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 소동은 영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정치권과 국민은 갈가리 찢겨 있다. 국민투표를 밀어붙인 집권 보수당에도 브렉시트파와 반브렉시트파가 있고, 브렉시트파 안에서는 소프트파와 하드파가 대립한다.

금융시장 자본주의를 개혁해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고 불평등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브렉시트 소동과 같은 일은 재발할 수 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해법은 2017년 중반부터 반대 여론이 더 높아지고 지난해 중반 이후엔 제2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보다 더 많아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둘러싼 소동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 쪽에 탈퇴 서한을 전달한 지 두 돌이 되는 3월29일까지 최종 결정이 내려져야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테리사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안’이 이달 중순 의회 투표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작아, 노 딜 브렉시트(아무런 합의 없는 탈퇴) 또는 하드 브렉시트(완전한 분리)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영국 현대사에서 최대 사건으로 꼽히는 브렉시트 소동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밀어붙인 이들은 영국이 더 잘살게 될 거라고 했다. 현실은 거꾸로다. 브렉시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주름살이 짙게 지고 있다.

스위스의 금융그룹인 유비에스(UBS)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올해 영국의 국내총생산은 국민투표가 없었을 경우에 비해 2.1% 줄었다. 실질임금도 1.4% 낮아졌다. 한해 국내총생산 규모가 3조달러에 가까우므로 줄어든 규모는 600억달러(약 67조원)에 이른다. 이 수치는 해가 갈수록 부챗살처럼 커지게 된다. 지난해 영국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유로 지역과의 성장률 격차도 앞으로 몇해 동안 0.3%포인트에 이를 전망이다. 당시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한해 31조원에 이르는 유럽연합 분담금이 아깝다고 했는데, 영국은 이미 해마다 그 몇배를 잃고 있다. 달러와 유로에 이어 국제결제에서 3위를 차지하는 영국 파운드의 안정성도 의심받는다.

최악의 시기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 하드 브렉시트의 경우, 정부의 낙관적인 예측으로도 이후 15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7.7~9.3% 줄어든다. 자산가치와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투자와 소비가 위축된다. 당연히 저소득층과 저소득 지역이 더 심한 타격을 받는다.

영국은 자신의 실력 이상으로 대접을 받아온 나라다. 금융업과 교육·연구 분야가 대표적이다. 영국 인구는 세계 1%가 안 되지만 질 높은 연구논문의 16%가 영국에서 출판된다. 외국 출신자들의 공이 크다. 영국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으로부터 한해 260억파운드(약 37조원)의 수입을 올린다. 현재 지구촌 국가원수급 인사 가운데 58명이 영국 대학에서 공부했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그 배경에 있는 과거 제국주의의 영화를 그리워한다. 브렉시트는 이런 이점 자체를 소멸시킬 것이다.

■ 영국은 현대 의회민주주의의 원형을 만들어낸 민주주의 선진국이다. 17세기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틀이 잡힌 영국식 의회민주주의는 유럽 대륙을 거쳐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차례도 폭력 사태로 헌정이 단절되는 일이 없었고, 총파업조차 1926년에 벌어진 게 마지막이다. 브렉시트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극한 대결 없이 대의정치가 작동하는 모습은 영국 민주주의의 힘을 보여준다. 포퓰리즘에 힘입어 국민투표가 감행됐지만 포퓰리즘 세력이 정치 전반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브렉시트 소동은 영국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정치권과 국민은 갈가리 찢겨 있다. 국민투표를 밀어붙인 집권 보수당에도 브렉시트파와 반브렉시트파가 있고, 브렉시트파 안에서는 소프트파와 하드파가 대립한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반브렉시트 쪽이 다수이지만 브렉시트 철회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영국독립당은 브렉시트파, 다른 소수 정당 대부분은 반브렉시트 쪽이다. 스코틀랜드 지역은 대부분 반브렉시트다. 북아일랜드 지역은 보수당과 연정을 구성한 극우 민주연합당이 하드파이고 나머지는 브렉시트에 반대한다. 브렉시트 소동은 영국 인구의 80% 가까이 차지하는 잉글랜드의 민족주의와 깊이 얽혀 있다.

이런 갈등 구조는 해소하기 쉽지 않다. 하드 브렉시트로 갈 경우 경제 상황은 물론 유럽 나라들과의 관계가 더 어려워지면서 책임과 이후 진로를 놓고 내부 대립이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민투표로 브렉시트를 취소하거나 메이 총리의 안을 살리는 게 현실적으로 최선이지만, 투표의 성격을 둘러싼 법적 공방과 투표 반대세력(브렉시트 강경파와 거의 같다)의 격렬한 대응이 필연적이다. 어느 경우나 최대 수혜자는 극우파다. 이들은 지금 하드파의 주력이면서 점차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인다.

영국 정치에 대한 나라 안팎의 신뢰는 이미 훼손됐다. 브렉시트파의 기대와는 달리 영국은 ‘유럽연합과 다른 특별한 나라’가 아니라 ‘큰 힘이 없으면서 제 분수를 알지 못하는 나라’로 인식된다. 북아일랜드 문제에 끼칠 악영향도 심각하다. 수십년 동안 폭력 상태를 동반했던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섬의 융합 문제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 국경을 자유롭게 해준 유럽 통합의 틀 속에서 신뢰가 형성돼 풀릴 수 있었다. 브렉시트로 영국과 다른 유럽 나라 사이 국경이 막히면 신뢰는 사라지고 다시 갈등이 불거질 것이다. 유럽 나라들과의 원활한 관계를 바라는 스코틀랜드가 다시 독립을 추구할 가능성도 크다. 연방 구조 위에 성립한 영국 민주주의의 지속성이 보장될지 의문이다.

■ 브렉시트 국민투표 가결의 배경에 수십년 동안 심해진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찬성 지지율은 저학력층, 노인, 경제가 어려운 지역, 백인, 이주민에 대한 반대가 강한 곳에서 뚜렷하게 높았다. 특이하게도 이주민이 많은 대도시보다 이주민을 별로 볼 수 없는 지역에서 이주민 반대 여론이 많았던 것은 포퓰리즘의 영향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국은 수도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 사이 남북 격차가 뚜렷한 나라다. 경제가 어려운 지역은 남부 도시의 엘리트들이 정치와 경제를 장악하고 세계화를 추구해 유럽연합 쪽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 큰 문제라고 여긴다. 여기에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늘어난 동유럽·중동·아프리카 출신의 이민자·난민이 방아쇠 구실을 했다. 이주민들은 중장기적으로 현지인의 생활을 위협하기보다 영국에 기여하는 것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영국은 미국과 더불어 금융시장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신자유주의의 본산으로 꼽힌다. 금융권은 국내총생산의 10분의 1 정도를 만들어내지만 기업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훨씬 높다. 그래서 미국발 2008년 세계 경제위기는 영국발이기도 했다. 그 파장 속에서 브렉시트 소동이 일어난 점을 염두에 둬야 근본 해법이 보인다.

경제위기 직후 전망은 크게 세 방향이었다. 첫째는 신속한 회복이다. 기존 체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일시적 혼란 이후 호황이 돌아온다는 시나리오다.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금융시장 자본주의는 더 강화된다. 둘째는 동시 추락이다. 주요 나라들이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권위주의와 파시즘이 창궐하고 2차대전 때처럼 국가들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다. 모든 나라가 큰 고통을 겪은 이후 좋든 싫든 혁명에 가까운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위기는 오래가지 않으나 안정도 확보되지 않는 경우다. 실제로 진행된 시나리오다. 각국 정부는 엄청난 돈을 풀어 위기에 대처했다. 체력이 강한 나라에선 이 대책이 먹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부도 직전까지 갔으나 지구촌 전체로는 회복세에 진입했다. 금융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은 시도되는 듯하다가 흐지부지됐고, 새로 창출된 부는 이전보다 더 불평등하게 분배됐다. 영국은 이런 현실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나라다. 정부는 브렉시트 소동의 악영향을 예상해 긴축 기조로 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 금융시장 자본주의를 개혁해 경제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고 불평등을 완화하지 않는다면 브렉시트 소동과 같은 일은 재발할 수 있다. 브렉시트와 관련한 해법은 2017년 중반부터 반대 여론이 더 높아지고 지난해 중반 이후엔 제2 국민투표에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보다 더 많아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막판까지 가보지 않아 무엇이 잘못인지 알 수 없다고 한다면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뿐이다.

김지석 대기자 j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