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희
사회적협동조합 한국청렴연구소 소장

“공직자 여러분, 당신이 목격한 최순실 비리를 고발하십시오. 명령복종의 의무에 따라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하십시오. 당신의 상사가 내렸던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제보하십시오. 지금도 내려지는 이상한 업무를 거부하십시오. 아니 거부하기 어렵다면 ‘태업’으로 저항하십시오. 그럼으로써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봉직해온 당신의 자존심’을 지키십시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숱한 물음표를 던지는데, 그중 하나가 ‘어떻게 비선 실세가 국가 시스템을 통째로 움직일 수 있었는가’이다. 한국의 행정관료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한가? 공직자 중에서 공범자와 단순 종범은 얼마나 될까? 내가 만난 성실하고 건강한 공직자는 무얼 했을까?

한 중앙부처 고위 공직자가 최근의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일을 어떻게 해? 상관과 눈 마주치기도 민망해. 최순실이 뽑은 놈이라서 쳐다보나 할까 봐. 과장 인사까지 청와대가 결재했으니 이런 분위기가 당연하지.’

건국 이후 대부분의 대통령이 권력형 부패에 연루되었다. 그런데 한국 권력형 부패의 특징 중 하나가 권력구조 정점에서 관료 시스템에 작동하는 ‘비선 정치’다. 사적 권력은 특혜 네트워크의 정점이 되어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대통령의 아들과 형과 측근이 공적 시스템을 무참히 묵살해왔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 집중, 특히 인사권을 통한 지배는 공직사회를 심하게 왜곡한다. 인사청문회도 대통령의 임명 권한을 넘지 못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과 국세청장 등 공적 시스템은 무기력하다. 백만 촛불에도 끄떡없는 청와대의 행보가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권력 네트워크 동맹’의 만행을 겪고 있다. 정치권력이 관료 엘리트를 통제하고 기업과 사익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형성된 촘촘한 그물망은 정경유착과 관피아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를 붕괴시켜왔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그 방대한 네트워크를 생생히 느끼고 있다. 검찰은 누구 사단이고, 체육계와 문화계는 누구 계보라는 등등. 게다가 유흥업계까지 그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으니 그 규모는 상상하기 무섭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네트워크 주변에서 국정이 무너지는 것을 겪어온 공직자들의 심정이다. 아무리 장차관이 비선 정치에 의해 임명되었더라도, 아무리 상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공무원의 의무가 발목을 잡는다 하더라도, 하루 만에 법인설립허가를 내주고, 수천억의 국가예산이 사익을 위해 배정되는 것이 가능한가이다. 지난 4년여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겪지도 못했을까?

이런 의문 속에서 자신이 직접 장승호씨를 돕기 위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음을 폭로한 김재천 주호치민총영사관 영사의 고백은 내게 가뭄에 단비였다. “내 업무가 최씨 일가 특혜로 돌아간 것에 자괴감이 든다”는 그의 고백에서 희망을 보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국가 시스템 전반에 걸쳐 이루어져 왔고, 비선 실세와의 특혜 거래로 사익을 꾀한 공범자가 국가시스템 곳곳에 박혀 있음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부역자가 되어버린 억울한 공직자가 더 많을 것이다. 인사권자인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선량한 공직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범을 수행하고 있었으리라.

이제는 지난 4년간의 침묵을 깨뜨릴 때가 되지 않았나? “저라도 있는 사실을 말해야, 그래야 후회 없이 공무원 생활을 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김 영사의 고백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공직자의 가슴에 용기를 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