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종편을 떠났나’ 연재하는 이명선씨

“매일 아침 시청률 성적표 배달돼
50·60대에 맞춘 보도 경쟁 일상화
종편 내부에선 변화 기대 어려워”
진실탐사그룹 ‘셜록’서 다시 기자로
이명선 기자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명선 기자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방송이 출범하기도 전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고된 ‘언론고시’ 준비 끝에 거둔 결실이었다. 목표했던 언론사는 아니었지만, 새롭게 태어나는 매체에서 동경해왔던 기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자신보다 회사를 먼저 소개하며, “곧 개국하니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곳에서 3년 동안 일한 뒤, 남은 것은 오직 부끄러움뿐이었다.

지난 7일 종합편성채널(종편) 출신으로서 자신이 겪은 종편의 실체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이명선(31) ‘셜록’ 기자를 만났다. 이 기자는 2011년 10월 종편 <채널에이>에 공채 1기로 입사했고, 2014년 10월 퇴사했다. 이 기자는 지난 2월8일부터 다음 ‘스토리펀딩’에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라는 제목의 연재(storyfunding.daum.net/project/13293)를 시작했다. 독자들은 종편 출신 기자가 종편의 문제를 ‘내부고발’한다는 취지에 크게 호응했다. 1화를 올린 뒤 곧바로 계획한 후원 액수의 40%를 달성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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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종편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크다는 얘기겠죠.”

무엇보다 이 기자는 종편의 핵심 문제를 “과도한 상업주의”라고 진단했다. 종편이 4개씩이나 한꺼번에 생겨나면서 각 종편은 “‘레드오션’에서 어떻게든 시청자들의 리모컨을 붙들려 했고”, 과도한 시청률 경쟁 속에 저널리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개국 초기부터 매일 아침 24시간 동안 시청률의 변화 추이, 꼭지별 순간 시청률 등이 모두 기록되어 있는 시청률 성적표가 배달이 됐어요. 기자들도 시청률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죠.” 주 시청층이 50~60대이다 보니, 누가 더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보수적인 보도를 하는가 하는 경쟁이 벌어졌다. 편향 보도와 막말이 일상이 됐고, 팩트 확인이나 보도 가치를 묻는 목소리는 사라졌다고 한다.

그 속에서 이 기자는 “조직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대리 기자’로서 부끄러운 기사들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의 ‘다운계약서’ 의혹을 제기한 리포트를 가장 부끄러운 기사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문 후보가 2003년 상가건물을 팔면서 기준 시가보다 1억원가량 낮은 가격으로 신고했고, 세금 탈루를 한 정황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기사다. “당시 선배의 지시로 부산에 내려가 현장을 취재했지만, 의혹을 뒷받침하는 팩트를 찾아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선배는 ‘그냥 자기가 쓴 기사를 읽어서 보내’라고 했죠.” 결국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는 듯한 보도가 나갔다. 결과적으로 기사는 ‘오보’였다고 한다. 당시 그 동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바람에 문 후보가 공시지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팔았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후일담이 더 충격적이다. 당시 이 기사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 ‘경고’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리포트를 한 당사자인 이 기자는 최근에야 연재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어차피 ‘대리 기자’에 불과했으니, 회사는 제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겠죠.” 이는 종편이 외부의 비판에 얼마나 무감각하고 무관심한지 드러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명선 기자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명선 기자가 지난 7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현장 기자의 보고 내용 가운데 인터넷 포털에서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것이라면 거의 무조건 ‘단독’을 붙이는 행태, 북한 관련 뉴스라면 아무리 불분명한 내용이라도 손 비는 기자가 빨리 써서 내보내는 행태 등 이 기자의 증언들은 시청률 경쟁에만 매달리는 종편의 속살을 잘 보여준다. “보도·시사 비중이 워낙 높은데 기자 수는 터무니없이 적어서 노동 강도가 무척 세다. 좋은 품질의 기사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고도 했다.

어쨌든 종편이 지난 6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미디어로 자리잡은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현재 종편 3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두번째 재승인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종편이 여태까지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스스로 변화하길 기대할 순 없을까? 이 기자는 부정적이었다. “내부에서 바꿔보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남는 건 좌절뿐이었어요.” 노동조합을 설립하자는 목소리도 냈지만,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냥 ‘조용히 있다가 경력 쌓아서 다른 곳으로 옮겨라’ 하는 분위기가 강해요.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 경력채용 때면 보도국 전체 분위기가 술렁거릴 정도죠. 종편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이 기자는 현재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와 함께 진실탐사그룹 ‘셜록’이란 곳에서 다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기자는 알리고, 독자는 퍼트리고, 전문가는 해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탐사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집단이다. 별다른 제약 없이 중요한 사안을 끝까지 파고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로 일하는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종편에서 일했던 경력은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짐이에요. 하지만 다시는 ‘대리 기자’를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합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