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에 내가 재직하는 대학의 엔지오대학원에서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이 말은 한국에서 시민사회와 관련하여 대학 차원의 교육을 시작한 지 20년이 됐다는 뜻이다. 그동안 한국 전체가 바뀐 것만큼이나 시민사회도 상전벽해로 변했다.

요즘이야 시민사회라는 말이 자연스럽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처해 있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환경과 내부 구조, 그리고 영향력의 발휘에 있어 상당히 취약했다. 시민사회가 오늘날 이 정도라도 당연시될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선 많은 선배 운동가들과 깨어 있는 시민들의 땀과 피와 헌신이 켜켜이 쌓여야 했다. 역사를 쓰는 심정으로 이 점을 기록으로 남긴다.

최근 서울에서 개최된 한 국제 인권 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자로 나선 루이 빅퍼드 박사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어떤 사회가 진정으로 변화하려면 단단하고 영향력 있는 시민사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시민사회가 얼마나 자리 잡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로서 ‘협치’(거버넌스) 개념의 정착을 들 수 있다.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 역할이 축소되면서 그 공백을 대체하기 위해 민간영역과 시민사회가 정부 및 국제기구와 파트너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세계은행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말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협치’는 그보다 더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실천개념으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시민사회론이 대세를 이루기 전만 해도 변혁이나 해방, 민주화 등이 사회운동에서 ‘마스터 프레임’을 이루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권이 전체 시민운동의 마스터 프레임으로 등장했다. 어떤 영역에서건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자력화가 사회변화의 핵심이라고 모두가 동의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날의 시민운동가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주는 시민 자력화 전문가들이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가 크게 발전하면서 넘어야 할 언덕도 달라졌다. 누누이 지적되었지만, 조직이 상설화되고 사회적으로 수용도가 높아지면서 제도화에 따르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공공기관과의 협치가 시민사회의 ‘운동성’을 약화시키는 측면은 없는지, 외부 후원이나 프로젝트 사업에 의존하는 비중이 늘면서 회원들과의 유대보다 재정 지원자에 대한 책임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없는지 성찰해야 하게끔 되었다.

후속세대 활동가들의 재생산도 큰 과제가 되었다. 시민사회 운동을 일종의 당위적이고 무보수적인 헌신으로 여겼던 기성세대 운동가들은 젊은 활동가들의 생각의 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사회학 연구자 김민성의 연구에 따르면 시민단체에 지원하는 젊은 활동가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해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들이 기대하는 바는 명확하다. 자기가 일하는 시민단체가 공익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하고, 학생운동의 경험을 발전적으로 살릴 수 있었으면 한다. 거기에 더해 재미있고 활동적인 업무를 했으면 하는 바람도 강하다. 시민단체는 공조직이나 일반 기업과 달리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 형태일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비공식적인 안내나 추천이 작용하는 채용 과정에서부터 깨지기 시작한다. 업무도 단순한 과업만 부여받고 오랫동안 보조 구실만 해야 할 때도 많다. 프로젝트형 업무가 많다 보니 늘 일에 치여 지낼 수밖에 없다. 심층면접에서 어느 활동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저는 이 시민단체에서 일을 굉장히 많이 줄여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너무 중구난방으로 일을 많이 하고 있고… 다 같이 이렇게 힘들 필요도 없는 것 같아요.”

수직적인 운영방식에 실망도 생긴다. 위계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거나 개별 활동가의 결정권한이 너무 적다고 느낀다. 선배 활동가나 단체 회원들과의 소통도 많이 부족해서 시민운동이 관성적으로 이루어지기 쉽다.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해서 일을 해야 하고 장기적으로 유의미하게 이루어지는 활동가 교육이 너무나 적다고 한다.

시민단체가 직접 추동하지 않는 시민사회의 외부 환경 변화도 시민운동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상설조직으로 만들어져 있는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단체가 아닌 대중의 자발적, 간헐적, 유동적, 폭발적 직접행동형 움직임은 영감의 원천임과 동시에 큰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예를 들어 촛불집회처럼 시민들의 조직되지 않은 정동적 표출에 대해 비정부기구가 어떤 방식으로 만나야 할지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시민사회가 특히 유념해야 할 중기적 과제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입법과 제도개선에 치중했던 역사의 긍정적 토대 위에서 개혁의 실질적 이행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것을 인권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권리주장에서 권리효과로 목표를 전환한다는 말이 된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무조건 제도화만을 요구하는 방식을 넘어 실질적 이행을 더욱 따져야 하는 것이다.

시민사회 내의 극단적 이념 갈등도 고질적 상태로 고착화되지 않도록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원래 시민사회는 공공성, 젠더평등, 민주주의, 인권, 평화, 생태, 보편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으로 구상되었다.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런데 최근 몇년 사이 시민단체의 외양을 하고 활동양식도 그와 비슷하지만 시민사회의 통상적 가치를 부정하는 이상한 흐름이 생겼다. 심지어 시민사회의 전통적 주장들을 생경한 목적을 위해 뒤집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도발적 반정명(反正名)의 시대에 개별 영역을 떠나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협치를 실질적으로 진전시키려면 공조직은 시민단체를, 시민운동가는 공조직을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규 공무원들의 임용 전 기본교육 과정에 협치를 반드시 포함하고, 공무원들의 보수교육에 시민사회와의 협력 내용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시민운동가들이 서로 교차해서 파견근무를 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해보면 어떨까.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공익성을 인정하여 이들에게 정책적, 사회적 지원을 하는 방안도 강구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역량강화교육 기회를 주고 새로운 정보기술(IT)의 공익적 활용을 위한 전문 트레이닝을 실시하는 것도 고려해보자.

21세기형 애드버커시(주창활동)나 캠페인을 전개할 수 있도록 활동 맥락과 권력의 분석, 이해당사자들의 지도 그리기, 영향력 행사 전술, 캠페인 과정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법, 원칙과 타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의 판단 기준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1987년 민주화를 이룬 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교훈은 민주적 정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는 자각한 민주시민들로부터, 아래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거시적이고 시스템 자체와 관계있는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비전의 대안을 시민들과 함께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가 이 시대에 시민사회에 기대하는 모습일 것이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한국인권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