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영 ㅣ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여론조사 신뢰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수상한’ 여론조사 사례들을 집중적으로 보도한 한 언론사의 기사가 발단이 됐다. 특히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투표한 층이 과대 표집되고 있다는 보도는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여론조사의 품질 개선, 공정성, 신뢰성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욱이 내년 4월이면 21대 총선이 치러진다. 수많은 여론조사가 쏟아질 것이고 때로는 엇갈리는 결과들 사이에서 유권자의 혼란도 가중될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은 어떤가? 선거국면만 되면 여론조사 보도에 열을 올리는 언론은 책임에서 자유로울까?

여론조사의 위력은 막강하다.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지지도, 정당 지지도 등은 정부와 정당의 정책 수립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민주주의에서 여론은 곧잘 여론조사로 등치되는데, 특히 국민 참여를 중시하는 민주정부일수록 정부 정책 결정에 여론조사가 자주 활용된다.

이 대목에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여론조사는 그 자체보다는 언론 보도를 통해 비로소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결과가 언론에 한 줄이라도 보도될 수 있도록 애쓴다. 반면 언론사는 여론조사 수치의 직관성, 강력한 메시지 때문에 여론조사에 더 의존하게 된다. 저널리즘의 위기가 깊어질수록 자명하고 합리적인 근거로서 여론조사 보도의 중요성은 높아진다. 선거국면은 물론 언론사가 시도하는 많은 기획에서 여론조사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여론조사와 언론보도 간 상호의존이 강화된다.

특히 선거 시기에 여론조사 보도의 과열은 심각하다. 경합도가 높아 예측이 어려울수록 여론조사 보도가 쏟아진다. 하지만 우열이 확실해서 예측 가능한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2017년 대선이 대표적 사례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 직후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음에도 많은 언론사가 제각각 여론조사를 했다. 큰 비용을 들여 차별성 없는 결과를 보도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래도 여론조사는 계속됐다. 언론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선거국면이 아니라도 중대 이슈가 발생하면 긴급 여론조사가 실시되곤 한다. 이럴 때 언론사가 여론조사기관에 낮은 단가, 촉박한 시일 내 조사 완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론조사의 품질 하락에 언론사도 공모자는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몇년 전부터 여론조사기관들이 정기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 지지도, 주요 정책에 대한 의견 등을 포함한 핵심 여론 동향이 담겨 있어 언론사는 자체 여론조사를 대폭 줄이고 정례 조사 결과를 인용 보도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조사 결과는 동일한데 보도는 차별화하려다 보니 선정적 제목, 과도한 해석이 난무한다. “언론에서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면 ‘역대 최저’ ‘지지율 반등’ 이런 말들을 많이 사용한다. 하지만 막상 퍼센트를 보면 1%포인트 정도의 차이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보도가 유권자들의 인식을 왜곡한다.” 여론조사 전문가 정한울 박사의 지적이다. 곱씹을 만하다.

공적 영역에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감시 없는 권력’, ‘마음만 먹으면 조작이 가능하다’ 등은 언론의 단골 비판 소재다. 손전화와 집전화의 비율, 응답률, 샘플링 방법, 조사 방식 등을 둘러싼 논란도 늘 제기된다. 이런 깐깐한 비판들이 여론조사의 품질 향상에 기여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에는 비판 주체의 성찰성, 윤리적 책임성이 뒤따라야 한다. 오랫동안 선거여론조사를 연구해온 한 정치학자는 “정당이나 언론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조사 결과만 뽑아 쓰고 맞지 않는 조사에 대해서는 ‘저품질’ 낙인을 찍으면서 여론조사 불신, 더 나아가 정치불신을 조장해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새겨들어야 한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은 시대다. 누가 더 지지율이 높은가에만 주목하는 경마 중계식 보도, 속보 경쟁, 자의적이고 과도한 해석이 반복되는 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다. 이것이 언론 전반에 대한 불신, 나아가 정치 불신으로 이어지리라는 점도 자명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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