시간 이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
댄스게임 펌프, 노래방 기계, 당구대 등 쉬는 시간 이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

새 학교에 온 가영이 제일 좋아하는 수업은 악기를 배우는 ‘감성팡팡 1인1악기’ 시간이다. 클라리넷을 선택한 가영은 학교에서 지급받은 개인 악기로 일주일에 두 차례 외부 강사 선생님께 레슨을 받는다. “말로만 듣던 클라리넷을 배울 수 있다니 정말 기뻐요. 몇번 수업했는데 도레미파솔라시도, 이제 계이름을 익혔어요.” 가영이는 살짝 들떠 있었다. 통기타,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밴드 활동을 선택한 친구도 있다. 2~3학년은 악기 대신 축구나 댄스 수업을 택할 수도 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교실에서 쏟아져나온 아이들이 복도 곳곳에 있는 여러 놀이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 점심시간엔 밥을 일찍 먹고 복도에 있는 당구대에서 삼삼오오 당구를 치거나, 음악에 맞춰 발판을 밟는 게임기계 ‘펌프’를 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노래방 기계에 들어가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부르기)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은 만화카페, 북카페처럼 생긴 도서관이다. 아이들은 몸을 편히 누일 수 있는 빈백 소파에서 좋아하는 만화를 읽기도 하고, 마루 공간에서 뒹굴기도 한다. 도서관 소파에서 친구들과 체스 게임을 하기도 하고, 동굴 같은 공간에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처박혀 있어도 된다. 이 학교 도서관의 세 가지 콘셉트는 ①혼자서도 숨을 수 있는 곳 ②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 ③독서나 공부처럼 나만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선동혁 사서교사는 “첫 독서습관을 기르는 학교 도서관은 너무 조용한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 책 안 봐도 그냥 와서 놀 수 있는 곳, 사춘기인 중학생이 우울하거나 혼자 있고 싶을 때 기분을 달래는 편안한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애초 칸막이가 있는 독서실 책상을 배치하게 돼 있던 도서관 설계안은 북카페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놓는 것으로 변경됐다.

세 학교를 합치기까지 8년

농촌지역의 소규모 학교 통폐합은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지역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교가 줄면 농촌 인구 감소가 더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우여곡절 끝에 새 학교가 문을 열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다. 2012년 청양군 4개 면에 걸쳐 있는 장평중·정산중·청남중 세 학교가 통폐합 대상으로 선정된 뒤 2013년 지역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찬성 여론이 더 높게 나왔지만, 점점 인구가 줄어가는 면지역에 학교마저 없어지면 어떻게 하냐는 주민들의 걱정이 컸다. 2014년 어렵사리 부지를 정하고 건물 설계안을 마련했지만, 해당 부지의 안정성이 낮아 학생 안전이 우려된다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현재 위치로 부지를 재선정하고, 민가와 농경지를 이전 협의하는 과정도 길었다. 통폐합 논의 시작 후 5년 뒤인 2018년에야 착공할 수 있었다.

지난해 5월 학교 통폐합 행정예고가 나온 뒤에도 갈등이 있었다. 폐교를 마주한 두 학교 학부모들이 반대 의견서를 냈다. 정산중으로 흡수통합하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교육청이 재차 설명회, 간담회를 열었고 주민 설득 과정을 거친 뒤 다시 행정예고를 했다. 올해 1월 장평중과 청남중의 마지막 졸업식에서 주민들은 수십년 역사의 학교가 사라지는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장평중과 청남중 학생들은 새 건물로 이전한 정산중에 전학을 갔다.

8년간 의견조율 과정에 참여한 지역주민 이연규 ‘정산중 설립 실무추진위원장’은 “통폐합 과정에서 주민들끼리 서로 의견이 안 맞을 때 어려움이 있었다. 기숙형 학교를 짓는다는 계획에 ‘어린 학생들이 무슨 기숙사 생활이냐’며 반대 여론도 있었다. 8년간 긴 협의 시간으로 학생들에게 혜택이 늦게 간 점이 아쉽다”고 했다.

건물을 완공하고 드디어 개학을 앞둔 올해 초, 예상치 못한 전염병이 확산돼 제때 학교 문을 열지 못했다. 3~5월 원격수업으로 대체했다. 지난달 27일 3학년부터 차례로 등교개학을 시작했고, 지난 15일 기숙사 문을 열 수 있었다. 다행히 청양군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아 외부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조건이었다. 운영을 시작한 지 열흘 가까이 된 기숙사에는 전교생 126명 중 88명이 입소해 있다.

이날 점심시간이 되자 4교시를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도서관으로 몰려왔다. 도서관 앞 마루 공간에서 놀고 있는 세 명의 중1 학생들에게 물었다. “학교 어떤 점이 좋아요?”(기자) “시설이 좋아요. 기숙사 생활이 좋아요.”(학생 ㄱ) “단체 생활인데 어려운 점은 없어요?”(기자)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것보다 좋아요.”(학생 ㄱ)

기숙사 내 휴게공간과 체육시설
기숙사 내 휴게공간과 체육시설

농촌에 좋은 학교가 들어선다는 것

코로나19로 개학이 늦어지자 농촌에 있는 학생들의 생활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 농번기에 바쁜 부모들이 일을 나가고 아이 혼자 집에 있거나, 조손가정에서 제때 끼니를 못 챙겨주는 경우도 상당했다. 등교개학이 미뤄지며 실시한 온라인 심리검사에서 아이들의 우울감이 다소 높게 나왔다. 고정옥 교감은 “하루에 한 끼, 그것도 라면에 밥 말아서 겨우 먹고 있을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서라도 얼른 개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학교와 기숙사가 문을 여니 아이들이 하루 세 끼 영양가 있는 밥을 먹게 됐다”고 전했다.

남학생 기숙사 사감선생님인 송세영 기숙사 부장은 열흘간 기숙사를 운영하며 느낀 점이 있다. 금요일 오후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사흘간 집에서 지내다 월요일에 다시 기숙사에 입소하면, 월요일에 가정상비약을 찾는 경우가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은데, 집에서 돌봐주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송 부장은 “집에서 케어받지 못한 아이들이 기숙사 덕분에 케어되는 걸 볼 때 학교가 있어 다행이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농가들의 평균 소득에 비춰볼 때 농촌지역 가정형편이 좋기 어렵고 청양군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농촌 아이들도 최고의 교육여건에서 경쟁력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다. 장권수 교장은 “열악한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청소년기 3년간 시설 좋은 학교에서 즐거운 생활을 누리게 하면 아이들 개개인이 행복한 건 물론이고 국가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 학교가 도농 격차 해소의 좋은 모델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양/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