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강사법(개정된 고등교육법) 사태는 한국 사회와 한국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강사법 사태를 보며 대한민국이 참으로 무책임한 국가임을 새삼 깨닫는다. 고등교육에 대해 이렇게 무심한 나라가 있을까. 대학정책을 오로지 취업정책으로 생각하고, 교육정책을 그저 입시정책으로 여기며, 학문정책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런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

장기적인 (고등)교육정책의 부재로 인해 한국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기형적인 구조를 갖게 되었다. 무려 87%의 대학이 사립대학인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사립대학의 왕국’이라는 미국조차 그 비율이 20%를 넘지 않고, 독일의 경우는 절대다수가 국립대학이다. 게다가 정부 지원 또한 대학 재정의 15%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이마저도 국립대학에 집중되어 사립대 지원은 지극히 미미하다. 한국은 사실상 국가가 고등교육을 포기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강사법 사태의 근본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법률 개정으로 발생할 비용에 대해 국가가 방관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재정 부담은 대학에 전가되고, 대학은 다시 교수와 강사에게 부담을 떠맡기는 형국이다.

나아가 강사법 사태는 우리가 얼마나 비열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처연하게 보여준다. 여성혐오 사이트, 장애인학교 설립 논란, 예멘 난민 사태 등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모두 여성, 장애인, 난민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는 사건이다. 강자에게 맞서지 못하는 약자들이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표적으로 삼는 일이 사회적 관행이 되었다. 강사법 논란의 본질은 모든 문제를 약자에게 전가하는 비열한 사회의 습속이 지식사회에서 재현됐다는 것이다.

강사법 사태는 또한 한국 대학이 “미래의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훔볼트)가 아니라, 사회의 온갖 병리가 집적된 디스토피아임을 폭로한다. 이번에도 대학은 어김없이 강사법 사태를 대학의 수익성을 높이는 기업형 구조조정의 기회로 철저히 악용하고 있다. 진리와 정의의 전당으로서 사회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대학은 적폐의 온상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

강사법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썩은 대학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무너진 교육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분명한 것은 정부는 대학/교육 문제를 풀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점령하고 있는 청와대와 국회에 문제 해결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더 이상 무책임한 국가, 비열한 사회에 대학정책, 교육정책을 내맡길 수 없다. 한국의 교육/대학 문제를 풀 유일한 방법은 교육자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다.

독일도 그랬다. 교육자와 연구자가 하나의 거대한 조직, 즉 ‘교육학문노조’(GEW)에 모였기에 1970년대 초 교육개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도 전교조, 교수노조, 강사노조 등 교육 단위와 신분에 따른 개별 조직을 넘어 교육과 연구라는 공동의 활동과 목적을 토대로 거대한 교육자 조직을 건설할 때가 되었다. 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 초·중등 학교, 대학교의 교사, 교수, 강사와 연구소의 연구원이 하나의 조직으로 뭉쳐야 한다. 이것이 죽어가는 학교, 대학, 학문을 살리는 최후의 방편이다.

이런 취지에서 ‘아래로부터의 교육혁명’을 이끌 ‘한국교육연구노조’의 건설을 모든 교육자, 연구자에게 제안한다. 한국의 교육자여 단결하라! 우리가 얻을 것은 참교육과 참학문이고, 우리가 잃을 것은 거대한 무력감과 패배주의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