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③아르카임과 전차 문화

시베리아의 전차부대는 그 월등한 기술로 구대륙 곳곳의 고대 유적과 언어,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세계 각국의 문화와 유사한 요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태양의 후예가 남긴 문화가 특정 국가만의 유산이 될 수 없는 이유다. 고대 태양의 후예들이 남긴 유산을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고대사를 확장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다시 히틀러가 만들어놓은 편견의 틀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유럽과 시베리아를 가르는 우랄산맥 근처에는 첼랴빈스크라는 도시가 있다. 우랄산맥에 각종 광물이 풍부했던 탓에 첼랴빈스크는 소련 성립 이후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소련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탱크를 만들면서 본이름보다는 ‘탄코그라드’, 즉 탱크의 도시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1980년대에 소련은 이 도시 남쪽에 댐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수몰 예정 지역에 유적이 없는지를 조사했다.

그 조사 중에 말과 전차를 함께 묻은 전사의 무덤이 발견됐다. 연대를 조사해보니, 무려 4천년 전으로 그동안 발견된 전차 중에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탈린 시절에 전차를 생산하던 도시가 알고 보니 세계 최초의 전차를 생산한 지역이었다는 역사적 우연에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다행히 건설사업은 중단되었고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4천년 전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세계 최초의 전차부대 도시 아르카임이 역사 속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카임의 전경. 출처: 즈다노비치(2001), 강인욱 제공
아르카임의 전경. 출처: 즈다노비치(2001), 강인욱 제공
아르카임 복원도. 강인욱 제공
아르카임 복원도. 강인욱 제공
아르카임을 만든 사람들은 유라시아 고고학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안드로노보 문화라고 한다. 아르카임의 도시 형태는 마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샤먼의 토루를 연상시키는 원형 아파트 같다. 전체 도시는 직경 150m로 그 안에 2열로 모두 46개의 집을 만들었다. 도시 중심에는 제사와 집회를 여는 광장을 만들었다. 집들 사이에는 도로를 만들었고 목축 동물을 두는 축사와 무덤은 도시의 바깥에 따로 두었다. 아르카임은 마치 고대 근동의 문명과 마찬가지로 관개시설과 방어 성벽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전차부대를 운영했다. 또한 도시 주변에는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도시 주민들은 발달한 청동기술과 다양한 생산기술을 보유했다. 마치 현대의 신도시같이 여러 시설을 구획하여 살았던 아르카임에는 2천명 정도의 사람이 살았다고 추정한다. 게다가 그 주변에서는 70개 이상의 이러한 도시들이 발견되었으니, 적어도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주변의 도시들도 대부분 항공사진을 조사해서 발견된 것이니 실제 규모는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가 발명한 전차

4천년 전에 세계 최초의 전차를 발명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발굴된 인골을 조사한 결과 그들은 유럽인 계통으로 인도-이란인 또는 아리아인의 선조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들은 특히나 태양의 기호를 좋아해서 토기와 각종 유물에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卍’(또는 ‘?’) 기호를 많이 넣었다. 아르카임 유적의 평면형태도 태양을 모방해서 구획한 것이다. 그들이 태양의 상징물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이 발명한 위대한 무기인 전차의 바퀴에 있다. 전차의 바퀴는 무겁게 나무를 잘라서 만들던 수레바퀴를 개량해서 마치 자전거 바퀴처럼 얇은 바퀴살을 만들고 차축을 끼운 것이다. 이 거대한 발명으로 느릿한 탈것에 불과했던 수레가 쏜살같은 속도로 초원을 달려가는 탱크로 탈바꿈했다. 빠르게 돌아가는 바퀴는 태양의 형상과 비슷했기 때문에 전사를 태양을 지고 달려가는 불의 전사로 표현했고, 그들은 자신을 태양의 후예로 자처했다.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4천년 전 시베리아 전차 모습. 강인욱 제공
솔로비요프가 복원한 4천년 전 시베리아 전차 모습. 강인욱 제공
아르카임 사람들은 3800년 전쯤에 갑자기 자신의 도시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후환경이 변해 시베리아에서 목축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신에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구대륙 일대로 퍼진 이들의 전차 문화로 세계사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원전 1274년 고대 근동의 람세스가 이끄는 이집트의 전차부대가 히타이트와 카데시에서 세계 최초의 대륙 간 세계전쟁을 벌인 것도 아르카임의 전차 문화가 전달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차 문화의 확산은 현대 유럽 언어들의 기원과도 연관이 있다. 데이비드 앤서니는 <말, 바퀴, 언어>에서 기원전 20세기경부터 동유럽에서 서쪽으로 빠르게 퍼진 인도-유럽어는 시베리아에서 기원한 전차가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그들의 언어도 함께 퍼진 결과라고 보았다. 전차라는 고대의 고급 기술이 퍼지기 위해서는 전차를 만드는 기술은 물론 목축과 말을 조련하는 여러 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니 관련된 여러 전문용어와 언어들도 퍼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인도-유럽어의 또 다른 일파는 불교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범어)이다. 산스크리트어 역시 전차 문화의 확산과 연관되었다. 인도에 전차를 전파한 사람들은 기원전 15세기에 ‘아리안족’이라고 불리었고, 세계 최초의 경전이라고 불리는 ‘리그베다’를 남겼다. 인도 초기 불교에서 태양족의 후예인 석가모니의 상징으로 전차를 사용했으며, 지금도 전차 바퀴는 불교의 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태양의 후예가 남긴 유산은 조로아스터교와 힌두교의 태동과도 연관되어 있다.

시베리아 전차의 확산 경로와 유적 범위. 강인욱 제공
시베리아 전차의 확산 경로와 유적 범위. 강인욱 제공
고대 시베리아의 전차는 중국과 만주 일대로도 유입되었다. 중국 상나라의 무덤과 요동지역의 고조선 비파형 동검 문화에서도 전차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한반도까지 그들의 전차가 들어온 흔적은 전혀 없다. 그래서 그동안 나는 산이 많고 초원이 없는 우리의 지형 때문에 시베리아의 전차를 만들었던 문화와 한국의 청동기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일 무엇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 고고학 아닌가. 2016년에 이들과 한국의 관계를 증명해줄 한국 최초의 청동기가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에서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기원전 13세기로 한반도의 청동기 사용 시기를 무려 400년 이상 앞당긴 획기적인 유물이다. 이 정선 아우라지 출토의 청동기는 돌로 만든 목걸이 장식 중 몇개를 마치 포일로 감싸듯 장식한 것으로 한반도와 만주에서 비슷한 장식이 발견된 예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 장식은 고대 시베리아 전차부대의 강력한 청동무기를 만드는 제련술인 ‘세이마-투르비노’ 스타일에서 흔히 보인다. 아르카임 근처의 무덤에서도 이렇게 돌과 청동기로 만든 목걸이는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주로 여성과 아이들의 장신구에서 많이 사용된다. 비록 시베리아의 전차가 한반도로 이어진 증거는 아직 없지만 그들의 발달한 청동기 제련기술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음이 증명된 것이다.

만주 비파형 동검 문화에서 사용된 전차 복원도. 랴오닝성 박물관 소장, 강인욱 제공
만주 비파형 동검 문화에서 사용된 전차 복원도. 랴오닝성 박물관 소장, 강인욱 제공

태양의 후예와 히틀러

4천년 전 구대륙을 뒤흔든 문명의 주역인 태양의 후예는 그동안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엉뚱하게도 히틀러 때문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을 우월한 아리안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하고 고대 전차부대인들이 사용했던 태양의 상징을 나치당의 심벌(하켄크로이츠)로 사용했다. 물론, 히틀러 자신은 하켄크로이츠가 사실은 그가 그렇게 경멸하던 시베리아에서 기원했다는 점은 몰랐다. 히틀러의 그림자 때문에 그동안 서방에서는 태양의 기호가 새겨진 고대 전차 문화를 연구하는 것은 금기시되어왔다.

다행히도 1990년대 이후 시베리아의 발굴 자료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다. 시베리아의 전차부대는 그 월등한 기술로 구대륙 곳곳의 고대 유적과 언어, 종교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니 세계 각국의 문화와 유사한 요소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태양의 후예가 남긴 문화가 특정 국가만의 유산이 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여전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일부 극우주의자들은 신나치주의나 투라니즘(튀르크인 중심주의)에 아르카임 유적을 이용하고 있다. 고대 태양의 후예들이 남긴 유산을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고대사를 확장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다시 히틀러가 만들어놓은 편견의 틀에 갇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3800년 전 덴마크에서 발견된 태양의 전차. 강인욱 제공
3800년 전 덴마크에서 발견된 태양의 전차. 강인욱 제공
태양의 후예들의 문화가 구대륙 일대로 전파될 수 있었던 비결은 초원을 배경으로 하는 성공적인 목축, 발달한 청동 제련기술, 세계에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었던 태양과 불의 숭배에 그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시베리아의 거친 환경에 적응한 이들의 문화는 각지의 문화와 결합하여 새로운 원동력이 되었다. 이들을 특정 국가의 역사로 귀착시키거나 자국의 위대함으로 국한하는 것은 변방에서 문명의 꽃을 피운 이들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동이다.

사람들은 흔히 고대의 문명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아틀란티스를 떠올린다. 하지만 아틀란티스만큼 잘못 알려진 역사도 없다. 아틀란티스는 원래 기원전 4세기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이 처음 말했다. 플라톤은 이집트 신관의 입을 빌려서 당시 바다로 무리하게 진출하던 아테네를 경고하기 위한 우화로 잠깐 이야기했을 뿐이다. 하지만 후대 사람들은 아틀란티스가 실제 지중해나 대서양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찾아왔지만, 전혀 그런 증거는 없다. 게다가 플라톤이 말한 아틀란티스가 활동한 주 무대는 바다가 아니라 고대 근동에서 아프리카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며, 배나 항구 대신에 강력한 전사와 도시가 등장한다. 플라톤의 이야기에서 무대가 바다라는 것만을 제외하면 4천년 전 시베리아에서 발달해 유라시아 전역을 호령했던 전차 문화와 일치한다. 어쩌면 사라져버린 아틀란티스는 바로 고대 시베리아에서 발달한 태양의 후예들이 아니었을까.

강인욱 경희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