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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6-07-03 (일) 23:21 조회 : 836
신형철의 격주시화 (隔週詩話)
-‘가지 않은 길’ 속의 여러 갈래 길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노란 숲속에 두 갈래 길 나 있어,
나는 둘 다 가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걷는 것 아쉬워
수풀 속으로 굽어 사라지는 길 하나
멀리멀리 한참 서서 바라보았지.

그러고선 똑같이 아름답지만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아마도 더 끌렸던 다른 길 택했지.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아, 나는 한 길을 또다른 날을 위해 남겨
두었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걸 알기에
내가 다시 오리라 믿지는 않았지.

지금부터 오래오래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렇게 말하겠지.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로버트 프로스트 외, <가지 않은 길-미국대표시선>(손혜숙 옮김, 창비, 2014)

통계에 따르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1915)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이자 해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미국 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시는 한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터라 그 세대라면 누구나 알거니와, 지금도 소위 ‘명사들의 애송시’로 자주 거명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시가 잘못 읽히고 있다면? 미국의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가 작년에 출간한 <가지 않은 길모두가 사랑하고 대부분 오해하는 시에서 미국을 발견하기>(Penguin press, 2015)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나는 문소영의 칼럼 ‘오해되는 시, 가지 않은 길’(중앙일보, 2016년 1월3일 온라인 입력)을 통해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 시를 읽는 관행적인 독법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갈래 길 앞에 선 화자가 있다. 두 길을 다 걸을 수 없어 고민에 빠진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을 은유한다는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지나간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가, 전인미답의 길을 과감히 택할 것인가. 화자는 후자를, 즉 “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어” 더 끌렸던 길을 택한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임을 예감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세 줄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시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 택하였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노라고.”

중간 부분이 좀 알쏭달쏭하기는 해도 저 마지막 세 줄에 이르면 이 시는 다시 명쾌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감동의 포인트는 두 가지다. 오직 하나의 길만 택할 수 있을 뿐인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회한, 그리고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자의 고독과 아름다움. 그래서 이 시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인용되기 적합하다. 인기 없는 전공을 택해 일가를 이루고 이제는 정년퇴임을 앞둔 노교수가 퇴임사를 할 때. 혹은 이제 막 어떤 정치적 결단을 한 정치인이 자신의 선택은 눈앞의 사사로운 실리를 좇은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훗날의 역사적 평가를 각오하는 비장한 연설을 할 때 등등.

그런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독법이 틀렸다니? 문학에서 유일한 정답이란 없으므로 ‘틀렸다’라는 말은 함부로 쓸 수 없지만, 그래도 작품의 실상과 충돌하는 독법까지 허용되지는 않는다. 이 시에는 우리가 위에서 정리한 이 시의 메시지와 명백히 충돌하는 구절이 얼룩처럼 포함돼 있다. 두 갈래 길 중 사람들이 덜 걸어간 길을 택하겠다고 말한 뒤에 화자는 이상하게도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집는 듯한 이런 구절을 적는다. “물론 인적으로 치자면, 지나간 발길들로/ 두 길은 정말 거의 같게 다져져 있었고,// 사람들이 시커멓게 밟지 않은 나뭇잎들이/ 그날 아침 두 길 모두를 한결같이 덮고 있긴 했지만.”

이 네 줄은 기묘하다. “정말 거의 같게”(really about the same)나 “한결같이”(equally)와 같은 표현들은 앞서 화자가 기껏 부각해둔 두 길의 차이를 지우면서 두 길에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의 후반부에 마련돼 있는, ‘험로를 택하는 자의 고독’이라는 감동적 요소를 스스로 약화시킨다. 그런 감동 때문에 이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네 줄을 불필요하다고 느끼거나 심지어 삭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실제로 작년에 방영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주인공이 이 시를 낭독할 때 저 대목은 생략됐다. 물론 시간상의 이유로 생략된 것일 텐데, 문제는 이렇게 생략된 버전이 언뜻 더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얼룩을 닦아내지 말고 존중하기로 하자. 그러려면 이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지 않으면 안 된다. 두 갈래 길 앞에 섰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화자는 일단 통행이 드물다고 느껴지는 길을 택한다. 그러나 이내 자신이 상황을 과장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두 길에는 사실상 별 차이가 없음을 밝힌다. 바로 이 순간에 화자는 중요한 진실 하나를 간파했으리라.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필연적인 이유가 있기를 원하고, 또 가능하다면 그 이유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란다는 것.’ 그래서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예감한다. 자신이 훗날 이날의 선택을 다소 미화된 방식으로 회상하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우리는 전혀 다른 시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이 시의 진짜 얼굴이라 단언은 못해도, 최소한, 간과되어온 다른 얼굴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말할 수는 있으리라. 당시의 여느 전원시들처럼 다정하게 삶의 지혜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은밀한 복화술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프랭크 렌트리키아는 이 시를 “양의 옷을 입은 늑대”(<모더니스트 콰르텟>, Cambridge UP, 1994, 72쪽)라고 규정한 바 있는데, 십년 뒤 데이비드 오어는 이렇게 단언한다. “이 시는 ‘캔-두 개인주의’(can-do individualism, 나의 선택이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개인주의인용자 주)에 대한 경의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하려 할 때 범하게 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대한 논평이다.”(9쪽)

그렇다면 ‘백 년 동안의 오독’이었다는 것인가. 그럼 시인 자신은 무슨 생각으로 이 시를 썼을까. 로런스 톰슨의 프로스트 평전에 따르면 프로스트의 절친한 친구였던 영국 시인 에드워드 토머스는 어떤 길을 택하든 가지 못한 다른 길을 생각하며 “한숨”(4연)짓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프로스트가 이 시를 완성하자마자 그 친구에게 보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시인의 작의(作意)를 짐작할 수 있다. 인생에서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란 없으니, 일단 하나의 길을 택했다면, “가지 않은 길”에는 미련을 갖지 말라는 것. 물론 시인의 취지가 그런 것이었다 한들 논란이 종결되지는 않는다. 작품이 발표된 후 열리는 해석의 경기장에서는 창작자 자신도 단지 한 명의 선수일 뿐이므로.

이쯤 되면 우리야말로 여러 갈래의 갈림길 앞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외로운 선택을 한 사람의 자기 긍정을 표현한 시? 자의적 선택에 사후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의 자기기만을 꼬집은 시? 후회가 많은 이에게 들려주는 부드러운 충고의 시? 나의 대답은,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한 번 놓친 길은 다시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이 시는 말하지만, 작품은 길과 달라서, 우리는 시의 맨 처음으로 계속 되돌아가 작품이 품고 있는 여러 갈래의 길을 남김없이 다 걸어도 된다. 다행이지 않은가.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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