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택

국정원·법원까지 잘못을 사과하고 바로잡는 동안 검찰은 한번도 과거청산에 나서지 않았다. 청와대 문건은 하늘이 준 적폐청산 기회다. 법무부가 아니라 검찰이 직접 문제 사건을 재조사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1호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국정원은 이미 개혁발전위원회를 만들어 13건을 조사 중이고 경찰도 개혁위원회를 가동했다. 그런데 검찰은 여전히 조용하다. 24일 인사청문회에 나선 문무일 검찰총장 후보자에게도 개혁 의지가 별로 안 보인다.

누가 뭐래도 최근까지 대통령 빼고 최고 권력기관은 검찰이었다. 짧게 잡아도 노태우 정권 때부터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선 정치권력과 한몸처럼 움직였다. 그만큼 도려낼 적폐도 많이 쌓였다.

국정원·경찰·군뿐 아니라 사법부까지 ‘과거’를 조사·사과하거나 판결로 바로잡았으나 검찰은 한번도 과거 청산에 나서지 않았다.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고문으로 사건을 조작한 국정원·경찰은 위원회 조사 뒤 백서까지 만들고 법원은 과거사진상규명위 사건 재심 법정마다 무죄를 선고하며 판결로 사과했다. 그러나 검찰은 고문도, 조작도 직접 하지 않았다는 논리로 빠져나갔다. 사과는커녕 법원의 과거사 무죄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상소까지 했다.

검찰은 죽은 권력 물어뜯고 산 권력에 충성하는 처세술로 추한 ‘과거’를 감춰왔다. 유일한 예외가 노무현 정부 때다. 살아있는 권력이 자기 살점을 내놓은 덕분이었다. 그러나 검찰 중립을 보장하겠다는 선의는 다음 정권에서 보복수사로 돌아왔다.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느냐”는 현직 대통령의 한마디는 결국 전직 대통령 표적수사와 죽음을 몰고왔다.

박근혜 정부에선 최소한의 금도마저 무너졌다. ‘극보수’를 자처한 김기춘의 말처럼 ‘수구꼴통’ 노선에 따라 모든 게 40년 전으로 후퇴했다. 판사는 ‘길들이기’ 대상으로, 검사는 대통령의 일개 ‘법무참모’로 전락했다.

국정원이 조사 중인 13건 가운데 절반은 검찰도 무관하지 않은 사건들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야 검찰 수뇌부의 수사 방해 사실이 만천하에 공개됐지만 국정원 직원 ‘좌익효수’ 사건은 사실 국정원보다 검찰 책임이 더 크다. 노골적인 대선개입과 호남 비하 등 물증이 뚜렷한데도 사건을 덮었다. 언론 지적에 마지못해 기소하면서도 700여개 증거 중 10개만 거는 바람에 주요 혐의에 무죄가 났다. 국정원이 만든 것으로 드러난 ‘박원순 문건’ 사건도 “문서양식이 다르다”는 해괴한 논리로 각하 처분한 검사의 책임이 무겁다.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의혹까지 국정원이 자체 조사에 나서는데 정작 검찰은 시치미 떼고 모른체하고 있다.

‘우병우 청와대’가 시키는 대로 진실을 뒤집은 게 ‘정윤회 문건’이나 세월호 참사만이 아니다. 이정현 의원의 <한국방송>(KBS) 외압 등 정권 실세 사건,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공작’ 수사를 지연·방해한 책임도 검찰은 함구하고 있다. 촛불 민심에 이끌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서 나름 성과를 올렸으나 ‘우병우’ 단계에서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검찰 재수사를 앞두고 “내가 때가 묻었다면 그쪽은 안 묻었겠냐”고 협박했다는 말은 진위와 관계없이 ‘역시 구제불능’ 검찰이란 인상을 국민 뇌리에 심었다.

권한은 행사하지만, 웬만해선 책임은 안 지는 검찰 전통은 뿌리가 깊다.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범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로 공모하고도 경찰만 처벌했던 ‘관행’대로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배상책임에서도 검사들만 빠졌다. 그러니 21세기에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 또 생기는 것이다. 물론 검사들은 이번에도 형사처벌을 피했다.

‘박근혜 청와대’ 문건
‘박근혜 청와대’ 문건
검찰개혁을 위해 법과 제도를 손보는 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인권보호보다 조직보호, 국가보다 정권 향배를 기준으로 움직여온 체질과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개혁은 요원하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한 사람 발탁한다고 분위기가 바뀔 수도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더기로 쏟아진 청와대 민정수석실 캐비닛 문건은 하늘이 내려준 기회다. 당시 행정관은 “우병우 수석 지시로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검찰농단’의 증거물이란 뜻이다. 우병우 라인 간부 몇 사람 솎아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잘못한 수사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분명한 교훈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 문제 사건만이라도 검찰 스스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적폐 사건 재조사로 썩은 살을 제대로 도려내야 체질과 문화가 바뀐다.

법무부가 아니라 검찰 스스로 청산 티에프를 꾸려야 한다. 문제 사건을 재조사해 당시 총장이든 검사장이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개혁의 동력도 생긴다.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