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2030 유료 ‘커뮤니티 비즈니스’ 인기
다양한 취미·자기계발 모임을 운영하는 ‘2교시’의 몸매 관리 모임에서 회원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2교시 제공
다양한 취미·자기계발 모임을 운영하는 ‘2교시’의 몸매 관리 모임에서 회원들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2교시 제공

▶ 가입비를 받고 독서, 와인, 요리 등 취미생활이나 자기계발 관련 모임을 만들어주는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20~30대가 유료 모임에 가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가 유료 독서모임인 트레바리에 가입해 4개월 동안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인기 배경을 들여다봤다.

3~4개월에 5만~30만원 회비 받고
취미·독서 모임 만들어주는 사업
트레바리, 3년간 회원 80→2500명
2교시, 무료서 유료 전환 뒤 더 인기

서로 ‘님’이라고 부르는 수평적 관계
나이·직장 등 사생활은 공유 안해
“오프라인 만남 욕구가 가입 동기”
“돈 내고 검증된 사람 만나자” 생각

“흔히 사람들이 ‘회사 때려치우고 치킨집이나 차려야겠다’고 말하는데, 한국에선 왜 치킨집이 이런 비하의 대상이 됐을까요?”

“치킨은 기분 좋은 날 먹는 음식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이미지가 형성됐을까요?”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자리잡은 건물의 지하 1층 ‘트레바리 아지트’에서는 음식과 음식문화에 대한 책을 읽는 독서모임 ‘식식’ 클럽의 마지막 토론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이날 식식 클럽이 읽은 책은 치킨을 통해 한국의 산업구조와 사회문화를 조명한 <대한민국 치킨전>이었다.

“뒤풀이 가실 분, 손 들어주세요.”

3시간40분에 걸친 토론이 끝난 뒤 뒤풀이가 이어졌다. 뒤풀이 참석은 전적으로 자유의사에 맡겨진다. 손을 들지 않아도 이유를 묻는 사람도, 붙잡는 사람도 없었다.

지난 1일 서울 연남동의 한 중식당에서 식식 클럽을 마무리하는 ‘쫑 번개’(마무리 모임)가 열렸다. 총 15명의 회원 가운데 8명이 참석했다. 다음 시즌(5~8월)에도 트레바리 활동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달에 한번, 고정적으로 갈 곳이 있어서 좋았어요. 저는 또 가입했습니다.”

“제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곳이 여기밖에 없었어요. 회사에선 상사 눈치 보느라 말을 거의 안 합니다.”

“회사 일이 바빠서 자꾸 빠지게 되네요. 다음 시즌에는 쉬어볼까 해요.”(나)

나를 포함해 8명 가운데 3명은 다음 시즌엔 가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5명은 식식클럽이 아닌 다른 주제의 클럽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식사 뒤 인근 한 카페에서 열린 음식 관련 도서 전시전을 함께 둘러보고 헤어졌다. “다음에 또 봐요”라는 인사는 서로 하지 않았다.

‘트레바리’의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책을 읽고 만나 함께 토론을 한다. 트레바리 제공
‘트레바리’의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씩 책을 읽고 만나 함께 토론을 한다. 트레바리 제공

■ “돈을 내고 책을 읽는다고요?”

“돈을 내고 책을 읽는다고? 왜?” 유료 독서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의 첫 반응이었다. 나는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과 2년째 독서모임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인들과의 모임은 너무 느슨했다. 나를 포함해 회원 전원이 책을 안 읽어온 경우도 있었고, 모임 당일 회원 대부분이 참석이 어렵다고 해 모임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잡일’도 많았다. 매번 만날 장소를 예약하고, 장소·시간을 공지해야 했다. 불참하게 될 때 “갑자기 야근을 하게 됐다” “상사가 회식을 하자고 한다” 등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피곤했다. 다른 형태의 독서모임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트레바리는 비즈니스, 자기계발, 스포츠, 음식 등 주제별로 만들어진 독서모임을 유료로 운영하는 곳이다. ‘먹는 것’에 관심이 많은 나는 ‘식식 클럽’에 가입했다. 19만원의 가입비를 내니 회사 쪽이 모든 것을 ‘세팅’해줬다. 회원을 모아주고, 카톡방을 만들어주고, 장소를 제공하고, 모임 일정을 공지해줬다. 첫 모임에만 나오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지만, 왜 관두게 됐는지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지난 1월19일 첫 모임이 열렸다. 13명이 참석했다. ‘파트너’ 원현선(28)씨의 진행으로 각자 이름과 하는 일, 가입 동기를 소개했다. 원씨는 2016년 5월 처음 트레바리 활동을 시작해 지난해 5월부터는 파트너(회원 중에 가입비를 면제받는 대신, 모임 전후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모임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사람)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2년째 트레바리를 하고 있어요. 회사 사람 이외의 다양한 분야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유료여서 중간에 나가는 사람도 적어 지속적인 모임이 가능한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에는 나를 위한 공부와 투자를 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 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싶어요.”

13명 가운데 여성이 9명, 남성이 4명이었다. 공무원, 엔지니어, 스타트업 근무, 마케팅 회사 직원, 패션업계 종사자 등 직업은 다양했다. 나이나 구체적인 회사는 밝히지 않았다. 대부분 20대 후반~30대 중반으로 보였고, 기혼자는 1명이었다. 모임에서는 서로 ‘님’이라고 불렀다.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의 누리집에 소개돼 있는 다양한 주제별 모임.
유료 독서모임 트레바리의 누리집에 소개돼 있는 다양한 주제별 모임.
매달 한번, 한권의 책을 읽고 모여서 3시간40분씩 토론을 했다. 모임 이틀 전에 독후감을 400자 이상 써서 홈페이지에 올려야 모임에 나갈 수 있다. 넉달 동안 <내 식탁 위의 책들>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누들로드> <대한민국 치킨전> 등 책 네권을 읽었다. 첫 책은 회사 쪽에서 정하고, 이후 책들은 회원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했다. 토론 뒤에는 뒤풀이가 이어진다. 뒤풀이와는 별도로 매달 한번 ‘번개’ 모임도 있다. 토론이 끝난 뒤 제비뽑기로 ‘번개 추진 위원’을 정하고, 추진 위원이 다음 모임 전까지 번개 모임을 열면 된다. 토론 모임은 10명 안팎, 번개는 5~6명 정도가 참석했다. 나는 네번 중 세번 토론에 참석했다.

가입비를 내고 독후감을 강제한 탓인지 참석률도 높고 책도 모두 읽어 왔다. 지인들과의 독서모임에선 나를 포함해 전원이 책을 읽지 않고 나온 적도 있었다.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되고 독후감 때문에 짧은 글이라도 쓸 수 있었다. 회사에 낸 가입비는 ‘내 의지를 강제해준 비용’인 셈이었다. 오프라인 모임 외에도 카톡방에서도 수시로 대화가 이뤄졌다. 대화 주제는 주로 음식, 맛집, 책 등이었다. 오프라인에서건 카톡방에서건 신상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 최근 2~3년 사이 성장세

트레바리는 스스로를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하는 곳이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돈을 받고 모임(‘커뮤니티’)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트레바리는 2015년 8월 4개 클럽, 회원 80명으로 시작해 5월 현재 200개 클럽, 회원 2500명, 누적 가입자 1만여명으로 성장했다. 그 분야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전문가나 명사가 ‘클럽장’으로 모임을 이끄는 클럽과 클럽장 없이 회원 중 한명이 파트너가 돼서 모임을 이끄는 일반 클럽으로 나뉜다. 전자는 한 시즌에 29만원, 일반 클럽은 19만원을 가입비로 낸다. ‘트레바리’는 남의 말에 반대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이다.

트레바리가 선두 주자라면 ‘2교시’는 올해 만들어진 신생 주자다. ‘건전한 직장인 모임’을 표방하는 2교시는 독서뿐 아니라 운동, 요리, 정보기술(IT) 등 다양한 분야의 자기계발이나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모임을 제공한다. 분기(석달) 단위로 모집하며, 한달에 한번씩 세번 모이는 그룹모임이 31개, 일회성으로 한번 만나는 스팟모임이 71개가 개설돼 있다. 둘 다 정원은 20명 안팎이다. 시즌이 끝날 때는 그룹모임과 스팟모임의 회원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파티’가 열린다. 5월 현재 그룹모임에는 878명이, 스팟모임에는 485명이 가입해 있다.

‘2교시’의 메이크업 모임 회원들이 메이크업을 해보기 전에 설명을 듣고 있다. 2교시 제공
‘2교시’의 메이크업 모임 회원들이 메이크업을 해보기 전에 설명을 듣고 있다. 2교시 제공
2교시는 2013년 ‘슬링’이라는 직장인 오프라인 모임에서 시작했다. 현재 2교시 공동대표 중 한명인 이훈석(33) 대표가 지인들과 만든, ‘직장인’을 위한 모임이었다. 지인이 다른 지인을 소개하는 식으로 모임이 커지면서 네이버 카페(‘슬링’)까지 만들어지고 모임 안에 주제별 소모임도 만들어졌다. 3년 만에 회원 수가 5천명까지 늘었다. 지난 1월 무료 모임을 유료로 전환하며 이름을 2교시로 바꾸었다. 직장생활이 1교시라면 이 모임은 퇴근 후 자기를 위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사업 시작 당시에는 그룹모임이 16개, 스팟모임이 9개였다. 4월 말 현재 누적 가입자가 8천여명으로 불어났다. 운동 모임, 증류주 탐험, 와인 공부, 칵테일 마시기, 책 읽으며 맥주 마시기, 블록체인 배우기 등이 개설돼 있다. 가입비는 5만~25만원(실비 포함)이다.

트레바리와 2교시 회원의 대부분은 20~30대의 직장인이다. 2교시 쪽은 “회원의 70%가 30대”라고, 트레바리 쪽은 “30대가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이들 모임은 가입비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기존 온라인 동호회들과 다르고,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해주는 강사가 없다는 점에서 각종 강좌모임과도 다르다. 모임을 이끌어가는 클럽장·파트너(트레바리)나 그룹장(2교시)은 진행을 원활하게 이끌어주는 역할에 머문다. 이훈석 대표는 “우리 모임의 목표는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회원들도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온다”고 말했다.

■ 왜 인기일까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지털 시대에 굳이 오프라인 모임을, 돈을 내면서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관계망에 지친 사람들이 늘면서 오프라인 모임을 찾는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며 “커뮤니티 비즈니스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좋아요’ ‘하트’를 받는 일이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지만, 온라인 관계만으로는 허전함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창회 같은 기존 오프라인 모임들은 불편하기만 할 뿐 대화를 이어갈 공통 관심사가 없다.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모임을 직접 만들거나 지인이 만든 모임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일정 조정, 회비 관리 등 만만치 않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이런 일을 대신 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나와 다른 직업,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욕구도 한몫을 한다. 트레바리의 윤수영(30) 대표는 “페이스북은 내가 좋아요를 누른 내용을 기반으로 피드를 띄워주고, 포털도 점점 맞춤형 추천을 하고 있다”며 “전혀 다른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눔으로써 확증편향(자신과 같은 의견과 정보만을 접하면서 기존의 신념을 점점 강화해가는 경향)을 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인간관계의 확대를 원하면서도, 신상이나 사생활까지 공유하는 ‘끈적한’ 관계는 불편해하고, 나이나 직위 등 위계에서 벗어난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는 젊은 층의 심리를 파고든 것도 인기 비결이다. 식식 클럽의 파트너 원씨는 “운영자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회원들이 적당히 친하면서도 쓸데없는 잡담이나 개인사에 대한 대화는 최소화하고,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라며 “나는 우리 카톡방이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지만, 별 의미 없는 말들이 오가는 분위기는 반대”라고 말했다.

무료 동호회도 많은데 왜 굳이 ‘유료’를 선호하는 것일까? 이 대표는 “무료 모임을 유료로 전환할 때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회원이 늘었다”며 “온라인에서 모임을 만들게 되면 익명성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올까’ 불안할 수 있는데, 업체에서 만들어주는 유료 모임에는 검증된 사람들이 모였다는 신뢰 덕분에 회원들이 느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유료 멤버십은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이성을 만나려는 목적에서 나오는 사람도 있다. 2교시에서 2학기째 활동하고 있다는 이지석(가명)씨는 “결혼정보업체나 소개팅 프로그램은 너무 노골적이라서 싫은데, 이 모임은 ‘자기계발’이라는 명분도 있으면서 이성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물론 여자친구는 안 생겼다”며 웃었다. 이씨는 “굳이 마음에 드는 이성을 못 만난다고 해도 큰돈을 들이지 않고 정보와 지식을 얻고,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독서, 와인, 요리 등은 매개체일 뿐이다.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 신뢰할 수 있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이 진짜 목적이다. 그래서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전망은 밝아 보인다. 설사 유료일지라도. 아니 유료라서 더더욱.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