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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세상 읽기] 문제는 표절이 아니다 / 김누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6-30 (화) 11:30 조회 : 1442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 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표절 의혹이 커다란 사회적 충격을 주었고, 그 ‘배후’로 지목된 문학권력과 이들이 빠져있는 문학 상업주의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작가의 윤리성 문제에서 발화한 논란은 바야흐로 한국 문학장 전체의 정당성 문제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다른 한편 이번 논란은 한국문학이 빠져있는 침체의 원인을 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식의 쇠잔, 문단의 과두권력, 문학장의 상업적 지배 등이 위기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위기의 근본원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과 관련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경숙 작가가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는 것은 상당히 징후적이다. 신경숙은 “한국의 문단과 비평계에서 ‘무오류의 권위’를 확보한 작가”(이명원)로서 한국문학의 경향과 수준을 대변한다. 문학적 고전에 대한 고된 ‘필사’를 통해 문체를 가다듬어서인지, 신경숙의 문체는 아름답다. 그의 문학은 문체가 주제를 압도하고, 미문(美文)이 의식을 그늘 지운다. 미문에의 집착 때문에 그에겐 다른 작가의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모방’하는 것이 제2의 천성이 되어버린 듯하다.

문제는 이런 ‘무의식적 표절 행위’가 아니라, 문학을 ‘미문을 짓는 일’로 보는 관점이다. 신경숙 논쟁의 핵심에는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운 문장을 지어내는 것이 과연 좋은 문학인가’ 하는 물음이 자리하고 있다.

아름다운 문장은 물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문장을 다듬는 일이 문학의 본령은 아니다. 문학은 인간과 시대의 심연을 더듬는 일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차갑고, 건조하고, 때론 투박하다. 아름답기로 치면 헤르만 헤세의 문체를 따를 자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카프카를 더 위대한 작가로 평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과 시대를 더 날카롭게 꿰뚫어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잠자가 ‘벌레’로 변신할 때, 헤세의 싱클레어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변신>과 <데미안>의 문학적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미문이 아니라 성찰의 깊이다. 카프카는 현대인의 실존을 ‘벌레’라는 이미지로 포착했고, 헤세는 여전히 18세기 이상적 휴머니즘의 인간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프카의 말처럼 문학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한 자루 도끼”와 같은 것이지,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언어의 정원이 아니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면 날개를 펼친다”는 말로 철학의 역사적 의미를 설파했다. 반면 문학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나이팅게일 새”에 비유되곤 한다. 철학이 지나간 시대를 해석한다면, 문학은 새로운 시대를 선취한다. 카프카는 현대인이 극단적 소외 상태로 전락할 것임을 이미 20세기 초에 예견한 나이팅게일이었다. 그의 문학적 모더니즘은 반세기가 지나 철학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계승되었다. 문학이 예견하면 철학이 확증한다. 위대한 문학은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읽어내는 예지적 정신이지, 아름다운 문장을 지어내는 수공적 기예가 아니다.

오늘날의 비루한 세상에선 아름다운 언어는 언제나 거짓의 언어라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경숙의 미문주의는 ‘표절’의 유혹자일 뿐만 아니라, ‘진실’의 적대자일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독문학
김누리 중앙대 교수, 독문학
신경숙 논란에서 다시 드러난 한국문학의 위기는 미문주의의 위기이다. 문학이 현실의 심연을 도발의 언어로 천착하지 못하고, 단지 그 표면을 아름다운 언어로 치장할 때, 문학은 이 성형의 시대에 감성의 화장술로 타락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 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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