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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그림 속 ‘소품’이던 흑인…바스키아의 손길로 주인공 되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1-02-24 (수) 08:51 조회 : 1457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4)‘올랭피아’와 ‘올랭피아의 하녀’

19세기 프랑스 부유층 남성이
줄이어 찾던 성매매 여성 그려
파란 일으킨 마네의 ‘올랭피아’
‘못생긴’ 흑인 하녀 배경은 여전

백인의 ‘고급 놀이터’ 미술관에
의문 품고 그림 그린 바스키아
패러디작 ‘올랭피아의 하녀’ 통해
흑인을 ‘초상화 모델’로 자리매김
장미셸 바스키아, <올랭피아의 하녀>, 1982년, 캔버스에 아크릴과 크레용, 개인소장.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장미셸 바스키아, <올랭피아의 하녀>, 1982년, 캔버스에 아크릴과 크레용, 개인소장. ⓒ The estate of Jean-Michel Basquiat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이곳을 봐. 흑인이 하나도 없지?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흑인이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야.”

미국의 ‘흑인’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는 어느 날 여자친구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이렇게 얘기했다. 실제로 그가 살던 1980년대 미국의 미술관은 백인들만의 ‘고급 놀이터’였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림을 보는 사람도 거의 백인이었다. 그뿐이랴. 바스키아의 말은 또 다른 현실도 함축하고 있다. 심지어 벽에 걸린 그림 속에서도 흑인은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사실상 미술관은 흑인들에게 ‘들어오지 말라’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낸 셈이다.

부르주아 남성의 성적 위선은 까발렸지만

물론 그림에 흑인이 간간이 그려진 경우도 있었다. ‘인상주의 대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명작 <올랭피아>가 그중 하나다. 이 그림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백인 여자와 그에게 꽃다발을 가져오는 흑인 여자. 일종의 ‘2인 초상화’다. 하지만 두 인물의 비중은 동등하지 않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백인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올랭피아’. 과연 올랭피아는 누구일까. 그리고 그 옆의 흑인 여자는 올랭피아와 어떤 관계일까.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이 그림은 마네가 1865년 파리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당시 프랑스 화단은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이 올랭피아가 창녀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목에 두른 초커, 비단 슬리퍼, 팔찌는 그녀가 성을 파는 여성임을 암시하는 장치였다. 무엇보다 ‘올랭피아’라는 이름 자체가 당시 성매매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예명이었다. ‘벌거벗은 비너스’처럼 신화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알몸을 마음 편히 감상하고 싶었던 남성들은 즉각 불쾌감을 드러냈다. 남성들이 은밀히 찾던 성매매 여성이 살롱전 벽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모자라, 서늘한 표정으로 그림 밖의 자신을 응시하니 오죽했을까. 그래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에밀 졸라(1840~1902)는 <올랭피아>를 마네의 ‘걸작’으로 망설임 없이 칭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다른 화가들이 비너스의 거짓만을 표현할 때, 마네는 스스로 물었다.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왜 진실을 얘기하지 않는지?” 졸라는 마네가 <올랭피아>를 통해 당시 부르주아 남성들의 위선적인 성 윤리를 통쾌하게 까발렸다고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마네는 왜 올랭피아 옆에 굳이 흑인 여성까지 그린 것일까. 그의 작품 제작 의도대로라면 올랭피아만 당당하게 그렸어도 무방했을 텐데 말이다.

미술평론가 김진희는 저서 <서양미술사의 그림 vs 그림>에서 “보통 2인 초상화는 부부, 형제, 친구 등이 함께 그려지는데, 흔히 두 사람 중 주인공은 한 명뿐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그의 진단대로라면 <올랭피아> 속 흑인 여성은 올랭피아를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들러리인 셈이다. 마네는 그림 속 올랭피아를 ‘쿠르티잔’(courtisane)으로 묘사했다. 쿠르티잔은 프랑스 상류사회 남성이 사교계 모임에 곧잘 동반할 정도로 공인된 정부로, 자신을 애인으로 두려는 부유한 남성들에게 늘 둘러싸여 있었다. 상류층 남성의 후원을 아낌없이 받던 쿠르티잔은 하녀까지 집에 두며 화려하게 살기도 했다. 이런 사실을 잘 알았던 마네는 올랭피아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쿠르티잔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흑인 하녀라는 장치를 둔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흑인’을 하녀로 그려낸 이유는 무엇일까. 마네가 1844년에 쓴 편지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여행하며 본 흑인 여성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어머니에게 보냈다. “흑인 여자들은 보통 가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데, 그중에는 목에 스카프를 묶어서 가슴을 가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예쁜 여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못생겼어요. (…) 터번을 두른 여자들도 있고, 심한 고수머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다니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여자들이 괴상한 주름이 잡힌 속치마 같은 옷을 입고 다녀요.” 올랭피아는 인기 많은 쿠르티잔으로 설정됐기에 일단 미모가 출중해야 했다. 마네는 올랭피아의 미모가 돋보이려면 한눈에 비교될 만한 ‘못생긴’ 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네에게 그런 여자로는 흑인이 적격이었다. 이는 마네 이전에도 백인 남성 화가들이 흑인 여성을 소비한 방식이기도 하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패널에 유채, 1615년, 리히텐슈타인박물관.
페테르 파울 루벤스, <거울을 보는 비너스>, 패널에 유채, 1615년, 리히텐슈타인박물관.

신화 그린 그림에도 인종차별이

플랑드르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가 1615년에 그린 그림을 보자. 속이 훤히 비치는 천으로 엉덩이만 간신히 가린 금발 여성이 있다. 벌거벗은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그림인데, 공교롭게도 이 여성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고 있다. 그 덕분에 여인의 얼굴이 궁금한 감상자의 호기심은 쉽게 해결된다. 그녀는 언뜻 보아도 선명한 눈빛과 깎은 듯한 콧날을 지닌 미녀.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금발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워 보인다. 이 그림 속에서도 역시 흑인 하녀가 옆에 서서, 주인공인 백인 여성의 머리칼을 정성스레 손질해주고 있다. 이 금발 여인은 누굴까. 제목을 보면 의아해진다. 바로 <거울을 보는 비너스>. 신화의 세계에서는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의 시중을 들 리가 없다. 설마 루벤스가 이 규칙을 몰랐을까. 결국 그는 흑인 여성을 ‘미의 여신’ 비너스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열등한 비교 대상’으로 그림 속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흑인들이 ‘그림의 장치’로 쓰인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흑인들은 색의 대비와 조합을 위한 좋은 소품이 되어주기도 했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하얀색 침대 시트와 칙칙한 검은색 톤 배경이 서로를 밀어붙이는 강렬한 색의 대비가 돋보이는 그림이다. 두 인물의 피부색도 마찬가지다. 에밀 졸라는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흑인 하녀를 그린 것은 ‘검은 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마네가 작품 속에 몇몇 오브제와 인물을 조합시켜 놓았다면, 그것은 마네의 철학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채와 대비를 이뤄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즉, 별다른 역할 없는 흑인 하녀를 등장시킨 것은 두 인물의 피부색을 강하게 대비시켜 그림에 색채 감각을 더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흑인을 대하는 화가들의 이런 시선은 프랑스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가 ‘검은 피부와 흰 피부의 대조에 충격을 받았다’며 1872년 미국 뉴올리언스 여행 중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나는 새까만 흑인 여성이 백인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일 좋다.”

이름을 되찾은 ‘로르’

앞서 언급했듯, 바스키아는 ‘미술관에는 흑인이 없다’고 토로했다. 어린 시절을 회고한 생전 인터뷰에서도 바스키아는 뉴욕시에 있는 미술관을 갈 적마다 ‘왜 이렇게 많은 미술작품 속에서 흑인은 거의 볼 수 없었는지 궁금했다’고 털어놓았다. 서양미술사에서 흑인이 소비되어온 방식을 바스키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가 1982년에 <올랭피아>를 자신의 스타일대로 패러디한 <올랭피아의 하녀>를 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바스키아는 이 그림에서 작정한 듯 백인이 그린 그림 속에 박제되었던 흑인 하녀를 인간으로 호출해냈다. 그림 속 흑인 하녀는 더이상 색채에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이거나, 백인의 용모를 더욱 부각하기 위해 동원되는 소품이 아니다. 같은 색 피부를 가진 예술가에 의해서 그녀는 비로소 초상화의 모델이 될 자격이 있는 당당한 개인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2019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에서 의미 있는 전시가 열렸다. 서구 미술의 역사에서 흑인 모델들이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다는 반성에서 기획된 ‘흑인 모델: 제리코부터 마티스까지’가 바로 그것. 백인 남성 중심 미술 안에서 익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흑인을 비로소 화폭의 주인공으로 호출했다며 큰 호평을 받았다.

물론 이 전시에 마네의 <올랭피아>도 빠질 리 없었다. 하지만 ‘그냥’ 등장하지는 않았다. 오르세미술관 쪽이 <올랭피아>의 작품 제목을 <로르>(Laure)로 바꿔 단 것이다. 그림 속에서 흑인 하녀 역할을 한 여성의 이름이 ‘로르’이며, 간호사로 일하다가 파리 튀일리 정원에서 마네에게 모델로 발탁된 사실이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름을 부여받음으로써 로르는 병풍이 아니라 한 명의 존엄한 인간으로 미술사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예술계만이 아니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차별받고 소외돼왔던 흑인을 정당하게 자리매김하는 시도가 사회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팬케이크 브랜드 ‘앤트 제미마’(Aunt Jemima)는 흑인 여성이 그려진 로고와 브랜드 이름이 인종차별적이라 인정해 지난해 여름부터 제품에서 로고를 삭제한 데 이어, 올해는 브랜드 이름을 바꿀 예정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흑인 노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는다는 이유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 퇴출됐다.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 흑인 가수 핼리 베일리가 주인공 에리얼로 캐스팅되기도 했다. 1971년 미국의 흑인 권투선수 무함마드 알리(1942~2016)는 방송 토크쇼에서 어릴 적 어머니와의 대화를 회상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엄마, 예수님은 왜 백인이에요? 흑인 천사는 어디 있나요? 아, 천국에서 흑인 천사들은 부엌에서 젖과 꿀을 준비하고 있겠네요!” 알리가 이 ‘뼈 있는 농담’을 했을 때 관객석에서 씁쓸한 웃음이 번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다음 대통령에 ‘백인’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백인이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구나” 하고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는 소식을 보고 신기했었다. 마찬가지로 알리의 언중유골을 이해 못 할 미래 세대가 앞으로 등장하지 않을지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물론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는 가정 아래서 말이다.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뤄보려고 한다. 3주에 한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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