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규
디지털영상부문장

부질없는 얘기지만, 내가 처음 기자생활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신문산업은 호시절이었다. 정기 독자가 지금의 2~3배는 족히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지하철에서 넷에 한명 정도는 신문을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신문 기사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얘기되는’ 제보도 신문사에 집중됐다. 그렇다고 그때 기자들이 지금 젊은 기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거나 유능했던 건 아닌 것 같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의문의 1승’이라고나 할까?

고작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신문의 위상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내는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를 보면, 1993년 87.8%이던 종이신문 열독률(지난 1주일간 신문을 읽은 비율)이 2017년 16.7%로 떨어졌다. 하루 평균 이용시간도 42.8분에서 4.9분으로 급감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아침에 신문을 현관 자전거에 올려놓고 집을 나서면 퇴근할 때까지 그대로 놓여 있기 일쑤다. 아내와 아들딸 모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얘기다.

더 큰 걱정은 나이가 젊을수록 신문을 안 본다는 거다.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보고서에서 20대의 하루 평균 신문 이용시간은 1.1분에 불과했다. 요 몇년 새 부쩍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신문 소멸’이 양치기 소년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마저 든다.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사이면서 디지털 구독에서도 유의미한 성공을 거둔 <뉴욕 타임스>의 최고경영자 마크 톰슨은 올해 2월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인쇄물 형태의 뉴스를 볼 수 있는 시기는 10년 정도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직 미디어 경영자의 경고인지라 더 무겁게 다가온다.

신문이 이처럼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추락한 직접적인 계기는, 주지하다시피 인터넷 기술의 급속한 발달이다. 언론은 디지털 혁명을 예고하는 기사를 무수히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신의 앞가림을 하는 데는 무능했다. 인터넷이 뉴스 소비 습관을 어떻게 바꿀지, 디지털 시대에 맞는 뉴스 콘텐츠 유통방식과 수익모델이 뭔지 고민하는 언론은 드물었다. 디지털 파도 뒤에 어른거리는 디스토피아의 그림자를 외면한 채, 인터넷이 가져다줄 떡고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인터넷 시대 초기, 푼돈에 눈이 멀어 포털에 뉴스를 헐값에 넘긴 건 자해 행위에 가까웠다. 포털에 곳간 열쇠와 ‘콘텐츠 주권’을 통째로 내준 꼴이었다. 온라인 광고 수익을 위한 저열한 트래픽 경쟁은 스스로를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게 했다. 일찌감치 디지털 유료 구독이나 멤버십 같은 독자 기반 수익모델을 구축한 미국과 유럽 언론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뒤늦긴 했지만, 혁신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한때 언론계에선 ‘뉴욕 타임스 혁신 보고서’ 읽기가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 최근 들어 ‘혁신’이라는 말이 부쩍 자주 들려오는 것은 그만큼 언론이 위기라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나 구호만 요란할 뿐, 뭘 어떻게 혁신할지 답을 찾는 일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지난하기만 하다. 디지털 콘텐츠를 누가 생산할지, 포털이나 페이스북 등의 플랫폼을 통해 트래픽 유입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와 같은 초보적인 논의에 머물러 있는 언론이 여전히 대다수인 듯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변석개하는 유행을 좇아 콘텐츠를 생산하고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플랫폼을 갈아타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힘겹게 따라붙었다 싶으면 또 다른 물결이 밀려온다. 내년에는 또 어떤 변화가 닥쳐올지, 올드 미디어는 또 얼마나 ‘뺑뺑이’를 돌지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