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편으론 안도한다. ‘한국이 세계 사회의 당당한 일원임이 분명하구나.’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가짜뉴스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다른 한편으론 불안하다. ‘옛 병이 도졌구나.’ 가짜뉴스가 무엇이며 어떤 매력이 있는지, 얼마나 유행했는지, 어떤 사회적 파장을 가져올지, 그러한 질문들이 이제 막 제기되었는데 벌써 대책이 나왔다. 사안 파악보다 대책이 더 빠르다. ‘공권력으로 가짜뉴스를 엄히 다스리겠다!’

나름 일리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 우리네 역사 때문이다. 먼저 가짜뉴스의 선배들을 소개하겠다. 소문과 음모론이다. 가짜뉴스는 선배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전하여 들리는 말’인 소문은 대선배다. 바로 아래 선배인 음모론은 ‘문제를 일으킨 공모자들의 의도와 계획과 신원을 명시’하는 체계적 소문이다. 막내인 가짜뉴스는 뉴스 형식을 빌린 소문과 음모론이다. 물론 음모론과 가짜뉴스의 기수 서열에 대한 다른 견해도 있지만, 일단 그리 정리하자.

한국에서 최고 권력자나 집권 세력을 겨냥한 소문과 음모론은 예전에 호되게 당했다. 유신정권 당시 대통령에 대한 험담은 소문, 어려운 용어로 유언비어 날조로 처벌받았다. 21세기 보수 정권에서 ‘4대강’ ‘자원외교’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질문은 음모론으로 낙인찍히거나 처벌받았다. 말하자면, 집권 세력의 심기를 거스르는 유언비어와 음모론을 공권력으로 엄히 다스리는 방법은 독재 정권과 보수 정권의 단골 약방문이었다. 구태와 결별하려는 현 정권이 그러한 낡은 약방문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소문·음모론·가짜뉴스가 순진무구하지는 않다.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특별히 위험하다. 폭력을 위험의 첫째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폭력을 야기하는 가짜뉴스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다.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잔뜩 담은 눈초리와 언행과 차별도 폭력이다.

둘째 기준은 폭력의 대상이다. 엘리트를 조준하는 가짜뉴스보다 약자를 겨냥하는 가짜뉴스가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가령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지령을 받아 교황을 만났다’는 가짜뉴스보다 ‘시리아 난민 신청자는 사기꾼이고 사회의 기생충이며 잠재적 강간범이다’라는 가짜뉴스가 더 위험하다. 엘리트에 비해 사회 약자들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째려본다고 당장 무슨 일이 생길까. 하지만 용모가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눈초리만으로도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상의 폭력과 부당한 차별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그런 일이 잦아졌다.

마지막 기준은 가짜뉴스의 통로다. 만약 공인받은 대중매체나 영향력이 큰 인물(예컨대 정치인)이 폭력을 야기하는, 그것도 약자를 좌표로 찍은 가짜뉴스를 유포하면 최고로 위험하다. 정보를 유포하는 통로의 공신력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는 분명 심각한 문제지만 촌각을 다투는 사안이 아니다. 내 제안은 이렇다. 첫째, 너무 호들갑 떨지 말자. 급하다고 진즉에 폐기했어야 할 약방문을 취하는 것은 문제 해결은커녕 또 다른 문제를 더할 뿐이다. 둘째, 가짜뉴스를 근절할 방법은 없다. 그리도 오랫동안 욕을 먹었지만 여전히 건재한 선배들이 그 증거다. 목표를 현실화하자. 셋째, 해결책은 그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가짜뉴스가 폭력과 대중매체 및 공적 인물이 만나는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