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완서 지음, 한양출판, 1994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시대의 어른’으로서 그리워지는 사람이 또 있었다. 박완서. 그가 살아 있었다면 세월호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촛불과 광장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 작품으로만 짐작해보면 그는 깐깐하면서도 정갈한 성정이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은 <엄마의 말뚝>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빤스를 갠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고생의 문학에 대한 환상을 확 깨는 표현이었다.

1994년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표제작)는 그의 첫 창작집을 20년 만에 재출간한 것인데, 두 번 낸다는 사실에 작가는 몹시 부끄러워한다. <도둑맞은 가난> 등 빼어난 초기 단편들이 거의 수록되어 있다. 박완서에 대해 내가 무엇을 더 보탤 수 있으리. 다만, 나는 여성학 강의를 할 때마다 분노를 잊지 않는다. “괴테의 소설은 세계문학이고 박완서의 작품은 제3세계 문학입니까?” 또 하나. ‘중산층 엄마’는 여성의 성역할로서 대개 ‘여성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여겨지는데, 그녀는 엄마이면서 페미니스트였다. 나는 이 사실이 한국 사회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은 세 번 결혼한 여성이다. 여학교를 졸업하기 전 “난리통(6·25)”을 만나 가난한 집안의 입을 덜기 위해, 구체적으로는 불쌍한 어머니를 돕기 위해 “시집가는 것도 양갈보 짓도 똑같이 싫었지만” 시집을 간다.

첫 번째 남편. “나는 여지껏 자기의 무식에 그렇게 자신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두 번째 남편. 돈과 명성에 기갈이 들린 ‘지식인’으로 게으르고 실력도 없는 주제에 비판만 일삼는 “도저히 구제할 수 없이 비비 꼬인 남자”였다. 세 번째 남편. “어떡허든 우리도 한밑천 잡아 한번 잘살아 봅시다”라고 외치는 허풍과 인맥 관리에 혈안이 된 남자.

이 작품이 43년 전, 1974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작가가 굳이 주인공을 세 번 결혼한 여성으로 상정한 데는 이유가 있다. 세 명의 남성을 보라. 현대 한국 남성의 전형 아닌가. 작품 말미에는 서울의 종로 학원가 풍경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조차 너무나 비슷하다. 압축적 근대화. 성장? 무엇이 성장했는가? 성숙되지 않는 성장은 “아아, 아아, 징그럽다…. 숨 가쁘게 아아, 징그럽다.”(229쪽)

부끄러움은 수치심이나 죄의식과 다르다. 부끄러움은 자신을 향한,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자기가 실천하는 사유지만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반(反)성찰이다. 박완서의 다른 표현을 빌리면, 부끄러움과의 첫 대면은 이런 것이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 당장 이 몸이 수증기처럼 사라질 수 있으면 사라지고 싶게 부끄럽다. 부끄럽다”. 몸 둘 곳을 찾지 못하는 상태.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참을 수 없다. 이것이 부끄러움이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지금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를 견디고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사회적 약자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부끄러움의 개념이 없는 사람이 강자로 군림하고 ‘승리’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로부터 공격당하거나 짓밟힐 때, “어쩜 인간이 그럴 수가…” 놀라다가 분노하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좌절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을 이길 도리가 없다. 무치(無恥)에는 자기도취와 무지라는 엔진이 있다. 자기 얼굴을 가리는 두꺼운 가면, 후안(厚顔)이다. 자아도 얼굴도 필요 없다. 수시로 만들어내면 된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내 고민은 1974년과 2017년의 차이다. 박정희 시대(개발 독재)와 박근혜 시대(글로벌 자본주의)는 어떻게 다를까. 별 차이가 없다. 다만 그때는 배고픔에 정신이 팔려, 아예 부끄럽다는 개념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부끄러움이라는 사회성이 있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부끄러움이 가르쳐질까. 이것이 ‘가르쳐질 수 있는’ 과목(科目)인가. 누가 가르칠까. 아아, 무엇보다 누가 배우려고 할까.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