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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모범 삼지말고 자신에만 진실하라”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21-07-06 (화) 11:15 조회 : 898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45) 헤르만 헤세(1877~1962)

고독한 삶 일관한 ‘자발적 왕따’
모든 권위와 대중한테서도 독립
“독일 문학의 우직한 반항아” 평
평생 자연인 시골사람으로 살아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독일을 그렇게도 동경한 ‘천재’ 전혜린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이미 식상했지만, 그녀가 소개한 <데미안>은 내 중고교 시절의 벗이었다. 전혜린이나 그 후배들이 <데미안>에 대해 흔히 말한 천재의 ‘껍질을 깨는 아픔’ 따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모든 정치적, 사회적, 가정적 억압에서 벗어나 오로지 너 자신이 되고, 너 자신에게만 진실하라는 그 자유와 독립의 메시지는 사실 나이 마흔이 훨씬 넘어서야 나에게 제대로 울렸고, 예순이 넘어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두번이나 학교서 도망쳐 나와

헤세는 1877년 독일에서 태어나 1962년에 죽었다. 그를 보통 독일 작가라고 하지만, 1923년, 즉 46살부터 스위스 국적을 가지고 스위스에서 40년간 살다가 죽었으니 스위스 작가이다. 아니, 첫 소설인 <페터 카멘친트>(아무 이유 없이 ‘향수’라고 번역된)를 출판한 1904년부터 스위스에서 살았다. 게다가 어린 시절 4살부터 9살까지도 스위스에서 살았다. 따라서 독일에서 산 것은 10~20대 10여년에 불과하다. 헤세가 12살 때 시인이 되려 하자, 부모와 교사는 그를 신부나 학자로 키우고자 수도원 학교에 강제로 넣었다. 그곳에서 도망친 그는 보호시설과 정신병원을 거쳐 다시 새로운 학교에 들어가나 역시 도망친다. 이어 서점이나 공장에서 훈련을 받지만 역시 중단한다. 그래서 구제불능, 실패자, 부모의 치욕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 그가 학교나 교사, 심지어 부모까지도 좋아할 리 없다. 그는 학교를 다닌 8년간 스스로 감사한 교사가 단 한 사람뿐이고, 학교란 언제나 맞서 싸워야 하는 절대권력이라고 했다. 독재 절대권력이 요구하는 굴종에 대한 반항은 학교 시절부터 싹터서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그의 교육은 우리식으로는 중2 중퇴 정도로 끝났고, 그 후에는 철저히 독학을 한다. 아니, 그 8년간에도 별로 배운 게 없고 독학을 했으니 평생 혼자 공부한 셈이다. 그는 대학 교육도 경멸했다. 그의 삶이나 문학의 원리는 스스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진실한 것과 고귀한 것을 찾아 스스로 읽고 생각하며 쓴다는 것이다. 그게 그의 고독이다. 그것은 ‘천재’의 까닭 모를 외로움이나 알프스를 향한 향수가 아니라, 모든 권력이나 권위나 전통으로부터의 고독이다. 특히 역사나 국가, 민족이나 대중으로부터의 고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반사회적이다. 즉, 현 사회를 부정하고 비판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헤세만큼 유토피아적 공동체나 아름다운 자연 속의 삶을 강력하게 표현한 작가도 다시없다는 점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사회적이다.

헤세의 삶은 1916년, 즉 39살을 경계로 나누어진다. 그 전까지 세상의 요구에 맞추어 어떻게 하든 모범 학생, 모범 시민이 되려고 노력했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탓으로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자신을 되돌아본다. 정신병원에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자신이 옳았다는 것이어서 그 뒤로는 모든 도덕적 굴레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 최초의 결단이 반전론이다. 그의 반전론은 그 전부터 시작되었으나 이제 그것은 더욱 확고해졌다. 독일이 야기한 제1·2차 세계 대전이 터지기 전은 물론 그 후에도 독일 사람들은 모두 전쟁에 미쳤다. 일반인들만이 아니라 예술가들도 모두 전쟁에 미쳤다. 그때 미치지 않고 전쟁에 반대한 사람이 헤세였다. 당연히 배신자니 변절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징집 기피자니, 조국 없는 놈이라니, 품속에 기르고 있는 뱀 같은 놈이라니, 유태인 용병이라는 욕설까지 들었다.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헤르만 헤세. 위키피디아

그러나 그는 사실 제1차 대전 때에는 전쟁에 반대하면서도 한 국민으로서의 의무는 다한다는 이유에서 군대에 자원했으나 고도 근시라는 이유로 징집이 거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로 복지 사업에 헌신했다. 37살에서 42살까지 5년간이었다. 이를 평화주의와 모순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지만, 지금 한국에 사는 나로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나치가 권력을 잡은 동안 그는 아무도 논평하지 않은 유태인이나 가톨릭 교인들의 작품, 정부에 맞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작품을 논평해 당연히 배신자니 변절자라는 비난을 들었고, 1930년대 중반부터 그의 서평은 발표조차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처럼 헤세는 미친 시대에 유일하게 미치지 않은 사람이었다. 라이히라니츠키가 그를 “독일 문학의 가장 우직한 반항아”라고 평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이다.

헤세의 반항에는 전쟁이라는 집단적 광기에 대한 반항만이 아니라, 허영과 가식, 명리 추구와 사리사욕, 상업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도 포함된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식은 물론 모든 집단, 모임, 심지어 자신의 생일잔치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집 앞에는 언제나 방문 사절 표지판이 붙었다. 그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사인회를 하는 우리식 명사가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 국외자, 고독인, 반항인, 유랑인, 방랑자, 자연아였다. 그에게 집단이란 천성적으로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연인이었다. 그는 평생 시골에서 시골 사람으로 살았다. 시골에 주말 별장을 가진 서울 예술가의 사치가 아니라, 헤세는 도시를 거부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모든 무리짓기 거부해 친구도 없어

헤세의 모든 작품은, 그리고 도시를 벗어나 평생 시골에서 살았던 헤세의 생애 자체는 자연 속의 자연아 그것이었다. 그 점에서 그는 톨스토이와 모리스를 따랐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많은 음악가와 미술가를 사귀면서 그 자신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의미에서도 그들과 무리지어 집단을 만드는 것은 거부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기에게는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그 점에서도 그는 스스로 외로운 왕따였다.
고향인 독일 칼브의 성 니콜라이 다리 위에 세워진 헤르만 헤세의 동상. 사진 임헌영
고향인 독일 칼브의 성 니콜라이 다리 위에 세워진 헤르만 헤세의 동상. 사진 임헌영

<데미안>은 절대적인 정직을 통한 자아의 규명과 자기 길의 발견, 그리고 자율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주장한 새로운 왕따였다. 헤세를 흔히 서양 작가 중에서 가장 동양적이고 우리 조상을 대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대표작인 <싯다르타>는 부모를 떠나고 어떤 스승도 따르지 않는 왕따일 뿐이다. <황야의 이리>도 배부르고 자만하는 소시민 사회이자 기계만능의 합리주의 사회인 황야에서 우짖는 이리의 모습으로 더욱더 새로운 왕따를 보여준다. 이제 그 왕따는 전쟁과 과학, 금전 도취, 국수주의 등에 대한 절망을 거쳐 자아와 만나기 위해 지옥을 여행한다. 그래서 열정, 부도덕, 방황, 허무주의, 자살에 이르는 구토감을 경험한다. 그리고 <유리알 유희>는 집단이 아닌 왕따 개인을 중시하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1954년 77살의 헤세는 말했다. 자신의 작품들은 모두 개성의, 또는 개인의 옹호 또는 절규라고. 나는 그것을 자발적 왕따의 정신적 모험이라고 바꾸어 이해한다. 여하튼 개인의 옹호는 그의 문학만이 아니라 삶의 기본이었다. 자기 존재를 통해 그는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삶의 불멸성을 보여주었다.

부모든, 교사든, 언론인이든, 예술가든, 지식인이든, 그 누구든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그 개성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헤세는 말한다. 그 어떤 정치 슬로건이 아니라, 홀로 바르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발적 왕따를 키우는 일이다. 물론 그 개성은 결국 그 개인에 의해 찾아지는 것이지 누구도 그 개성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그 누구도 누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헤세는 자신을, 또는 다른 그 누구도 모범으로 살지 말라고 끝없이 경고한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헤세의 모습이 바로 그 점이다.

▶ 박홍규: 전 영남대 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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