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고윤결
그래픽 고윤결

지난 일요일 오후 스마트폰으로 포털에서 기사들을 보다가 눈을 의심했다. “서울이 유령도시가 됐다”는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의 온라인 경제매체 <조선비즈>가 9일 오후 5시34분 “우한폐렴 공포에 ‘유령도시’ 된 서울…휴일에도 쇼핑몰·영화관 텅텅 비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린 것이다. 서울 강북과 강남의 백화점, 음식점, 영화관 등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두고 ‘유령도시’가 됐다고 과장한 것이다. ‘공포 마케팅’이다. 이 기사에는 문재인 정부를 원색적으로 욕하는 댓글이 200개 넘게 달렸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조선일보가 한시간쯤 뒤인 6시42분 “발길 끊긴 쇼핑몰·영화관…우한폐렴 공포에 유령도시로 변한 서울 상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포털에 ‘주요 뉴스’로 내보냈다. 조선비즈 기사를 제목 앞뒤만 바꿔 또 올린 것이다. 자신들도 민망했던지 조선비즈 기사에선 앞에 있던 강북 사례를 뒤로 보내고 강남 사례를 앞으로 가져왔다. 이 ‘어뷰징 기사’엔 문재인 정부를 욕하는 댓글이 2천개 가까이 달렸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언론이 공포심을 부추기는 선동적 표현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은 “가짜뉴스 퇴치가 더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들의 절절한 호소가 조선일보엔 소 귀에 경 읽기인 셈이다.

<중앙일보>는 7일 “정부의 우왕좌왕·뒷북·눈치보기가 신종 코로나 사태 키워”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문재인 정부의 컨트롤타워 혼선, 안이한 대응, 중국 눈치보기가 사태를 심화시켰다고 주장하면서 “6일 오전 일본은 요코하마항에 들어온 크루즈선 전체를 봉쇄했다. 배 안에서 확진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3700여명의 탑승객 전원을 열흘간 해상 격리했다. “예방조치는 과하다 싶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다”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골때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다.

일본 크루즈선의 확진환자가 6일 20명에서 12일 174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검역관까지 감염됐다. 아베 정부의 뒷북 대응과 부처 간 엇박자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중앙일보 사설이 나오기 전인 6일 오전부터 아베 정부의 부실한 초동 대처를 비판하는 보도들이 나왔다. 일본 정부가 크루즈선에 탑승했다가 홍콩에서 하선한 남성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통보를 홍콩 당국으로부터 받은 게 2일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흘이 지난 5일에야 승객들의 식당·극장·수영장 등 공용시설 이용을 제한했다. 이를 모르고 사설을 썼다면 게으른 것이고 알고 썼다면 양심 불량이다.

그동안 ‘기승전-최저임금’ ‘기승전-소득주도성장’으로 재미를 본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코로나 사태를 두고 ‘기승전-문재인’ 식의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모든 문제를 정부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국민 불신을 조장하려는 정파적 프레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4·15 총선의 전초전쯤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코로나 사태는 국민 생명·건강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다. 언론은 시민들이 지나친 불안에 빠지지 않도록 신중한 보도 태도를 보여야 마땅하다. 또 가짜뉴스가 나돌면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시민들의 공포심을 부추기고 정부 불신을 조장하는 보도는 위기 극복의 발목을 잡는 짓이다.

다행히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의도가 이번에는 일부 댓글 전문 누리꾼 등을 제외하면 먹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팀이 한국리서치에 맡겨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7일 공개한 결과를 보면, 2015년 ‘메르스 사태’와 비교해 정부가 대응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44.1%로 “못하고 있다”는 응답 27%보다 훨씬 많았다. 한국갤럽과 리얼미터가 각각 7일과 5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긍정적 평가가 높게 나왔다.

감염병에 대한 우리 사회 전체의 대응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 확산 방지와 환자 치료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방역당국,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의 노고가 크다. 성숙한 시민의식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괜한 헛심 쓰지 말고 기자협회의 ‘재난 보도 준칙’을 지키기 바란다.

안재승 ㅣ 논설위원

js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