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통일외교팀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기묘한 초청장’을 받았다. 한·미 정상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을 제공”한다고 손짓하면서도, “비핵화 때까지 제재 유지”라는 김 위원장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도 함께 내놨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가장 중요한 고비를 앞두고 김 위원장의 고민은 깊어 보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비롯한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북-미 2차 정상회담에서 모든 핵 시설과 핵 물질 신고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들은 또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와 압박 유지” 주문을 되뇌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재와 압박 속의 핵 신고는 불가능한 요구라고 단언한다. 북핵 프로그램에 가장 정통한 미국 핵물리학자인 시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약속한 북-미 관계 정상화를 이행할 움직임은 없이 최대한의 압박만 강조하면서, 북한에 핵 리스트를 내놓으라는 것은 협상을 막다른 길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핵 신고는 공격 목표물을 내놓으라는 항복 요구나 마찬가지인데다, 핵 신고와 사찰은 너무 방대하고 복잡한 과정이어서 목록을 내놓아도 진실 공방만 벌이다가 협상이 좌초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쉽지 않은 결정이겠지만, 김 위원장이 이른 시기에 서울 답방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비핵화와 경제발전 의지를 재확인하는 ‘김정은의 남순강화’가 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들은 ‘김정은의 비핵화 결심이 진짜인지 못 믿겠다’는 사상검증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위해 비핵화를 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이 진심이냐고 다그치는 것은 부질없는 질문이다. 김 위원장의 결심만으로 비핵화가 실현될 수는 없다. 핵 포기와 경제발전에 대한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 반대파를 설득할 수 있는 대내외적 환경이 마련되어야 하며, 관련국들은 그 과정을 북돋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 1978년 12월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는 중국 개혁개방의 출발점으로 유명하지만, 덩샤오핑 역시 그 이후 십여년간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姓社姓?) 노선 투쟁 속에서 반대파를 설득하면서 개혁개방의 길을 찾아야만 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국제 제재와 국내 보수파의 도전 속에서 1992년 남부의 개혁 거점 도시들을 방문한 ‘남순강화’를 통해 시장화 개혁을 확고히 했다.

‘서울의 김정은’은 김 위원장이 한국의 경제상황을 직접 보고 경제협력을 논의할 기회다. 북한 지도자들은 그동안 중국의 도시들을 방문해 발전모델을 배우려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2001년 상하이 푸둥을 방문해 “천지가 개벽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도 올해 베이징과 다롄을 둘러봤다. 김정일 시대와는 달리 지금 북한에는 시장이 자라고 있고, 주민들의 발전 요구도 높아졌다. 그런 기반 위에서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남산타워에 올라가 서울 시내도 살펴보고 기업들도 돌아보며,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서 남북이 함께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북한 경제발전 로드맵에 큰 의미가 있다.

‘서울의 김정은’은 남북이 냉전과 증오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올봄 두 정상이 손을 맞잡고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은 이후, 개성에는 연락사무소가 문을 열었고, 군사적 긴장 완화도 진전됐다. 남북이 힘겹게 화해의 언덕을 올랐다가 굴러떨어지곤 했던 시시포스의 굴레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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