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블랙리스트가 ‘범죄인 줄 몰랐다’고, 김기춘이 말했다. 그러나 아는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예술가들의 인권을 짓밟은 것보다 더 큰 죄가 바로, ‘죄가 되는 줄 몰랐던 당신의 아무 생각 없음’이다. 당신들은 안락한 사무실에서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삶의 근거를 잃고 절망의 새벽으로 내몰렸다. 나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 보지 않은 죄가 가장 무겁다.

블랙리스트는 독재국가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민주적인 제도와 절차의 모자를 썼다. 서류 심사를 거치고, 심의 과정과 위원회를 통과했다. 어떻게 그 과정에서 불법적인 배제와 차별이 이루어졌을까? 수많은 김기춘이 침묵하고 방관하고 혹은 동조했기에 가능했다. 동기가 없는 범죄다. 공무원은 블랙리스트의 배제 대상을 직접 알지도 못했고, 개인적인 감정도 없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탈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동기가 있는 악행보다, 공무원의 ‘아무 생각 없음’이 더 큰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다. 국정농단에 관련된 수많은 공무원들은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변명한다. 과연 그럴까? 옳고 그름을 판단할 기회가 있었다. 개성공단 기업이 겪을 고통과 블랙리스트의 대상들이 직면할 현실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

공무원은 복종의 의무에 숨으려 한다. “좋은 정부의 신하가 되는 것은 행운이고, 나쁜 정부의 신하가 되는 것은 불운이다. 나는 운이 없었다”고 변명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법적인 범죄행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부서로 옮겨 달라는 요구가 감당할 수 없는 처벌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모두가 복종한 것이 아니다. 소수는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도덕의 붕괴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유지한 공무원이 있다. ‘이건 아니지’ 생각을 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한 사람이 존재했다. 왜 사람이 기계와 다른가? 인간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부끄러워하는 공감 능력을 지닌 존재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공무원은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 위험하다’고.

이스라엘 법정은 아이히만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살인을 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책임이 크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윗사람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책상 위의 범죄가 단지 복종의 변명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범죄다. ‘정화’의 대상을 선별해서 배제하는 것,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다를 게 없다. 유대인에게 노란 별을 붙이듯이, 그들은 검은 줄을 그었다. 블랙리스트는 문화 분야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은폐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하고, 블랙리스트를 집행한 과정이 밝혀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무원이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으면 한다. 지금 같은 탄핵 국면에서도 불법을 옹호하는 공무원을 보았다. ‘본인도 괴롭겠지.’ 연민의 마음이 들지만, 그의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드러난 행위다. 이보게, 이 국장과 김 과장, 왜 김기춘이 되려는가? 왜 아이히만을 따라가는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생각’을 해보게. 이제는 ‘저당 잡힌 영혼’을 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지금이 바로 ‘아무 생각 없음’과 헤어질 때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