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⑬ 편두
편두는 범접할 수 없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 표출한 풍습
더 기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이 시대 특권층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온 외계인을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는가? 보통 오징어 같은 연체동물이나 머리가 길쭉한 대머리 같은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까. 이제까지 외계인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계인으로 뾰족한 대머리 형태를 한 생명체를 떠올린다. 이런 이미지는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는 2천년 전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 흉노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기나긴 역사를 가진 이미지다. 우리나라의 가야와 신라에서 저 멀리 서유럽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목문화의 흐름, 특권을 대물림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이 바로 이 편두에 숨어 있다.

편두(artificial skull deformation)는 신체가 자라는 유년 시절에 두개골에 나무틀을 씌우는 방식으로 머리통의 형태를 바꿔 신분과 집단을 나타내는 문화 행위를 말한다. 한반도에서는 약 2천년 전 변한의 사람들이 편두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인들의 귀족 무덤에서도 편두가 많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편두의 풍습은 그보다 한참 전인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 8천년 전 유적인 두만강의 한-러 국경 지역 보이스만 패총에서 발굴된 40대 여성의 머리가 바로 편두였다. 이 여인은 당시 평균 수명인 20대 중반보다 훨씬 오래 살았다. 같이 묻힌 유물들도 제사와 관련된 것이어서, 학자들은 그를 샤먼으로 본다. ‘하늘의 대리인’이라는 특권이 편두로 표현된 것이다.

신분의 상징이 된 편두

아무르(흑룡강) 유역의 약 7천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아무르의 비너스’라는 별명의 여신상이 발견되었다. 이 여신상의 눈·코·입은 요즘의 동아시아 사람들과 비슷했는데, 특이하게도 이마는 뒤로 심하게 꺾여 있었다. 이마를 납작하게 누른 편두를 한 것이었다. 함경북도의 6천년 전 신석기시대 서포항 유적지에서 발견된 인면상에서도 비슷한 편두 형태의 토제 인형이 발견되었다. 수천년 전 동해안에 살던 사람들은 편두를 하늘의 상징으로 생각하고 숭배했던 것 같다. 어디 한국뿐인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편두를 신의 상징으로 숭배했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네번째 편인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서 편두가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8천년 전 아무르(흑룡강)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편두를 한 여신상. 강인욱 제공
8천년 전 아무르(흑룡강)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편두를 한 여신상. 강인욱 제공
편두는 인간의 진화로 인해 가능했다. 현생인류가 직립보행을 시작하고 도구를 사용하면서, 많은 정보를 담아야 하는 두개골의 용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인간의 출산은 목숨을 건 위험한 과정이 되었다. 지나치게 두개골이 커져 태어날 때 어머니의 좁은 산도(産道)를 나오기 어렵게 됐다. 그래서 인간 태아는 아직 붙지 않은 두개골이 서로 흩어져 길쭉한 형태로 산도를 통과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그 덕택에 인간은 태어나서 몇년간은 두개골이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로 살았고, 사람들은 나무나 헝겊을 이용해 머리 형태를 바꾸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복, 장신구, 문신 또는 거대한 건축물로 자신의 지위를 표현한다. 편두 역시 자신의 지위나 신분을 표현하는 주요한 도구였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자기의 머리를 이상하게 변형하는 것을 좋아했을까. 바로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수 없는 자신만의 특권적인 지위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된 신분증이나 증명이 없었던 시절에 편두는 문신과 함께 각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울 수 없는 상징의 구실을 했다.

문신 같은 다른 상징물과 편두의 가장 큰 차이는 갓난아이 시절에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특권계급 사람들이 자신의 신분을 세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편두는 문명이 발달하고 계급이 세분될수록 고도로 발달했다. 실제로 고대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의 그림에 등장하는 제사장들은 대부분 삭발을 하고 머리는 달걀처럼 뾰족하게 만든 것을 볼 수 있다. 고대 귀족과 왕들은 자신들이 태양의 자손임을 내세우며 평민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고, 그 표시로 특이한 머리 형태를 내세웠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편두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한 데에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 초원에서 발흥한 흉노의 역할이 컸다. 흉노와 같은 기마민족이 편두를 더욱 선호한 것은 그들의 생활습관과도 관련이 크다. 모든 것을 말 위에 싣고 달리는 사람들이니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계급을 표시하고, 두개골 형태로 자신의 소속을 표현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삭발을 하고 다닌 것도 머리 형태를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유라시아를 호령하던 흉노와 훈족의 독특한 머리 형태는 다른 정착민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상징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흉노의 멸망으로 촉발된 서기 3~5세기 훈족의 대이동 단계에 들어서면서 편두의 역사는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된다. 서양의 게르만족 이동을 촉발한 훈족의 대이동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에 유라시아 전역으로 황금과 발달한 철제 마구가 널리 확산됐다. 훈족의 문화가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편두도 중앙아시아 일대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다. 최근 스위스 뒬리(Dully)에선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의 여인이 묻힌 서기 5세기께 무덤이 발견됐다. 훈족의 대이동 시절에 이 지역으로 넘어온 부르군트족이었다. 유럽엔 순수한 ‘유럽인’만 살았던 것으로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는 예상치 않은 발견이라 많은 관심을 끌었다.

최근 스위스 뒬리에서 발견된 서기 5세기께 무덤에서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 여인의 유골이 발굴됐다. 이를 바탕으로 복원한 생전의 모습.  강인욱 제공
최근 스위스 뒬리에서 발견된 서기 5세기께 무덤에서 편두를 한 몽골인 계통 여인의 유골이 발굴됐다. 이를 바탕으로 복원한 생전의 모습. 강인욱 제공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알타이의 서기 5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훈족 족장.  강인욱 제공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알타이의 서기 5세기 무덤에서 발견된 훈족 족장. 강인욱 제공

좁은 머리만 쓸 수 있는 금관

흉노의 영향을 받아 왕족들이 편두를 하는 나라들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금관이나 금동관을 쓴다는 점이다. 신라와 가야의 금관은 잘 알려져 있다. 신라의 금관과 유사한 유물이 발견된 아프가니스탄의 틸리아테페에서도 편두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흑해 연안에 살며 금관을 썼던 사르마트인들도 편두를 했다. 편두와 금관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금관을 쓸 수 있었던 사제(샤먼)는 어릴 때부터 선택되어서 편두를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설사 누군가가 정권을 찬탈하고 금관을 훔쳐간다고 한들 좁은 머리에만 들어가는 금관을 쓸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권력을 세습하기로 약정되어 편두를 한 사람들만 금관을 쓸 수 있다. 영원한 권력 세습의 상징이었다. 박·석·김 세 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다가 김씨가 독점하던 시기부터 다른 사람은 쓸 수 없는 금관이 신라에서 널리 쓰이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신라 금관의 지름은 17㎝ 내외로 매우 작으며, 금령총 금관처럼 지름이 15㎝밖에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당시 신라와 가야는 부여 계통의 백제나 고구려에 대항하여 국력을 발달시키면서 독자적으로 초원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니 강력한 유목전사였던 흉노의 상징인 편두도 함께 유행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특권층을 대표하는 금관은 지금까지도 신라와 가야의 왕권과 귀족을 상징한다.

김해 예안리에서 발견된 편두 유골. 강인욱 제공
김해 예안리에서 발견된 편두 유골. 강인욱 제공
서기 6~7세기 중앙아시아 조로아스터교인들의 무덤과 편두 유골. 이들은 편두로 자신들의 종교를 증명했다.  강인욱 제공
서기 6~7세기 중앙아시아 조로아스터교인들의 무덤과 편두 유골. 이들은 편두로 자신들의 종교를 증명했다. 강인욱 제공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진 아프가니스탄 틸리아테페에서 나온 금관. 강인욱 제공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진 아프가니스탄 틸리아테페에서 나온 금관. 강인욱 제공
틸리아테페 금관을 쓴 여사제의 편두. 강인욱 제공
틸리아테페 금관을 쓴 여사제의 편두. 강인욱 제공
신라의 대표적인 훈족 계통 황금유물인 황남대총 팔찌. 강인욱 제공
신라의 대표적인 훈족 계통 황금유물인 황남대총 팔찌. 강인욱 제공
과거 유목전사의 상징이었던 편두를 현대에 들어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독특한 머리 형태를 한 사제들과 하늘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내용의 유물을 보고는 ‘고대에 외계인들이 유에프오를 타고 와서 인간들을 통치했다’는 식으로 오해했다. 미국 드라마에서 옥수수 머리(corn-head)를 한 외계인들이 등장했고, 이후 외계인의 상징으로 잘못 알려진 탓도 있다. 현대인들은 외견상으로 기이한 편두를 보며 과거 사람을 미개하거나 징그럽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 사람들이 현대인들이 신체에 무리가 가는 신발이나 의복도 서슴지 않고, 치명적일 수도 있는 성형수술을 감행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어떻게 생각했을까.

고대에 전세계에 널리 퍼져 있었던 편두는 타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을 차별화하려는 욕망을 표출한 풍습이었다. 편두를 하지 않았을 뿐 그보다 더 기묘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부를 세습하고, 다른 이들이 자신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하는 지금 이 시대의 특권층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경희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