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참사·부당징계 책임 물어
해직자 복직투쟁도 나서기로
“국회 계류 언론장악방지법 통과 등
지배구조 개선돼야 낙하산 방지”
KBS·MBC 구성원들 사장·이사장 퇴진 요구 빗발

22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회사 쪽의 부당징계를 규탄하고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22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회사 쪽의 부당징계를 규탄하고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헌정 사상 가장 비정상적이었을 정권에 낙점돼서 ‘어용방송’이란 비판을 받게 만든 당사자가 갑자기 새롭게 거듭나서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영방송의 주역이 되겠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습니까?”

<한국방송>(KBS)의 20년차 이상 고참급 기자가 24일 사내 게시판에 실명으로 올린 글의 일부다. ‘당사자’는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이다. 이 글만이 아니다. 22일부터 한국방송 사내 게시판에는 전직 한국방송 기자협회장, 20년차 이상 기자 71명, 한국방송 피디협회 등 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개인·단체 성명이 잇따라 올라왔다.

<문화방송>(MBC) 상황도 비슷하다. 25일 콘텐츠제작국 소속 피디 29명은 6월항쟁 30주년 다큐를 만들던 김만진 피디의 부당징계를 규탄하며, 김장겸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앞서 22일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회사 쪽의 부당징계를 규탄하고 김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손팻말 시위를 했다. 노조는 또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퇴진 및 해직 언론인 복직 투쟁 시작을 선언했다.

■ 국민이 외면하는 ‘국민의 방송’ 공영방송 구성원들이 사장, 이사장, 핵심 간부진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세 가지로 추릴 수 있다. △일부 사장·이사장 등의 선임 과정에 ‘박근혜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점 △경영진·간부진이 파면된 권력의 ‘대리인’으로, 촛불·탄핵 국면에 방송 공정성을 무너뜨리며 공영방송 신뢰도를 추락시킨 일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기자·피디 등에게 부당징계를 일삼은 것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공영방송 내부의 ‘적폐 청산’이 목적인 셈이다. 퇴진 요구를 받는 이들은 모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4월 2차례로 나눠 발표한 ‘박근혜 정권 언론장악 부역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법원은, 2012년 문화방송 파업과 관련한 1·2심 판결에서 ‘공정방송 요구’가 공영방송 구성원의 정당한 파업 사유라고 판단한 바 있다. 방송 공정성이 공영방송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노동환경이라고 본 것이다.

공영방송 내부 반발에는 시청자들의 평가도 큰 영향을 줬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3월말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한국방송1 채널의 시청자평가지수는 2016년 11월 대폭 추락한다. 시청자평가지수는 시청자 4만8천여명이 채널별 프로그램 만족도·품질, 흥미성·다양성·신뢰성·공정성·공익성 등의 항목을 평가한 것으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사업자 재허가·재승인 심사에 반영된다. 한국방송1·2 채널과 문화방송은 ‘공정성’ 평가에서 민영 지상파인 <에스비에스>(SBS)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 ‘낙하산 인사’, ‘밀실 인사’ 차단하려면 “근본적·고질적 문제인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경영진·이사진을 선임하는 절차가 달라지지 않으면 방송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방송 사장 선출권을 가진 한국방송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는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이뤄져 있다. 두 회사 이사회가 정부·여당에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지속해서 받는 이유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와 공기업이 지분의 다수를 차지하는 보도전문채널 <와이티엔>(YTN)도 비슷한 상황이다. 공영언론의 사장·이사진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매번 ‘낙하산 인사’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바로 이런 구조 탓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당시 야3당 의원 162명은 ‘언론장악방지법’이라 불리는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 등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방송통신위원회의 반발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미방위)에 계류 중이다. 언론장악방지법은 공영방송 이사진 추천 비율을 여야 7 대 6으로 개편하고, 사장 선임 등은 특별다수제(이사진 3분의 2 이상 찬성)를 도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민주당은 우선 6월 임시국회 때 야당과 합의를 하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공통공약과 합의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통과시킬 계획이다. 언론장악방지법에 민주당은 의지를 갖고 있지만 야당과의 합의 여부가 중요할 듯하다”고 말했다.

한국방송학회 미디어제도개선연구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인숙 가천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건 언론학자들도 진보·보수 성향 구분 없이 동의하는 내용이다.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 보장도 중요하지만, 제도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진 뒤에 할 일”이라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