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순항할 것으로 보이던 ‘18살 투표권’ 입법이 암초에 걸려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는 ‘바른정당’의 기회주의적 처신이다. 선거 연령 18살 하향 조정을 ‘개혁입법 1호’로 내세우더니 ‘만 18살은 선거에 참여하기에 미숙한 존재’라는 이유를 들어 돌연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특히 권성동 의원은 고등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18살은 “독자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며, “고3을 무슨 선거판에 끌어들이느냐.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유승민 의원마저 같은 이유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는 보도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고등학생에게는 선거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그것은 선거 연령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이미 2008년에 16살로 선거 연령을 낮추었고, 2015년 스코틀랜드는 ‘독립 결정 국민투표’에서 16살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독일도 지방선거와 교육감선거에서 16살이 투표권을 가지며, 청소년 투표권을 넘어 ‘아동 투표권’까지 주장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18살 선거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학생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면 학교가 정치판이 된다고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학생들의 정치적 판단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민주시민 양성 기관으로서의 학교의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 고3 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노년층보다 낮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는가. 만약 노년층의 정치적 성숙도가 학생보다 낮다면, 같은 이유로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이 정당한가.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도 18살 투표권은 꼭 필요하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가 학습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교실이 ‘민주주의의 학습장’ 구실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배우지 못하고, 노예의 굴종에 길들여진 학생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겠는가. 우리 학생들은 언제까지 ‘정치적 금치산자’, ‘정치적 미숙아’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학생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학생들이 소신 있는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우리 사회가 성숙한 민주사회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반민주적 정파의 논리다.

우리에겐 18살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줘야 할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들이 지금 노예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학생의 절반이 학교를 ‘감옥’으로 느낀다고 한다. 이 감옥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도 그들의 정치적 권리를 강화하고 확대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국 고등학교 400곳의 학생회장단이 모여 “선거권 요구는 청소년 전체의 목소리”라고 선언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학교라는 ‘감옥’에 학생들을 가두고, 이들을 ‘학습노예’로 훈육해왔다. 그 결과 ‘모범수’일수록 정치적으로 미성숙하고 비민주적인 행태를 일삼는 기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등 한국 교육의 최고 모범생들이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공적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대한 민주혁명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나라 중 유일하게 19살 투표권을 가졌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다. 18살 투표권은 ‘체제 교체’의 전환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위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