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근의 한마디로 읽는 중국 철학
②노자

지금 이 시대에 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없이 손을 들어 굴뚝 위를 가리킬 것이다. 그곳은 밀려난 자들이 머무는,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 높은 곳에 있으나 실은 낮은 이들이 있는 곳이다.

명나라 화가 장로(1464~1538)가 그린 ‘물소를 탄 노자’(老子騎牛圖). 노자는 물소를 타고 세상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명나라 화가 장로(1464~1538)가 그린 ‘물소를 탄 노자’(老子騎牛圖). 노자는 물소를 타고 세상을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은자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공자보다 앞서 살았다 하고 또 다른 이는 공자 뒤의 사람이라고 하며, 공자와 동시대인이라는 기록도 있다.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가 담(聃)이라 전해지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숨은 것이다. 전설이 만들어졌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주나라 문서 담당 관리로 있다가 나라가 쇠망할 조짐이 보이자 길을 떠났다. 국경을 지날 때 관문을 지키던 문지기가 그가 현자임을 알아보고 가르침을 글로 써 달라 청했다. 81장 5000자의 <도덕경>은 이렇게 해서 엮인 책이라 한다. 사람은 떠났지만 말은 남은 것이다.

어떤 이는 그의 말을 불로장생의 양생술이라 했다. 불사(不死)의 골짜기 신을 찬미하고 도를 닦아 수명을 늘려 160년 넘게 살았다느니 200년을 넘게 살았다고도 하니 틀린 말이랄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간 낭패하기 십상이다. 그의 말은 ‘반언’(反言)이기 때문이다.

높고 낮음, 앞뒤, 위아래 뒤집는 도

그는 말했다. 부드럽고 연약한 것이 강하고 굳센 것을 이긴다고. 혹 누가 누구를 이긴다는 말에 흥미가 끌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이내 실망할 것이다. 그가 이기는 것은 다른 사람이 이기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는 뒤로 물러섬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고, 자신을 버림으로써 자신을 보존하며, 이기지 않음으로써 이기고, 감춤으로써 드러난다. 아주 낯설다.

그의 도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 사람들이 도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름답지도 않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도는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는 곳에 도가 있는 것이다. 그의 도를 따르면 높고 낮음, 앞과 뒤, 위아래가 뒤집힌다. 아름다움과 더러움, 선과 악, 삶과 죽음, 정상과 비정상, 정의와 불의도 예외 없이 자리를 바꾼다. 그의 도는 아래에서 위로 남보다 앞서 급하게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함께 내려가는 길이다.

그는 말한다. 참으로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참으로 뛰어난 기술은 서툰 듯하고, 참으로 말 잘하는 이는 말을 더듬는다. 가장 높은 덕은 베풀지 않고 큰 사랑은 사랑한다 말하지 않으며, 큰 재능은 졸렬해 보이고 큰 소리는 들리지 않으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다. 가장 높은 가치는 실은 가장 낮은 곳에 있고, 가장 작아 보이는 것이 실은 가장 크고, 하찮은 것이 도리어 중요하다고. 천지가 만물을 사랑하지 않고 성인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큰 사랑이기 때문이다.

들으면 등골이 서늘할 법한 무서운 말도 자주 했다. 장차 빼앗으려거든 먼저 주라고. 이런 일이 있었다. 옛날 진나라가 괵나라를 치려 할 때 우나라를 지나야 했다. 진나라는 우나라가 길을 빌려주는 대가로 옥을 보냈다. 신하들이 반대했지만 옥을 탐낸 우나라 임금은 진나라에 길을 빌려주었다. 진나라는 괵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멸망시켰다. 옥은 다시 진나라 소유가 되었다. 먼저 준 다음에 통째로 빼앗은 것이다. 상대를 약하게 하려거든 먼저 강하게 해주고 망하게 하려거든 먼저 일으켜주라는 그의 말과 꼭 맞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어지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나의 생존을 위해 적을 거꾸러뜨리는 방법 또한 일러주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의 말을 필승의 전략으로 삼아 병법에 응용하기도 했고, 권모술수라 비난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참으로 강한 자는 용감하지 않다고 했다. 용감한 자가 세운 공보다 비겁한 자의 자비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묻는다. 죽임과 살림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그가 칭찬한 것은 전쟁터를 달리는 준마가 아니라 거름을 져 나르는 나귀였다. 도를 아는 이는 다투지 않고도 이기고, 묻지 않아도 답을 얻으며,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게 할 뿐 백성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를 명철보신의 처세술로 읽은 이도 있었다. 초나라 장왕이 하옹의 싸움에서 이긴 뒤 손숙오에게 상을 내리자 손숙오는 한수 가에 있는 모래와 자갈이 많은 땅을 청했다. 초나라의 법은 신하에게 주어진 녹은 두 세대가 지나면 거두어들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손숙오의 땅은 회수되지 않았으니 그 땅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9대까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에 대한 제사를 끊이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참으로 잘 세운 것은 뽑히지 않고, 참으로 단단히 끌어안은 것은 빼앗기지 않으니 자손이 대대로 제사를 지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 그의 말은 바로 손숙오 같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지금 도를 찾는다면… 굴뚝 위 가리킬 것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경계하고 욕심 많은 세상 사람들을 꾸짖었다. 아름다운 색깔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맛있는 음식은 사람의 입맛을 버리게 하고 말 달리고 사냥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그 때문에 성인은 배는 채우되 욕심은 버린다고 했다. 배는 채울 수 있지만 욕심을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자한에게 옥을 뇌물로 바치며 보물이라고 하자 자한은 받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옥을 보물로 여기고 나는 받지 않는 것을 보물로 여긴다. 그대가 옥을 나에게 주면 두 사람이 모두 보물을 잃게 되는 것이니 각자 자신의 보물을 지키느니만 못하다. 위에 있는 자가 얻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질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은 자한 같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지배자들이 들으면 뜨끔할 말도 했다. 백성이 굶주리는 까닭은 윗사람이 빼앗아 가기 때문이고,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까닭은 지배자가 그들을 다스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성(聖)과 지(智)를 버려라. 그렇게 하면 백성의 이익이 백배로 늘어날 것이다. 정곡을 찔렀다. 위정자들은 늘 성과 지를 수단으로 백배의 이익을 취해오지 않았던가.

눈에 보이는 쓸모만 보고 보이지 않는 쓸모를 보지 못한다고 세상 사람들을 나무랐다. 서른개의 바큇살은 한가운데의 빈 구멍을 만나 쓰이게 되고, 찰흙을 이겨 그릇을 만들면 그릇 안의 빈 공간으로 말미암아 그릇의 쓰임이 있게 되며, 문과 창을 뚫어 집을 만들면 집의 빈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게 된다. 쓸모 있는 것들의 쓸모는 쓸모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물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세상의 기준을 거부한 것이다.

물을 좋아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물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물은 아래로 흐르면서 온갖 사물을 적셔주지만 다투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도에 가깝다. 같은 이유로 강과 바다를 동경했다. 강과 바다가 온갖 골짜기의 으뜸이 된 까닭은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세상의 더러운 것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서다. 그의 도는 물처럼 아래로 흘러가는 길,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과 반대편으로 나 있는 길이다. 길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지만 거기에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없다. 권력도 명예도 부도 아름다움도 없기 때문이다.

물보다 약한 것은 없지만 단단한 어느 것도 끝내 물을 이길 수 없다. 그는 탄식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마침내 단단한 것을 이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지만 아무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고. 그 때문에 그는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세상의 더러운 것을 씻어내고 온갖 재앙을 감당할 수 있는 자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도는 아래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없이 손을 들어 굴뚝 위를 가리킬 것이다. 그곳은 밀려난 자들이 머무는,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 높은 곳에 있으나 실은 낮은 이들이 있는 곳이다. 높고 낮음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고하상경(高下相傾)은 낮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 시대가 만든 슬픈 ‘반언’일지도 모른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