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라이프에디터

훈훈해야 할 연말인데, 불편하고 낯뜨겁다.

주말 동창들과 가족 동반 모임을 했다. 질문이 쏟아졌다. “야, 기자가 그것도 모르냐”, “박근혜가 그런 줄, 예전엔 몰랐냐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서도 곤혹스럽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가끔 묻는다. “아빠, 그런데 박근혜는 어떻게 대통령이 됐어?” “선거로 뽑았지”라 답했다. 한참 갸웃거리던 아이는 다시 묻는다. “그런데 어른들은, 박근혜가 미친 사람인지 몰랐어. 사이코패스인데….” 난 박근혜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 하지만 기자로, 어른으로 ‘포괄적 원죄’가 있다. “언론도 공범”이라는 광장의 외침을 들으면 뜨끔하다.

광화문 광장에선 가끔 백발의 노인들이 추위에 떠는 내 아들에게 사탕이나 과자를 건넨다. “우리가 박근혜를 찍어서, 어린 네가 고생이다. 창피해서 나왔단다.” 촛불은 어쩌면, 박근혜 정권의 ‘잠재적 부역자’인 대한민국 어른들이 매주 광장에서 치르는 반성과 속죄 의식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럴수록 저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이정현 전 대표 등 새누리당 친박들의 뻔뻔한 심리상태 말이다. ‘권력의 개’였던 검찰조차 “공범”으로 적시했는데 “최순실씨의 범죄는 전혀 몰랐다”는 박 대통령. “최순실의 국정관여 비율은 1% 미만이며, 이마저도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이라고. 비열함마저 느껴진다.

나이 들어 ‘비선 실세 최순실’의 이름도 착각했다는 김기춘 전 실장은 또 어떤가. 박 대통령을 존경한다는 우병우 전 수석의 말에 시비 걸 생각은 없다. ‘양아치’도 제 보스를 존경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를 노려본 건 “여기자분이 제 가슴 쪽으로 다가와 크게 질문해, 놀라서”이고, 검찰에서 팔짱 끼고 황제수사를 받은 건 “추워서” 그랬다고.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는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경계선 같은 거라 생각하며 나는 살아왔다. 그런데 정작 저들에겐 수치심이 없다. 주름진 얼굴을 탱탱하게 보이려 안간힘 쓸 만큼 남의 눈을 의식해온 박 대통령은 어찌 그리 당당할까. 한동안 감옥 갈까 두려워 변명하고,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닌 것 같다. 그건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이 있고, 죄를 숨기려는 범죄자의 본능이 발동해야 할 테니까.

요즘엔 초등학생 아들 말마따나 저들은 “미쳤고, 사이코패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 아들러대학 심리학과 김은하 교수는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이렇게 규정했다. ‘자신의 감정과 고통에는 매우 예민하나 타인에 대한 공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누구와도 정서적 유대감을 맺지 못한다. 과대망상증이 심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고…. 포학하고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에선 이런 예후가 느껴진다. 모든 걸 잡아떼며 “민정수석의 통상적 업무를 했다”고 떠벌리는 우병우 전 수석, 대선 후보를 안 내겠다고 선언해도 모자랄 판에 탄핵에 동참한 동료들을 배신자로 낙인찍으며 “뼛속까지 변화”를 부르짖는 친박들의 분열적 자아도 비슷한 징후다. 어쩌면 저들은 지금도 “봄바람 불면 ‘개돼지들’의 마음(여론)은 변할 테고, 탄핵안은 기각되고, 재집권도 가능하다”는 자기최면에 빠졌을 수 있다.

사회통념상 이런 때, 서민들은 “개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말한다. 한 해를 보내며 소망한다. 새해엔 부끄러움을 아는, 그런 ‘사람’을 보고 싶다.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