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23) 헤르베르트 케겔(1920~90년)

동독 드레스덴에서 활동한 지휘자
귀족적 성향의 카라얀과 달리
음울하고 현실 저항적 음악 추구
헤르베르트 케겔. 1985년 도쿄 공연 녹음 음반 표지
헤르베르트 케겔. 1985년 도쿄 공연 녹음 음반 표지

언젠가 음대 교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클래식 황제’ 운운하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대한 찬양이 끝없이 이어지기에 지겨워져서, 그의 인공적이고 기름진 음악이 너무 싫어 아예 듣지 않는다고 했다가 형편없이 무식하다는 눈총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눈총이 너무나 아니꼬워서 헤르베르트 케겔의 지휘를 더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고, 수많은 독일 지휘자 중 한 명일 테니 몰라도 무방하다는 식의 더 수상한 눈총을 받았다. 사실 우리나라에 나온 클래식 책에 케겔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개된 음반도 거의 없다. 동독에서 활동하다가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에 자살한 탓으로 우리나라 음악인들이 모르는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특히 누구보다도 카라얀의 귀족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음악, 그의 배금주의적인 삶이나 현실주의적 가치관을 철두철미 비판한 사람이기에 더욱더 그럴지 모른다. 카라얀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유명 지휘자나 연주자를 다 포함해도 좋다. 거기에 맞서는 지휘자는 케겔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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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겔이 사회주의 이념에 철저해서 자살했다거나 그를 냉전의 희생자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의 음악에서는 그런 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는 흔해빠진 어용 음악인이 아니라, 서방의 어떤 지휘자보다도 고전음악은 물론이고 현대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고, 음악에 대한 정부의 간섭에 저항했고, 청중에 순응하지 않고 자유롭게 선곡을 했다.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야성적이라고 할 정도로 진폭이 크고 격렬하며 비애가 흘러넘치는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접적인 이유는 통독 이후의 상업적인 음반 시장의 습격에 제대로 적응하기는커녕 그것을 극도로 혐오한 탓이었지만, 그의 음악 자체가 그것을 듣는 사람이면 누구나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끼게 된다고 할 정도로 처절했던 것도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물론 나에게 그의 연주는 언제나 절망의 절벽에서 끝나도, 그만큼 희망의 대양을 보여주기에 언제나 소중하고 고맙지만.

<운명>의 분방한 악장마저 처절하게

케겔이 태어나 죽은 드레스덴은 ‘독일의 피렌체’니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도시로, 통독 직후인 1990년대 초에 구 동독 지방을 여행하면서 처음 들른 곳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에리히 케스트너나 화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고향이기도 하다. 케스트너는 통독 전인 1974년에 죽어 드레스덴에 돌아가지 못하고 객지인 뮌헨에 묻혔지만, 케겔은 드레스덴에 묻혔다. 케겔은 1920년에 가난한 노동자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향에서 피아노를 배우다가 제2차 대전 때 손가락 부상을 당해 피아니스트를 포기하고 지휘자가 되었다. 그 전에 카를 뵘에게 지휘를 배우기도 했지만, 뵘은 지휘는 스스로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한 것이 옳았다고 뒤에 말했다. 1953년부터 라이프치히 방송 교향악단, 1977년부터 1985년까지 드레스덴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했는데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고 공격적이어서 단원들과 화목하지 못했고, 결국 정부로부터 강제 퇴출될 정도로 권력과도 적대적이었다. 세차례 결혼한 이유도 조울증적인 기질 탓이었다는 점 외에 특별한 점이 없다. 그의 자살은 국가, 직장, 가정 등 모든 점에서 그가 소외된 탓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가 지휘한 현대음악을 특히 좋아한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소련 권력으로부터 사상적 비판을 받은 뒤 <운명>처럼 어둠에서 밝음을 찾아가는 곡으로 작곡한 것이지만, 케겔의 연주는 그런 의도의 작곡임을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분노로 가득하다. 한국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반공주의적 색깔도 전혀 없다. 쇼스타코비치의 15번 교향곡 연주도 처절하다. 그가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불새>에서 보는 야성미, 말러 곡에 대한 광기 서린 해석과 연주, 힌데미트의 관현악곡,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 등의 열정적인 연주와 함께, 브루크너,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지휘한 것도 좋아하지만 가장 즐겨 듣는 것은 역시 만년에 지휘한 베토벤의 곡들이다.

헤르베르트 케겔. 1972년 라이프치히 공연 실황 유튜브 갈무리
헤르베르트 케겔. 1972년 라이프치히 공연 실황 유튜브 갈무리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지휘할 때에는 한없이 묻어나는 절망감이 상당히 옅어진 것이 나이를 먹어 원숙해진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명>, 특히 그 4악장에는 케겔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누군가는 그 연주를 현대의 운명적 병리현상을 음악으로 가장 완벽하게 표현했다고 상찬하기도 했다. 케겔의 <운명>은 숙명과도 같이 처절하여 행복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익살스럽고 분방해야 할 스케르초인 3악장도 처절하기는 마찬가지여서 광기마저 흘러넘친다. 그 부분의 카라얀 연주를 들어보면 두 지휘자가 그야말로 비극과 희극의 양극단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궁극적으로 운명의 극복이라는 의미는 케겔의 경우에는 무의미하다. 도리어 마지막까지 운명에 대한 처절한 절규다. 사실 1악장부터 운명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고, 2악장은 장송행진곡처럼 무겁고 슬프다. 2악장은 보통 8분 정도인데, 케겔의 그것은 12분을 넘어갈 정도로 느리고 장엄하다. 6번 <전원>에도 전원 풍경은커녕 자연의 품이 없다. 시커먼 구름이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어둠에 싸인 전원일 뿐이다. 베토벤이 농민의 춤을 그렸다는 3악장도 악마의 춤으로 변주된다.

전쟁 비판곡이 마지막 녹음

케겔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에는 반드시 전쟁의 참혹함을 다룬 작품들을 함께 연주해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이 그들의 생일이나 축제 때마다 9번을 연주하게 한 것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그를 따른 탓인지 미하엘 길렌은 환희의 상대적 의미를 더욱 직접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제3악장과 4악장 사이에 공연해 두 작품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극도로 대비시키기도 했다. 나치에 가담한 카라얀이라면 그런 시도를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괴벨스의 지지를 받은 푸르트벵글러와 함께 카라얀은 괴링의 지지를 받았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카라얀은 부르주아적 쾌락의 사치에 젖지만, 케겔은 프롤레타리아적 순수의 과묵에 젖었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만큼이나 사회주의에도 절망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동독에서 살았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처럼 그는 어느 체제에 대해서도 복종하지 않았다.

케겔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기피 성악곡인 <전쟁 레퀴엠>을 녹음한 직후 자살했다. 죽은 자들을 위한 라틴 미사의 가사,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바로 며칠 전에 전사한 윌프리드 오언의 전쟁 탄핵 시 아홉 편을 결합하여 전쟁의 비참과 평화에 대한 희구를 표현했는데 그 곡에서 세 명의 독창자는 전쟁 중 가장 고통을 겪은 세 나라인 영국, 독일, 러시아를 대표한다. 브리튼은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와 모한다스 간디의 암살에 충격을 받아 그 곡을 썼다.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그 곡의 녹음이 케겔의 자살에 상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케겔이 2차 대전의 트라우마를 평생 지녔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이 그가 평생 저주한 자본주의화라는 점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절망은 1920년에 태어나 1990년에 죽은 그의 평생, 20세기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케겔의 묘지는 드레스덴 교외의 숲속에 있는 슈테파누스 공동묘지 구석에 있다. 그곳에는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고, 강제수용소 희생자들의 무덤도 함께 있다.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