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가한 중에도 가장 할 일 없는 시간에, 동네 단골 커피숍에 앉아 모카를 마시며 시원한 유리창 밖으로 광장과 거리를 바라본다. 설을 맞는 풍경이어서 사람들 오가는 걸음이 한가하고 차들도 바쁘지 않다. 건너편 상가들 위로 펼쳐진 하늘이 마치 늦가을처럼 푸르른 정경이다. 늙은 나이 하나 더 얹는다는 아쉬움을 되씹는데 문득 창밖 바로 앞길에 한 어린이가 깔깔거리는 웃음이 들리는 듯 밝은 얼굴로 다가온다. 옆에는 가벼운 짐을 든 젊은 엄마 아빠가 흐뭇한 표정으로 그 웃음을 감싼다. 이 정겨운 모습을 보며 얼핏 든 생각은 내가 아기 옹알이를 들은 적이 언제였던가였다. 그래, 나는 매주 친구들을 만나지만 그 모두가 내 또래의 늙은이들이고 젊은 목소리, 어린 울음을 들은 것은 참 오래전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0년의 설이 안긴 내 설움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얼마 전 졸업생 한 명을 보낸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폐교된다는 보도가 떠올랐다. 우리는 그 험한 6·25 전쟁 중에도 한 반 80명이 화판을 놓고 공부를 했다. 그 분잡스러움이 이제 얼마나 단출해졌는지, 그 급격한 변화를 보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잘살게 된 것이 이 세상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판단을 낳고 자식 기르기를 피하는 쪽으로 반전된 데서 비롯된 이유가 클 것이다. 이런저런 탓을 말하며 아기 낳기를 피하는 우리 다음, 혹은 다음다음 세대의 당당한 주장을 우리가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 사회는 젊은 남자와 여자의 사랑을, 결혼을, 아기 낳기를 회피하게 만드는가. 그 사정을 말하는 자식들의 이유를 수긍하면서 종국에 이르는 우리 결론은 이제 자식 낳아 기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생존의 경제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생활의 행복감은 줄어들고 삶의 번잡은 커졌는데 그 의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생물이 오로지 번식을 위해 생애를 바치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어쩌다 생명의 존속을 단념하게 되었을까.

여기서 내 연상은 좀 더 현실로 뻗친다. 교육받기 힘들어지고, 아니 그 교육이 불편해지고, 취업이 힘들어지고, 아니 그 취업이 불공정해지고, 자식 낳고 기르기 힘들어지고, 아니 그 낳고 기르기가 불평등해진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잘살게 되었음에도 잘못 살고 있다는 판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편하지 못함, 공정치 못함, 정의롭지 못함이 이 사회의 모습이 된 탓이 아닐까. 다 같이 못살 때는 살아내는 것만이 모두가 함께하는 문제였지만 모두가 먹고살 수 있을 때는 좀 더 많이, 좀 더 잘, 사는 것이 이웃에게 질투를 느끼고 불공평하다는 분노로 키워지게 마련이다. 갈등, 내가 대결보다 사회적으로 더 어려운 사태로 여기는 갈등의 심화가 좀-더-많이-가짐과 좀-덜-가짐이란 사회적 불공정에서 일어나고 있음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20여 년 전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으며 내 나름으로 기대에 찼던 일이 허망해진다. 그때는 다행히 군정에서 민정으로 전환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우리 일상생활과 내면 정서에 밝은 희망으로 젖어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경제도 활발했고 사회생활도 활달했으며 정치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열리고 있었다. 국제관계에서도 독일 통일과 소비에트 해체로 냉전 체제가 무너지면서 세계에 대한 전망도 낙관적이었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스마트폰이 개발되면서 삶의 살이가 편리하고 여유롭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 밝은 내일에의 기대 속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고 그 때문에 과학기술의 진보로 이루어질 미래를 환한 세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사람들은 더 지혜롭고 안락해질 것이며 생명공학으로 인간은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고 문화와 관광, 스포츠와 휴식으로 우리 일상은 더 즐거워질 것이다. 나는 이런 밝은 전망으로 그 새로운 여유 있는 삶을 누릴 젊은 세대를 부러워했다. 나 같은 ‘꼴통’ 아날로그 세대는 디지털 문화 시대에 어울릴 수 없다는 지레 먹은 겁으로 직장도 물러나고 집도 신도시로 이사하고서는, 이 역동적인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다.

그러고서 20년. 내 낙관은 그런데 뒤집히고 만다. 아까 내 우울을 지핀, 아기 낳기와 기르기의 회피에서 비롯된 여러 기대가 거꾸로 움직이고 있었다. 잘살게 되었는데 잘살기의 경쟁이 사회적 갈등을 심화했고 자기 성장을 위해 출산도 결혼도 단념함으로써 삶의 자연적인 단계들을 포기하고 오히려 혼자-살기, 홀로-죽기 판으로 졸아들고 있다. 노동자의 권리 획득에 성공한 세대는 그 권리의 유지를 위해 더 탐욕스러워지고 탄핵으로 집권한 세력은 ‘내 명을 거역했다’는 왕조 시대의 어투로 ‘정상의 비정상화’ 행태를 저지르면서 자신들이 역사에 무엇을 범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남북 관계는 거북해지고 미국은 “돈!”을 앞세우는 ‘미다스 아메리카나’가 되어 그들이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기후협약을 거부하고 인류의 문화연대인 유네스코에서 이탈하는 무책임의 ‘자국 제일-우선주의’ 추태를 보인다. 나는 너무 거칠게 지난 스무 해를 돌아보며 분명 잘못되거나 성급한 안목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녕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성장이 반드시 발전이 아니며 풍부가 풍요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발전과 풍요가 인간 행복의 지표가 되지 않는다는 것, 편리가 반드시 즐거움이 아니고 빠름은 오히려 두려움일 수 있고 개혁이 개선과 같지 않다는 것, 신념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권력은 정의를 버리며 문명이 공정함과 관계없고 진보가 평화를 괴롭힐 수 있다는 등등의 것들이다. 그래서 희망은 실망을 불러오고 기대는 회의를 안고 있는 것이리라.

또 그렇기에, 실망이 희망으로, 비관이 낙관으로 반전될 가능성도 어쩔 수 없이 희미하게나마 바라게 된다. 시인 마종기가 봄에 낼 시집에 붙이겠다는 ‘마지막 시차적응’이란 제목 앞에 내가 ‘다시,’란 부사를 넣기를 바란 것은 이 같은 세상의 실망들에 대해 결코 버리고 싶지 않은 기대 때문이었다. 이제 나이 때문에 시를 더 쓰기 어렵겠다는 시인에게 ‘마지막’이란 단절의 말로 단념하기에 앞서 ‘다시’로 하여금, 절망을 유예하며 한 줄기 다시-삶의 희망을 갖자고 당부한 것이다. 그런 내 안타까운 희망 속에서 나는 이 세계가 아직은 더 살아볼 만한 세상으로, 결코 이것으로 끝내지 않고 싱싱하게, 이 세상-삶을 버텨내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아마도 ‘20’이 반복되는 서기의 연호처럼 ‘다시,’란 한 마디로 이 세상에 대한 절망을 벗어나고 싶은가 보았다. 아아, 한가로운 시선으로 잡힌 환한 세상에 문득 나는 서러움에 젖었던가.

김병익 ㅣ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