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얼마 전에 중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선생님에게서 질문을 받았다. 요지는 ‘요즘 대통령 관련해서 나오는 뉴스를 우리가 너무 즐기고 있는 것 같은데 이래도 되냐’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는 적절하게 대답하지 못했는데, 계속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제 보수언론까지 가세해 넘쳐나는 ‘최순실 보도’를 우리가 어이없어하면서도 왕조실록 보듯이 어딘가 즐기고 있는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를 억압하던 권력자의 민낯이 까발려져 그 왜소하고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때, 확실히 우리는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대통령 하야라는 사태가 현실성을 띠기 시작한 지금 상황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박근혜를 주인공으로 한 막장드라마의 시청자로 있을 수는 없다.

우선 박근혜 정권이 그 탄생부터 일종의 착시효과의 산물이었음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대선 당시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대부분은 결코 박근혜라는 개인을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박근혜에게서 박정희를 보려고 했던 것이며, 백지에 가까운 정치인 박근혜의 무능력은 오히려 그러한 환상을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으로 기능했다. 새누리당이 박근혜를 내세운 것도 그에게 상징성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엠비 정부 5년 동안 정치를 행정으로 환원시키는 데 성공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권 연장뿐, 사실상 누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든 크게 상관은 없었으며, 대통령의 무능은 그 밑에서 자신들이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여지를 넓혀주기에 오히려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이러한 ‘박근혜’라는 아이콘의 기능을 생각한다면, 개인 박근혜에게 우리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이 착시효과에 또다시 말려드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국면에서 우리는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고 그 스크린을 구성요소로 한 권력장치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는 1987년 민주화운동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20만명이나 되는 이들이 거리에 나서서 박근혜 하야를 외치고 있는 현재 상황을 87년의 재현으로 보려는 경향도 있지만, 그 민주화의 성과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목도한 우리로서는 87년의 반복에 머무를 수가 없다. ‘87년 체제’는 왜 독재로의 회귀를 막지 못하고 이토록 쉽게 무너져 내렸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생활문화 속에 뿌리깊이 남아 있는 일상적 권위주의를 바꾸지 못했다는 데 있다. 민주화운동의 승리라는 스펙터클 속에서 거시적으로는 민주화를 달성했지만 미시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충분히 실천되지 않았기에 그 민주주의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가 지금 벌이는 싸움도 ‘20만명’이나 ‘5%’와 같은 숫자로 수렴되는 한 시청자 인기투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으로도 박근혜를 하야시킬 수는 있겠지만,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독재를 가능케 했던 이 사회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우리가 진정 싸워야 할 대상은 청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그 투쟁의 현장은 당연히 광화문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집중이라기보다는 확산이다.

박근혜 정권은 한국 보수의 역사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온갖 ‘찌꺼기’까지 긁어모아 겨우 성립시킨 것이기에 이 정권의 파탄은 한국 보수세력의 총체적 파탄을 의미한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숨으려고 할 뿐 대안을 내놓을 능력이 없다. 이제는 우리가 새 사회를 만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