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자 유대칠의 ‘대한민국철학사’…‘더불어있음’의 사유 선봬
권정생 윤동주 문익환 등 ‘나’를 ‘우리’ 만든 철학자의 역사 재구성
박사학위를 준비하다 학과가 없어지는 경험을 한 철학자 유대칠은 스스로를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이었다”고 표현했다.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은 철학의 쓸모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대한민국철학사>다.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박사학위를 준비하다 학과가 없어지는 경험을 한 철학자 유대칠은 스스로를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이었다”고 표현했다.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은 철학의 쓸모를 생각했고 그 결과물이 <대한민국철학사>다. 2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대한민국철학사
유대칠 지음/이상북스·3만2000원

철학자 유대칠의 <대한민국철학사>는 두 가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첫째는 함석헌, 류영모, 문익환, 장일순, 권정생, 그리고 윤동주 등 재야 사상가 또는 작가를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점, 둘째는 서양철학자가 쓴 한국철학사라는 점이다. 서양철학자 유대칠은 왜 대한민국철학사를 쓰고자 했으며, 그가 말하는 대한민국철학사는 어떤 철학의 역사인가.

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 문 닫은 철학과 출신이다. 쓸모없다며 버려졌다. 대학 밖으로 버려졌다. 어느 지방대의 사라진 철학과 출신 박사 수료생은 자본주의 사회의 잔혹한 논리 속에서 정말 쓸모없는 존재였다. (…) ‘나’는 대학의 ‘남’이 되어버린 존재,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이었다.”

쓸모없다 버려진 ‘열심’은 철학의 쓸모를 생각했다. 13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중에 다니던 철학과가 없어졌고, “이웃 학교에서도 철학과가 줄줄이 폐과되는데도 아무도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 걸 보면서, 철학의 무용함을 느꼈다”고, 지난 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유대칠은 말했다. “철학과 학생들은 영문과로 전과해준다고 하니까 오히려 좋아하고, 교수들은 다른 과로 통폐합돼도 월급만 나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철학과와 관련 없는 일반인들은 철학이 없어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죠. 나를 위한 철학이 없으니까요. 칸트, 헤겔, 들뢰즈, 아무리 얘기해도 한국의 일반 민중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예요.”

그래서 그는 우리말로 우리 철학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역사회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철학 강의를 하며 얻은 경험도 우리 철학책 집필에 용기를 줬다. “그야말로 평범한 동네 분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함석헌 책을 읽는데, 함석헌을 알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게 바로 자기 얘기거든요. 성당에서 정약종(정약용의 셋째 형)의 <주교요지> 읽는 모임을 했는데, 우리 성당 하나가 이 책을 완판시켰어요. 이 책 역시 우리 삶의 이야기거든요.” 그는 이렇게 철학의 쓸모를 조금씩 찾아갔다.

<주교요지>는 서학(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종이 기독교 신학을 민중의 언어인 한글로 적은 것이다. 이전까지 한글로 된 철학은 없었다. 유대칠은 이 순간을 “한국철학의 회임”이라고 이름 지었다. “정약종에 의해 한글은 드디어 사상의 언어가 된” 것이다. 이전까지의 철학은 한문 철학이었고, 지배자들의 철학이었다. 성리학이 대표적이다.

회임은 출산으로 이어진다. 유대칠은 최제우가 동학사상을 담은 <용담유사>를 ‘한국철학의 출산’이라고 명명했다. 이제 한글로 이 땅 고유의 사상이 기록되고 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산 이후 성장의 과정이 류영모(1890~1981), 윤동주(1917~1945), 문익환(1918~1994), 장일순(1928~1994), 권정생(1937~2007), 함석헌의 철학이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교수가 아니지만, 민중과 더불어 진지하게 철학 한 철학자들이다.”

그에게 대한민국철학사는 민중과 더불어 있었던 철학자들의 역사다. 이승만을 위해 일민주의를 가르친 안호상 서울대 교수, 박정희 옆에서 국민교육헌장을 가르친 박종홍 서울대 교수, 전두환 시대 국민윤리를 가르친 이규호 연세대 교수 등 독재자와 함께한 철학자들은 포함하지 않았다.

실학자 정약용도 제외했다. 정약용은 한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이고, 그의 실학은 ‘조선실학’이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철학은 삼국시대철학이고, 고려시대철학은 고려시대철학이며, 조선시대철학은 조선시대철학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 땅의 철학은 이 땅 권력자의 철학이지 민중의 철학이 아니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있던 시대, 윗사람의 철학일 뿐이다. (…) 대한민국의 철학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 있음의 철학이다.” <대한민국철학사>는 이렇게 독창적인 사유와 관점으로 한국철학사를 다시 쓴다. 기생 출신으로 3·1 운동에 나선 정칠성(1897~1958)과 역시 기생 출신으로 조선 여인 최초로 단발의 시대를 열었던 강향란(1900~?)도 대한민국철학사의 일부다.

유대칠의 전공은 서양 중세철학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고, 폐과로 중단됐던 박사논문은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 윌리엄 오컴을 주제로 다시 쓰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철학사>에서 오컴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컴은 유명론자다.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직 개인과 개체뿐이다. 그에게 이 세상은 낱개의 세상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하나의 보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있을 뿐이다.” 오컴은 그의 지향과 달라 보인다. “오컴으로 박사학위는 따겠지만, 오컴 전문가가 될 생각은 없어요. 요약정리만 하는 공부로는 주체적 사상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한국인들은 외국 논문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배우려고 하는데, 나는 일부러 비판적으로 접근하려고 합니다.” 그가 보기에 “지금 한국 철학의 논쟁은 오로지 번역 논쟁만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철학사>는 <아퀴나스의 신학대전>과 <신성한 모독자>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다음 책은 지중해 연안을 중심으로 한 중세철학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풀어낸 <철학의 대전환>(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1000년에 이르는 중세철학이 그동안 그리스도교 중심으로 해석됐다면, 그의 새 책은 이슬람과 비잔틴, 유대 등 변방으로 시야를 넓히는 책이 될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철학사>의 결론은 ‘서로주체성’과 ‘더불어 있음’의 형이상학이다. 오컴의 ‘홀로 있음’ ‘홀로 주체성’이 아니라 ‘더불어 있음’의 학문이다. 그가 사는 대구에서 한창 번지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문 걸어 잠그는 배타적 우리가 아니라 함께하는 우리라야 극복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나’를 ‘우리’로 만드는 철학이어야 합니다. 슬픔의 현장에서 같이 슬퍼할 수 있어야 우리가 되죠. 누구는 슬퍼하는데 누구는 조롱하면 우리가 아닙니다. 세월호의 아픔은 칸트의 철학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우리 언어로 우리의 담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담론이 없어서 아직은 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철학의 쓸모가 있습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