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命人)
전남청소년노동인권센터 교육활동가

고흥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인이 참여하는 합창단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객석은 이미 가득 찼고 예정된 공연 시간이 지났는데 연주회는 시작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공연 준비가 덜 된 줄만 알고 기다렸다.

20분쯤 기다리고 있을 때 뒷문이 벌컥 열리면서 몇몇 사람의 수행을 받으며 당당하게 한 사람이 들어왔다. 늦게 온 주제에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까지 하면서 객석을 헤치고 들어온 그 사람은, 비워둔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객석에 불이 꺼지고 무대에 조명이 켜졌다. 그 사람은 고흥군수였다. 황당한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제 공연이 시작되려나 했더니 장내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국가 기념식도 아니고 민간 합창단 연주회가 관객들을 모두 일으켜 세우는 국민의례로 시작된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이면 어김없이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군부독재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이 일화는 이 지역에서 군수가 어떤 위치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준다. 군주 같은 군수이기에 아래와 같은 일을 저지르고도 당당하기만 한 것이다.

2017년 7월, 공무원이 참여하는 성폭력 예방교육 현장에서 고흥군수는 성희롱 발언을 한다. 심지어 강사에게. 녹취된 파일에 따르면 2017년 10월 공무원 양성평등교육에서도, 2018년 1월 주민초청 군민과의 대화에서도 욕설 발언을 들을 수 있다. 이 모두 고흥군수가 저지른 것이다. 가히 상습적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게 된 고흥군민들 중 용기를 낸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러 중앙 부처의 국민신문고에 진정서를 냈다. 다른 행정부처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로 사건을 이송했지만, 법무부에서는 고흥군으로 사건을 이송했다. 가해 당사자가 수장인 고흥군으로 진정 사건을 다시 내려보낸 법무부의 처사는 도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결국 고흥군은 진정서를 낸 민원인에게 직접 답변서를 보낸다. 그 답변서는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길고 긴 변명과 중언부언 끝에 “작은 트집을 부풀리고 왜곡하여 군정 발목잡기와 갈등·반목을 조장하는 행위는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끝난다.

국가인권위에서는 진정을 한 사람이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정을 기각시켰다고 한다. 성희롱의 직접 대상이었던 강사가 아니면 그 자리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던 사람이라도 당사자가 아니라는 게 국가인권위의 입장이란다. ‘미투’로 온 나라가 들썩이는 세상에 전남의 한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기만 하다.

이런 현실은 시시때때로 군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쉽게 무시되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발전소를 짓는다는 둥, 무슨무슨 개발을 한다는 둥, 군민들의 삶터를 빼앗고 생존을 위협하는 사업들이 진행될 때도 마찬가지다. 공청회 같은 형식적인 절차가 진행되지만 군민들의 의견을 ‘군’이 제대로 듣게 하기 위해서는 군청 앞에 천막을 치고, 1인시위를 하고,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군민들의 투쟁이 불가피했다.

지금도 농민들이 벼농사를 짓고 있는 고흥만 간척지에 ‘비행 성능 시험장’을 짓겠다는 국가와 군의 계획에 맞서 군민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남열리에서는 어민들이 ‘수산자원 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하면서까지 추진하고 있는 ‘고흥우주해양리조트 특구 사업 반대’를 외치고 있다.

또다시 지방자치 선거로 여기저기 현수막이 펄럭인다. 선거 때만 국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정치인들처럼 투표용지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만으로 과연 민주주의가 가능할까? 시대착오적인 봉건 왕국 같은 농어촌 지역에서 지금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정치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럼에도 언제나 누군가는, 들어주는 사람 없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내고 있다는 사실. 여기에 우리의 목소리를 보태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