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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김누리 칼럼] 메르켈 시대 16년과 대한민국 정치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1-10-28 (목) 21:59 조회 : 553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에서 자칭 ‘보수’라고 하는 자들을 한번 둘러보라. 그들은 공동체를 말하면 ‘빨갱이’라고 공격하고, 민족을 말하면 ‘용공’이라 비난하며, 역사를 말하면 도망가거나 왜곡하고, 문화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이처럼 좋은 보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12월 베를린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12월 베를린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습. 베를린/로이터 연합뉴스

김누리ㅣ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독일에선 이제 앙겔라 메르켈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연말에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가 새 총리로 임명되면 장장 16년간 독일 사회를 이끌어온 최장수 총리도 정치의 무대를 떠날 것이다. 메르켈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여전히 75%를 넘는 것을 보면,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은 아직도 식지 않은 모양이다.

‘메르켈 16년’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지의 슈테판 헤벨은 ‘앙겔라 메르켈의 6대 신화’라는 칼럼에서, ‘기후 총리, 모두의 총리, 유럽의 총리, 난민의 총리, 세계 정치인, 권력 정치인’이라는 ‘메르켈 신화’를 비판적으로 해체한다. 한편 쾰른대학 정치학과 토마스 예거 교수는 원전, 난민, 동성애 문제에서 메르켈이 보인 유연하면서도 결단력 있는 태도를 거론하며 “기민당에 껄끄러운 결정을 감행하도록 이끈 것”이야말로 메르켈의 ‘최대 치적’이라고 치켜세운다.

메르켈의 16년을 돌아보자니, 자꾸 대한민국의 정치가 겹쳐 보인다. 메르켈의 정치가 우리 정치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먼저, 메르켈의 16년 집권을 보며 정치지형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다. 정치지형이 바르게 짜여야 국가가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1949년 서독이 건국한 이후 2021년 현재까지 독일의 정치사를 돌아보면 대체로 16년을 주기로 중도우파(기민당)와 중도좌파(사민당) 정당이 주기적으로 정권을 교체해온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사민당이 신승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게 됨에 따라 ‘16년 주기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이러한 ‘16년 주기 정권교체’야말로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국가로 만든 ‘숨은 공신’이다. 지난 72년 동안 독일은 기민당의 성장 중시 정책과 사민당의 분배 지향 정책이 주기적으로 교체됨에 따라 성장과 분배가 이상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안정적인 복지국가로 발전해온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독일과는 너무도 다르다. 대한민국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된 이유는 바로 진보와 보수의 경쟁과 교체라는 성숙한 민주국가의 기본적인 정치지형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치지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우경화되어 있다. 보수를 참칭한 수구, 진보를 가장한 보수가 서로 과두 지배하는 정치지형이 우리의 진짜 모습이다. 이러한 ‘수구-보수 올리가키’로 인해 우리는 ‘사회적 지옥’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메르켈의 시대는 여성 정치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성찰하게 한다. 보수당인 기민당은 전통적으로 독일 정당 중에서 여성 대표성이 가장 빈약한 정당이다. 바로 그 때문에 역으로 여성 정치인인 메르켈을 당의 상징으로 내세웠고, 그것이 정치적 성공을 거둔 것이다. 독일 정치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여성의 대표성과 정당의 진보성이 정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진보적인 정당일수록 여성의 대표성이 강하다. 기민당<자민당<사민당<녹색당<좌파당 순으로 여성의원의 비율이 높다.

이것을 한국 정치에 적용해보면, 우리의 보수성이 또다시 드러난다. 해방 이후 가장 많은 여성의원이 진출했다고 하는 현재의 국회도 여성의원 비율은 채 20%가 되지 않는다. 여성이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좀 더 넓게 대의되어야 우리 정치도 진보적으로 변할 수 있다.

또한 앙겔라 메르켈의 정치는 보수정치의 본질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보수란 무엇인가. 보수주의는 무엇보다도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자유주의와는 달리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더 중시하는 정치적 이념이다. 그래서 보수주의는 공동체의 원형인 민족을 중시하고, 공동체의 과거인 역사를 중시하며, 공동체의 생활양식인 문화를 중시하는 것이다. 메르켈이 ‘사회적 시장경제’의 노선을 견지하고, 독일 통일의 의미를 소중히 여기며, 과거 청산과 난민 수용의 정책을 펼친 것은 보수의 긍정적 면모에 부합한다. 이러한 합리적 보수주의가 독일을 ‘존경할 만한 나라’, 메르켈을 ‘신뢰할 만한 지도자’로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한국에서 자칭 ‘보수’라고 하는 자들을 한번 둘러보라. 그들은 공동체를 말하면 ‘빨갱이’라고 공격하고, 민족을 말하면 ‘용공’이라 비난하며, 역사를 말하면 도망가거나 왜곡하고, 문화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은 이처럼 좋은 보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메르켈의 독일을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독일 국가 중에서 최고의 독일”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정치도 메르켈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6742.html#csidx2b8ae57e053e7d5bfa94901285991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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