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경제분과 의장

지난 9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0.4% 하락한 것으로 나오자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물가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숫자가 나온 것이라서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통계를 들여다보면 현재로서는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5년 물가지수 100을 기준으로 할 때, 지난해 9월 지수가 105.65이고 올 9월 지수는 105.20이므로 전년 동월에 비해 물가가 하락한 것은 맞지만, 지난해 9월의 지수가 이례적으로 높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제대로 평가하려면 작년 물가가 전반적으로 어떤 수준이었는지 보아야 하는데, 연평균으로 104.45이고 연말에 104.35였으니, 올 9월의 물가는 작년에 비해 0.7~0.8% 높은 수준에 있는 셈이다. 미약한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상황은 아니다.

조금 걱정스러운 점은, 작년에는 9월만 아니라 10월에도 물가가 높았기 때문에 이번 10월에도 전년 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 값을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2개월 연속 마이너스 값을 기록한다면, 디플레이션 현실화, D의 공포라는 용어가 또다시 미디어를 통해 시끄럽게 전파될 것이다. 하지만 연말이나 연평균 기준으로 올해 물가가 작년 물가보다 내려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소비자물가지수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을 들여다보면 병원비 인하, 휴대전화 이용료 인하처럼 정책 요인에 의해 가격이 크게 하락한 부분이 눈에 띈다. 전기와 가스 요금은 2015년부터 크게 내려가 지금까지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 복지 확대와 정부의 현물이전 증가가 물가 상승을 억제하고 있어서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낮은 물가상승률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광범위하게 제기되는 것은 아마도 일본의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경험 때문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몇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디플레이션에 돌입하는 것은 아닐까? 기본적으로 디플레이션은 경기침체와 저성장을 반영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경기와 상관없이 농산물 작황이나 국제유가 등락 때문에 오르내릴 수 있는데,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하고 산정하는 근원물가의 상승률이 2019년 3월부터 1% 밑으로 떨어진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20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다.

앞으로 저성장 추세가 이어진다면 물가상승률은 계속해서 낮은 수준에 머무를지 모른다. 전반적으로 볼 때 당연히 물가 불안보다는 물가 안정이 좋지만, 물가상승률이 0%대 초반과 마이너스를 오갈 정도로 낮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경제의 활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지 않거나 내려가는 게 좋아 보일지 몰라도 경제 전체의 활력을 위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물가상승률이 2%인 경우와 -2%인 경우를 비교해 보자. 그리고 매출이 100억원인 기업을 생각해 보자. 아주 단순하게 매출과 물가가 정비례한다고 가정할 때, 물가상승률이 2%이면 1년 뒤 매출은 102억원으로 늘지만 물가상승률이 -2%이면 매출은 98억원으로 줄어든다. 전자의 경우에 기업은 종업원 임금을 올리고 빚도 갚을 여유가 조금은 생기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빚을 갚기 위해 임금을 깎거나 일부 종업원의 해고를 시도할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런 현상이 확산되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무려 20년 동안 제로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오가는 경험을 한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교과서적으로는 명목과 실질을 명확히 구분하면 그만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잘되지 않는다. 선진국의 중앙은행은 1.5~2%의 물가상승률을 이상적인 수치로 본다. 제로 인플레이션을 목표로 잡은 중앙은행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인플레이션 목표는 그 수준을 넘지 않도록 물가를 안정시키라는 뜻도 있지만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막으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심리는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조합으로 경기 하방 위험에 대응하는 동시에, 공공요금 등 관리 가능한 물가를 과하게 통제하는 기존의 착한(?) 정책 패러다임에서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