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김지야
그래픽 김지야

아베 정부가 7월1일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표한 이후 지소미아 종료일을 사흘 앞둔 지금까지 <조선일보> 보도는 한마디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는 수출규제를 “폭력적이고 야비한 수단”이라고 비판도 했지만, 일관된 주장은 우리 정부가 경제 보복을 자초했으니 무릎을 꿇으라는 것이다. “이 사태를 만든 것은 법원과 정부다. 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달리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해 일본의 반발을 불렀다. 현 정부는 이 외교 갈등을 풀기 위해 고심한 전 정부와 법원을 사법 농단이라고 수사해 감옥에 넣었다.”(7월11일 사설) 당시 미국과 유럽 언론은 물론 일본 언론조차 아베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질타했는데, 조선일보는 딴소리를 했다. 조선일보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국가나 개인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고 강변한다. 아베 정부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조선일보 일본어판은 한술 더 떴다. 7월4일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를 일본어로 옮기면서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로 제목을 바꿔 달았다. 비판 여론이 일고 청와대도 문제 제기를 하자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슬그머니 삭제했다. 일본의 극우 언론 <산케이신문>은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언론 통제를 한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조선일보는 7월9일 사설 ‘수학여행에도 친일 딱지, 시대착오 행진 끝이 없다’ 내용 중 “일제 강점기”를 일본어판에선 “일본 통치시대”라고 썼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선일보는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가 치명타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정부가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2차 보복에 나서자 시점까지 못박아 자동차 배터리는 1개월, 반도체는 2개월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겁을 줬다. “한국 10대 그룹, 일 보복 한달 새 시가총액 17조 증발했다”며 주가 하락 원인이 모두 경제 보복 때문인 양 공포감을 부추겼다. 반면 우리 국민들의 자발적 불매운동은 ‘관제 민족주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관제 국산화론’으로 비하했다. “모든 일을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는 나라” “한번 각오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나라”라며 일본을 추켜세우면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일으키려는 것은 득이 되지 못한다. 일본은 한국 정부와 한국민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고 ‘훈계’를 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조선일보의 ‘희망’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지속적인 불매운동에 아베 정부는 당황하고 있고, 수출규제로 일본 경제가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으며, 우리 기업들의 소재·부품 국산화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조선일보가 지소미아 종료일이 다가오자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안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출규제를 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했다. 다음날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이 ‘문 대통령, 미국 면전에서 지소미아 거부’였다. 감히 큰형님 미국 앞에서 무례하게도 작은형님 일본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외교적 해법을 찾으려는 우리 정부의 노력을 조롱한다. 문 대통령이 지난 4일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에게 대화를 제안한 것을 “구걸하는 모습”이라고 막말을 했다. 산케이신문의 악의적 보도를 근거로 “일본에서는 한국이 양해 없이 사진을 촬영해 공개했다고 한다. 국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라고 비아냥거렸다.(11월16일 사설) 또 구체적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지소미아가 종료되면 “미국이 자동차나 철강 관세 인상으로 무역 보복을 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고 주장했다.(18일 사설) 미국한테 일본처럼 한국에 보복하라는 얘기로 들린다. 비애감마저 든다.

“한국은 안보상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수출규제를 한 아베 정부가 우리 정부에 “안보상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먼저 수출규제를 풀고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는 게 순리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조선일보 사설에서 아베 정부의 태도 변화 요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는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재승ㅣ논설위원

jsah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