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수학

‘불금’과 일요일 오후를 수학으로
하얗게 불태우는 ‘수학 지옥’ 회원들
주부·강사·미술관 도슨트 등 직업도 다양
‘그대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수학, 문화예술과 차원 다른 갈증 해소제”
지난 5일 서울 안국동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강의 모습. 김선식 기자
지난 5일 서울 안국동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강의 모습. 김선식 기자
최초의 모의는 페이스북(SNS) 비공개 그룹에서 이뤄졌다. 2년 전, ‘과학책 읽는 보통 사람들’ 이승목(55) 회원이 수학책 <프린스턴 수학 안내서>(2014)를 추천했다. 다른 회원이 ‘추천했으니 책임지라’며 책 읽기 모임을 제안했다. 30명가량이 모임에 함께하겠다며 나섰다. 모임 이름은 ‘수학 지옥’으로 정했다. ‘죽도록 수학 공부하자’, ‘수학의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 등 유래에 대한 기억은 분분하다. 반어법적인 이름이다. 첫 책은 1100쪽이 넘는 <프린스턴 수학 안내서> 제1권. 한 권으로 열달간 모임을 이어갔다. 속도에 개의치 않고 충분히 이해하려고 했다. 2년의 세월이 흘러 모임엔 10여명이 남았다. 여전히 매달 첫째 일요일 수학책을 놓고 씨름한다. 회원들은 지난 2월 한 달에 세 차례 금요일 공개 수학 강좌도 열었다. 지난 5일과 7일, ‘불금’과 일요일 오후를 수학으로 하얗게 불태우는 모임 현장을 찾았다.

어른을 위한 수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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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금요일 저녁 7시30분, 서울 종로구 한 4층 강의실에 퇴근한 직장인 등이 모여들었다. 30~50대로 보이는 10여명이 듬성듬성 자리에 앉았다. 지난 2월 개설한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강의 현장이었다. 강사는 1996년 미국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Stony brook) 캠퍼스에서 복소기하학 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승목씨. 2년 전 수학책 읽기 모임 ‘수학 지옥’에 처음 <프린스턴 수학 안내서> 책을 추천한 이다. 수학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강좌에 목마른 수학 지옥 회원들이 이씨를 강사로 세우고 지난 2월 공개강좌를 열었다.

이날 강의 주제는 ‘방정식’이었다. “1차 방정식을 어떻게 푸느냐, 덧셈에 대한 역수, 곱셈에 대한 역수를 적용해서 풉니다. 그럼 복잡한 고차방정식은 어떻게 풀까요?” 이승목 강사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진다. “소인수분해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소인수분해도 앞에 있는 (2나 3과 같은) 소수부터 나뉘는지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죠?” “중학교에서 1차식 두 개 곱하기를 몇 번 하고 나서 바로 인수분해로 넘어가니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1차식 곱셈을 많이 해봐야 인수분해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이승목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수강생들. 김선식 기자
이승목 강사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수강생들. 김선식 기자
실수 체계에선 n차식이 n개로 쪼개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에, 한 수강생이 질문을 던졌다. “정수의 해를 구할 경우엔 어떻게 되나요?” 즉각 답변이 돌아왔다. “해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어려운 문젭니다. 정수 해가 있냐는 문제는 정말 어렵고 천재들이 합니다.” 강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계 수학자 허준이와 그의 스승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얘기로 잠시 샜다가, 다시 방정식 얘기로 돌아왔다. “데카르트가 천장에 날아다니는 파리의 위치를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해하면서 발명한 게 직교좌표입니다.” 이날 강의는 좌표를 활용한 ‘2원1차 연립방정식’ 풀이와 극좌표, 스칼라와 벡터, 페르마의 정리로 뻗어갔다.

수강생들은 강사의 한마디가 끝나기 무섭게 질문들을 쏟아냈다. “좌표축은 왜 꼭 직선이어야 하나요?” “변하지 않는 스칼라값은 차원이 달라질 땐 어떻게 되나요?” “스칼라 다시 한 번 설명해주세요.”

강의는 ‘덧셈에서 적분까지’다. 이승목 강사는 수업개요를 설명한 첫 강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대학 수학의 목표는 적분이다. 적분을 잘하려면 무한 합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 합을 잘 구하려면 덧셈을 잘해야 한다.’ 당부의 말도 덧붙였다. ‘지식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 중 하나는 아는 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모르는 걸 드러내고, 강사에게 질문해서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답변을 끌어내는 것이다.’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수강생들과 이승목(왼쪽 세번째) 강사. 김선식 기자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수강생들과 이승목(왼쪽 세번째) 강사. 김선식 기자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은 입소문을 타고 부산에까지 번졌다. 이승목 강사는 오는 26일부터 부산 거제동에 있는 ‘시네바움’에서 서른 명을 대상으로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수학’ 강의를 연다. 주제는 ‘수와 계산은 무엇인가’다. 석달간 세 차례 열린다. 현재 오디오 반도체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씨는 “수강생들이 수학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기 생각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할 때 즐겁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쉬는 시간과 뒤풀이 시간에도 잡담의 주제는 수학이었다. 뒤풀이에 참석한 전업주부 최혜랑(58)씨는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물리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그 언어를 이해하려면 수학 공부가 필요했다. 교양서적도 중간중간 수학 방정식들이 튀어나오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는 “주변에서는 나이 들면 머리를 비우고 잔글씨 보지 말고 예술과 문화활동을 하라고 하지만, 그런 거로 채워지지 않는 지적 갈증이 있다”고 말했다.

‘수학 지옥’, 이곳이 천국일지니

이틀 뒤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 사무실에 수학책 읽기 모임 ‘수학 지옥’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지난 7일 일요일 오후 2시, 회원 한 명이 칠판으로 사용할 전지 2장을 사무실 벽에 붙였다. 다른 회원 두 명은 케이크를 사 왔다. 모임 결성 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이날 모임은 책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수학>(모리스 클라인·2016)으로 토론하는 첫날이었다. 6번째 책이다.

지난 7일 서울 옥수동, 수학책 읽기 모임 ‘수학 지옥’ 회원들. 김선식 기자
지난 7일 서울 옥수동, 수학책 읽기 모임 ‘수학 지옥’ 회원들. 김선식 기자
케이크에 켠 촛불을 끄고 누군가 책의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인문학부 학생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을 전공할 의향이 없는 학생들을 위해 쓰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수학과 멀어진 인문계 출신 미술관 도슨트 이은경(55)씨는 “이 모임은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느 날 머릿속 사 분의 일이 텅 빈 기분이 들어서 그동안 소홀했던 수학과 과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생각이 절실해서 지난겨울엔 고등학교 1학년 <교육방송>(EBS) 교재를 찾아 풀고 수학 학원도 알아보다가 이 모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철학을 전공한 독서 논술 강사 조중훈(50)씨는 “고등학교 때 자연계였고 수학을 좋아했는데 대학에 가선 수학처럼 답이 떨어지는 세계보단 그렇지 않은 세계가 진짜 세계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자 다시 필연적으로 답이 떨어지는 세계에 대한 매력에 끌렸다”며 모임에 결합한 계기를 밝혔다.

연습문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문제는 ‘욕조에서 물 3ℓ가 담긴 물통과 5ℓ가 담긴 물통이 있을 때, 어떻게 정확히 4ℓ의 물을 물통에 담을 수 있는가’였다. 강병수(48) 회원이 이틀 전 ‘어른을 위한 현대수학’ 강의에서 배운 좌표를 활용한 풀이법을 생각해봤다며, 전지에 그래프를 그리며 설명했다. 다른 회원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의 설명에 집중했다. 현직 엔지니어인 강씨는 “이 책은 오래전에 사두기만 하고 안 보던 책인데 예전에 봤으면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책의 내용이 깊이 느껴져서 지금 읽은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병수 ‘수학 지옥’ 회원이 연습문제 풀이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식 기자
강병수 ‘수학 지옥’ 회원이 연습문제 풀이법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식 기자
충남 당진에서 모임마다 서울로 올라오는 김정희(49)씨도 엔지니어 겸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가르치는 강사다. 김씨는 ‘수학 지옥’ 말고도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수학 공부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그는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수학적으로 많이 배우진 않아서 그에 대한 갈증이 엄청나다. 그 갈증을 해소하면서 수학자들이 그 시대에 어떤 맥락에서 수학적 성과를 냈는지를 읽는 과정도 재밌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 수학 강사들도 수학에 목말라하며 모임에 나온다. 김인경(53)씨는 “수학 선생님들끼리도 수학에 관해 얘기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이 모임을 하면서 수학에 관한 개념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학원 아이들에게도 할 말이 점점 풍부해졌다. 애들한테 수업 중 ‘0의 역사’ 같은 얘길 하면 애들 눈이 반짝반짝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원 수학 강사 여정윤(53)씨는 “책에서 만난 수학자들이 수천 년 시행착오를 거쳐 공식을 추려내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그런 역사를 보면서 아이들에게 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수학을 주제로 한 책 읽기 모임을 2년간 이끈 힘은 어디서 왔을까. 회원들은 ‘틀림을 용인하는 분위기’, ‘알고 있는 것에서 모르는 걸 추론하는 충실한 조언’, ‘구심점 역할을 하는 회원들의 성실성과 배려’를 꼽았다. 한 회원은 그 원동력을 ‘수학의 힘’이라 요약했다.

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수학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으로 시작한 수와 양에 관한 학문. 인류 역사에서 철학, 천문학, 약학 등과 같이 가장 오래된 학문 가운데 하나. 자연과학이나 기술은 물론, 사회, 인문,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 발전에 공헌한 학문이기도 하다. 최근 수학책을 모여 읽거나 수학 수업을 듣는 중장년층들이 생겨나고 있다.

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