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제 졸업 뒤 전문대로…
유턴 입학생 7천명 넘는 시대

엔진 전자제어·전기공압 배우며
‘자동차 전문가’ 꿈꾸는 여학생
“부품 개발 연구하고 싶어요”

반도체회사 퇴직 뒤 농업 배우며
공대생에서 ‘스마트팜 전문인’으로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지식 배워”

평생교육의 시대 ‘전문인’ 꿈꾼다면
전문대 2차 수시모집도 노려볼 만
전문대 우수 재학생 동행 취재기

지난 10월15일 남시안 학생(아주자동차대 스마트자동차 융합기술 전공)이 엔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10월15일 남시안 학생(아주자동차대 스마트자동차 융합기술 전공)이 엔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대부분의 입시 정보는 4년제 일반대학에 맞춰져 있다. 고등학교 진로진학 상담 교사, 사설 입시 컨설팅 업체와 학부모 등 모두의 관심사는 ‘얼마나 서열 높은 대학에 가느냐’다. 그리고 이를 학생 인생의 성공과 실패로 쉽게 재단한다. 다른 꿈을 꿀 수 없는 사회다.

한데 조금만 눈을 돌려보자. 수능을 본 뒤 무작정 점수에 맞춰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시대는 지났다. 점수 따라 일반대학에 입학해도 졸업한 뒤 취업이 문제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4년제 일반대학을 졸업한 뒤 전문대에 재입학한 신입생이 7285명에 이른다. 이른바 ‘유턴 입학생’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늦게나마 진로를 정한 뒤 전문대학에 재입학해 2~3년 동안 이론과 실무를 밀도 높게 배운다. 전문대 졸업과 동시에 실무자로 성장한다.

오는 11월6일부터 20일까지 전문대학 2차 수시모집이 진행된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전문대 2차 수시모집’에 관해 모른다. 그만큼 전문대학과 관련한 입시 및 생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실제 전문대 학생들을 만나 하루 동안 동행 취재를 해봤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한 전문대 학생들은 어떤 커리큘럼에서 무엇을 꿈꾸며 지낼까?

지난 3월28일 서울모터쇼에서 학교 부스를 준비하고 있다. 남시안 학생(사진 오른쪽)이 전기로 압력을 조절해 실린더를 제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난 3월28일 서울모터쇼에서 학교 부스를 준비하고 있다. 남시안 학생(사진 오른쪽)이 전기로 압력을 조절해 실린더를 제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동차에 ‘미친’ 친구들

10월15일 화요일 아침 9시. 충남 보령시에 있는 아주자동차대학을 찾았다. 자동차에 푹 빠진 한 학생을 만나기 위해서다. 먼저 도착한 기자가 자동차 대학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강의동에 들러 시간표를 훑어봤다.

자동차 개발, 자동차 디자인, 자동차 제어 및 진단 기술, 모터스포츠, 자동차 디지털 튜닝, 친환경 전기자동차, 스마트자동차 융합기술, 자동차 멀티 어드바이저 등 자동차 관련 학과의 시간표 2~3년치가 빽빽하게만 보였다. 거의 고교 수험생 수준으로 이론과 실습 수업이 가득 차 있었다.

여자 기숙사에서 막 나온 아주자동차대학 1학년(스마트자동차 융합기술 전공) 남시안씨를 만나 강의실로 이동했다. 남씨는 “자동차에 ‘미친’ 친구들은 여기 다 모였다고 보시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화요일 1교시는 이동원 교수의 ‘전공적성개발2’ 시간. 엔진 전자제어를 가르치는 이 교수는 남씨의 멘토 교수다. 대학 생활 2년 동안 이론과 실습 및 생활 상담 등을 해준다. 업계 최신 경향을 톺아주며 학생들 진로를 함께 고민하기도 한다. ‘멘토 교수’ 제도로 앞길을 살펴가는 학생들에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다. 학습과 실전에 필요한 ‘취업 필살기’ 등을 전수하는 것도 전문가인 교수들의 몫이다.

지난 10월15일 남시안 학생이 조교, 선배들과 수제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10월15일 남시안 학생이 조교, 선배들과 수제차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김지윤 기자
재미있는 엔진 제어와 공업물리

오전 11시.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수제차’가 있는 실습동으로 이동하면서 남씨의 시간표를 살펴봤다.

영어회화, 엔진 전자제어, 공업물리, 전기공압 제어, 전공적성개발2, 기술창업의 이해, 시퀀스제어, 유아르아이(URI)캡스톤 디자인1, 드론 조종 응용까지 23학점이다. 남씨는 “어제도 아침 9시에 등교해 저녁 9시쯤 수업이 끝났다”며 “오후 4~5시께 끝나는 날이면 과제 실습, 벤츠나 아우디, 재규어 등 자동차회사 공모전을 준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했다. 학교가 도심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워낙 공부할 게 많아 심심할 틈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남시안 학생이 멘토인 이동원 교수(엔진전자제어 수업)와 일대일 진로 상담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남시안 학생이 멘토인 이동원 교수(엔진전자제어 수업)와 일대일 진로 상담을 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남씨의 전공은 스마트자동차 융합기술. 고교 시절 3년 동안 아두이노, 파이선 등 시(C)언어를 배우며 공학도의 꿈을 키웠다. 기계공학, 전자공학 등 관심사는 다양했지만, 그 가운데 어렸을 때부터 관심 있던 자동차를 전공으로 택했다.

자동차 대학에 입학하겠다고 했을 때 고교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만류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 여자가 거의 없는데 괜찮겠냐’는 말이었다. 남씨는 “우리 대학에 여학생이 거의 없는 건 사실이다. 다만 내가 그 길을 시작해서 닦아놓으면 나중에 내 후배들이 조금 수월하게 전문 영역에 진입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전기공압제어 시간에 김근묵 교수와 함께 실습 중인 남시안 학생. 김지윤 기자
전기공압제어 시간에 김근묵 교수와 함께 실습 중인 남시안 학생. 김지윤 기자
남씨는 “고교 시절 이과였다. 코딩을 배우고 익히며 내 꿈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대학 입학원서를 내면서 자동차 분야 전문인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문가를 키우는 전문대학에서 2~3년 타이트하게 공부하면 저의 평생 실력이 다져질 거라 생각합니다.”

남씨는 학기 중 공부 외 다양한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자동차인’을 꿈꾸는 후배들을 위해 진로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직접 고등학교를 찾아가 학교 소개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인천정보산업고에서 미래의 후배들을 만났다. 아주자동차대학에는 자동차 한 분야에 관해 배우는 학생만 500명이 넘는다. 자동차학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만큼 최신 실습장비 등이 갖춰져 있다. “서울모터쇼에 유일하게 초청받아 나가는 곳이 우리 대학입니다. 그 시즌에는 우리가 직접 만든 수제차를 선보이고 전자제어 등을 시연하기도 하죠.”

남시안 학생이 지난 10월15일 실습동에서 자동차 보닛을 열어 확인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남시안 학생이 지난 10월15일 실습동에서 자동차 보닛을 열어 확인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자동차의 심장, 엔진 해체해봤니?

늦은 오후, 강의동을 옮기는 중간중간 남씨는 1학기 때 실습했던 엔진 해체 및 조립 실습, 파워트레인 기술동 실습 등에 관해 설명했다. 남씨는 지난 9월 24~25일 열린 ‘2019 비즈니스 모델 박람회’에서 출력과 연비를 향상시킨 자동차용 머플러를 개발·발표해 심사위원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현재 특허출원 중이다.

자동차 대학이라고 하면 공업고등학교 졸업생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입학생들을 보면 일반계고는 물론 외국어고등학교 출신도 있다. 말 그대로 ‘자동차 마니아’들이 이리저리 알아본 뒤 입학하는 ‘꿈터’인 것이다. 남씨는 “2학년이 되면 산업기사 자격도 취득할 예정이다. 자동차 관련 기업 연구소에 취업해 연구·개발하면서 전문인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에는 생산보다는 정비 쪽에 미래가 있다고 봐요. ‘여자는 자동차 업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열심히 이론과 실습을 병행할 생각입니다.”

공대생, 퇴직하고 농부 되다

4년제 일반대학 공대를 졸업한 뒤 2년 동안 반도체회사에서 근무하다 유턴 입학한 학생도 있다. 충남 천안에 있는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 계열 스마트팜 전공 2학년 박상욱씨 이야기다.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계열 스마트팜 전공 학생들이 유리온실에서 실습하고 있다. 연암대 제공
연암대학교 스마트원예계열 스마트팜 전공 학생들이 유리온실에서 실습하고 있다. 연암대 제공
4년제 공대를 졸업한 뒤 제법 탄탄한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박씨는, 예전부터 관심 있던 원예 쪽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한 뒤 유턴 입학을 한 것이다.

박씨는 특히 스마트팜 선진국 상황을 보며 재입학을 결정했다. 한국보다 농사 면적이 좁은데 토마토 등 작물에서 더 많은 생산량을 내는 네덜란드 사례를 보면서 이 전공에 확신이 생겼다고도 했다.

박씨는 “학교에 최신 실습 공간이 마련돼 있다. 유리온실, 비닐온실, 수직농장 등 시설에서 강의 때 배운 것을 곧바로 적용해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첨단 환경제어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팜 시설을 이용해 원예작물을 키우고 모니터링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물에 얼마만큼의 온도·습도와 영양이 필요한지 자료를 수집해 빅데이터 관리도 하고 있죠.”

‘전문인’의 시대에 편견은 없다

전문대학에 입학한 뒤 가장 좋았던 점은 ‘스마트팜 영양관리’ 등 언뜻 막연해 보이는 전공 내용을 자신의 눈과 손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씨는 현재 졸업학기를 맞이해 ‘스마트팜의 현재와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논문도 쓰고 있다. 논문에는 공자 왈, 맹자 왈 식의 공허한 말이 아닌,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이론과 기술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다.

농업이라고 하면 몸 쓰면서 힘든 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게 박씨의 생각이다. 학교에서 사물인터넷(IoT) 등 자동화 기능을 배우며 농업도 과학이라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농사짓겠다고 하면 다들 말리는 분위기가 있죠. 한데 학교의 다양한 지원 속에 스마트팜 전문인으로 클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문대학에 대한 편견을 접고 확실한 진로를 선택한 사람만이 ‘전문인’으로 성장할 수 있겠지요.”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