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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어른이 된다는 것](12) 떠나지 않고 남으면 ‘꼰대’가 된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0-02-03 (월) 20:56 조회 : 29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소설 <속담>에는 열세 살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속담을 설명하는 숙제를 제대로 못 한다며 아들을 타박하던 아버지는 아들의 숙제를 대신 하기에 이른다. 그는 ‘흥분된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생각과 말이 술술 풀려나오고, 서정성 넘치는 표현들이 앞다투어 튀어나왔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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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검사를 하던 선생님은 계속 “주제를 벗어나는, 평소보다 못한 글에 불쾌감을 느꼈다”면서 20점 만점에 3점을 주었다. 꼴등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신이 대신해준 숙제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물어본다. 아들로서는 그동안 온갖 비난을 받으며 아버지의 잘난 척을 참아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가장으로서의 아버지가 겪게 될 추락을 막으려 거짓말을 한다. 가장 높은 점수인 13점을 받았다고.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낳는 문제 

소설을 읽다 보면 오늘날 ‘꼰대’라 불리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꼰대’의 핵심은 무엇인가? 소설 <속담> 속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소위 ‘선생질’이 그 핵심이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경험과 지식만을 참이라고 믿고, 그것을 알려주고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보통 그런 ‘선생질’은 수직적인 관계 때문에 가능해진다. 주는 자, 가진 자로서의 위치. 따라서 꼰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면 다음 세대와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 같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처방이 내려진다. 또 ‘세대 간의 소통’이 중요하게 대두된다. 서로를 이해고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엔 특별한 하자가 없는 듯하다. 사람들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이런 의견에 동조하고 자신은 그런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며 애를 쓰는 기성세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세대 간의 수평적인 관계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노력의 결과가 가끔은 엉뚱한 방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세대 간 관계와 ‘꼰대’에 대한 해석에서 간과된 것이 있는 건 않은지 생각해보게 된다. 말하자면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판단하거나 결정하는 등 책임지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젊은 세대와의 공감과 공유를 지향한다며 시대의 유행이나 흐름을 좇으면서 젊은 세대와 줄곧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거나 하는 것 등이다. 그렇게 되면 여태 쌓아온 자신의 고유한 삶의 가치를 확장하면서 발전시키기보다 새로운 세대가 만들어내는 것들에 잘 부합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되기도 한다. ‘새로운 세대와 계속 소통하고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나는 시대에 뒤처지게 될 거야’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런 식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보통 수평적인 관계와 소통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먼저 수평적인 친구 같은 관계를 생각해보자. 자신이 옳다는 믿음으로 다음 세대를 지휘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이 수평적인 관계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꼭 친구 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다. 물론 세대가 달라도 친구가 될 수는 있다. 친구란 같은 자리에서 같은 가치를 갖고 있으며, 서로 무언가를 공유하거나 겨루는 사이를 말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그런 친구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선배, 혹은 선임자로서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선배 혹은 선임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떠나는 것이다. 선배와 후배는 수직관계도 아니고, 수평관계도 아니다. 선·후배 관계는 그런 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먼저 출발해서 먼저 떠나는 자와 늦게 출발해서 늦게까지 남는 자. 후배보다 먼저 졸업하지 않는 선배, 후임자에게 일을 넘겨주지 않는 선임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다. 

세대 간 친구 같은 관계의 문제는 무엇보다 여기서 발생한다.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친구가 되려다보니 계속 그 관계에 머무르려 하기 때문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든가, 마음만은 청춘이라든가 하는 말은 모두 떠나지 않기 위한 시도에서 나온다. 사실 꼰대라고 비웃으며 ‘선생질’을 거부하는 반응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만약 기성세대가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청년들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상담을 하거나 강의를 하면서 만난 아동이나 청년들이 실제로 가장 많이 한탄하는 것은 어른들이 정작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청년세대는 오히려 어른들이 손잡아 이끌어주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기를 원한다.

꼰대가 될 것인가, 자리를 떠날 것인가 

어떤 꼰대도 처음부터 꼰대이진 않았다. 어떤 아이도 자기 부모나 교사를 처음부터 꼰대라 부르며 무시하진 않는다. 처음엔 모두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기를 기대하고 실제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직장 상사 등 사회적인 영역에서 만나는 선임자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배운다. 하지만 모두가 예외없이 이르게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꼰대가 되느냐, 자리를 떠나느냐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만약 나의 후임자가 내게서 정말로 무언가를 배우고 전수 받았다면 어김없이 찾아와야 하는 순간이다. 배운 자는 변화하고, 그 변화는 늘 자신이 배운 것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변화와 성장은 가르친 자, 선배, 선임자의 진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구시대의 것이 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순간에 떠나지 않고 소통을 말하면서 시간을 연장하길 원하는가. 물론 그럴 수 있다. 적어도 일정 정도는. 하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세대 간의 소통은 어느 지점에 가서 불통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불통의 지점에서 이전 세대는 자리를 비우고 떠나야 한다. ‘청출어람 청어람’이나 은퇴가 의미하는 바가 그것이다. 

필립 로스의 소설 <아버지의 유산>에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단언한다. “나는 쉰다섯이고, 아버지는 여든일곱이 다 되었고, 때는 1988년이다. ‘제가 하라는 대로 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는 그렇게 한다. 한 시대의 끝이고 다른 시대의 새벽이다.”

부모의 시대가 끝나야 자식의 시대가 온다. 선배가 떠나야 후배가 일을 맡을 수 있다. 반면 <속담>의 아버지는 자신을 아버지의 자리에 좀 더 있도록 배려해주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 너의 국어 숙제는 언제나 우리 둘이서 같이 하도록 하자.” 아버지가 꼰대가 되기로 선택한 순간이다. 

< 이수련 정신분석학 박사(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2001171823441&code=116#csidxc4d9ab6a2fe2686a34748b83ac3b4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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