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19) 루이스 세풀베다(1949~2020)

칠레 독재정권 피해 전세계 떠돌다
망명지 스페인서 코로나19로 숨져
자연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 고발

2005년 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루이스 세풀베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2005년 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루이스 세풀베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4월16일 새벽, 총선 결과보다 루이스 세풀베다가 스페인 망명지 병원에서 50일 동안의 투병 끝에 죽었다는 소식에 더 관심이 갔다. 향년 71. 나보다 세살밖에 많지 않은 세풀베다가, 권력과 자본에 전 탐욕의 인간들이 자연을 착취한 결과 태어난 코로나19라는 괴물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는 소식에 더 분노가 치솟았다. 코로나19는 흔히 말하듯이 박쥐를 비롯한 야생동물 탓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터전인 자연을 파괴한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괴물이다. 모든 전염병은 전쟁이나 빈곤과 마찬가지로 탐욕의 소수가 다수를 괴롭히고 죽이는 집단 살상이다. 세풀베다는 누구보다도 그런 탐욕을 거부하고 비판했기에 그 괴물에 의해 살해당했다. 반면 소수의 살상자는 죽기는커녕 호시탐탐 다음 살상의 기회를 노린다.

아나키스트 할아버지, 공산당원 아버지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 중부의 소도시 오바예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를 피해 칠레로 망명한 아나키스트이고, 아버지는 공산당원이어서 어려서부터 사회에 관심이 컸다. 특히 일요일이 되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벽에 오줌을 갈기게 한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체 게바라보다도 더 위대한 세계인'이 되겠다고 결심했음이 그의 작품 <파타고니아 특급열차>에 나타나 있다. 찰스 다윈이 젊어서 파타고니아 앞바다를 지나면서 항해기에 “우울한 고독들, 삶보다는 죽음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이라고 쓴 것에 대해 세풀베다는 “거짓말쟁이 영국인이 아무것도 못 보고서” 그런 거짓말을 했다고 반박하면서 그곳의 자연과 함께 그곳에 동화되어 사는 인간을 사랑으로 찬양한다.

산티아고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칠레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하면서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정치활동을 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진보정권 때는 문화부에서 대중을 위한 저렴한 고전 간행을 담당하다가 1973년의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로 2년 반 투옥됐다. 이후 앰네스티 독일 지부의 노력으로 조건부로 석방되어 가택 연금을 당했다. 이때 가택 연금에서 탈출해 1년 동안 숨어 살면서 친구의 도움으로 칠레 저항문화의 중심이 된 연극단을 만들었으나 피노체트 정권에 붙잡혀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이후 28년으로 감형)받았다. 앰네스티 독일 지부가 다시 개입해 8년의 유배형으로 축소됐고, 스웨덴에서 스페인 문학을 가르치기 위해 1977년 칠레를 떠났다. 도중에 경유지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다시 탈출하여 우루과이로 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정치 상황은 칠레 상황과 비슷해 브라질의 상파울루로 갔고, 거기서 또다시 박해를 받아 파라과이를 거쳐 에콰도르에 정착했다.

에콰도르에서 알리앙스 프랑세즈 극장을 감독하고 연극회사를 설립해 슈아르 원주민에 대한 식민지화의 영향을 조사하는 유네스코 탐험에 참여해 원주민들과 7개월을 함께 살았다. 이때 자신이 배웠던 마르크스주의가 자연환경에 의존하는 농촌 인구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며, 남미는 다문화 다국어 대륙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 그의 삶과 생각에 전환을 초래했다. 그곳 원주민 단체들과 일하면서 안데스의 임바부라 농민연맹을 위한 최초의 문해력 교육 계획을 작성하기도 했다. 1979년에는 니카라과에서 싸우고 있는 시몬 볼리바르 국제여단에 합류했고 혁명의 승리 뒤 기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1980년 니카라과에서도 추방되어 유럽으로 떠났다. 감옥에서 배운 독일어를 통해 독일 문학, 특히 노발리스와 횔덜린을 좋아하게 되어 함부르크로 가서 남미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기자로 일했다. 1982년부터 6년간 그린피스 배의 승무원으로 일했고, 뒤에는 그곳 여러 부서에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다.

40살이 된 1989년에 처음 발표한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 1992년에 프랑스에서 번역되어 베스트셀러가 된 뒤 여러 작품을 쓰고 많은 상을 받았다. 아마존에 사는 노인이, 침략자가 파괴한 자연을 회복하기 위해 총을 들고 숲으로 떠나는 과정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그린 이 책은 살해당한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시쿠 멘지스)를 기리는 소설이다. 2005년 한국에 왔을 때 그는 “멘데스는 아마존 정글에서 백인과 원주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옹호했고 다국적 기업에 대항한 아마존 주민들의 공동전선에 관해 말했다”며 이 작품을 쓴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무관하게 아마존 정글이라는 대자연과 그것을 파괴하는 ‘양키’ 세력에 대한 적대감의 리얼한 묘사를 통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조작한 ‘세계화’니 ‘지구촌’이란 말들이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에 사는 소수 부족의 삶과는 상관없이 단지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모더니즘의 착취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같은 해 발표된 <지구 끝의 사람들>을 더 좋아한다. 그린피스 배 승무원의 경험에서 그려진 그 작품에 나오는 선장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믿지 못하고 조그마한 탐욕 때문에 자연을 파괴하는 동료 인간들을 보며 “저는 때때로 돌고래가 인간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더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층 구조를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동물종입니다. 그들은 바다의 아나키스트입니다”라고 말한다.

화합 미명 아래 과거 망각하는 세태를 비판

1994년 작인 <귀향>은 고문이나 폭력과 같은 가장 비인간적인 학대로 엄청난 후유증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피노체트 독재체제가 끝난 뒤 칠레의 민주체제란 과거체제 옹호자들의 또 다른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가 화합’이란 미명 아래 지난 과거를 무조건 잊고 독재자들을 용서하자고 외치는 정치가들과 그런 망각에 동조하는 민중을 비판하는 작가는 진정한 화합이란 과거를 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되돌아보면서, 생존자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모두가 피해자임을 인식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1996년에 발표된 동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도 같은 맥락이다. 고양이 소르바스는 바다에 유출된 기름에 죽어가는 갈매기에게 세가지 약속을 한다. 갈매기가 낳는 알을 먹지 않고, 알을 잘 돌봐서 부화할 수 있게 만들며, 새끼 갈매기가 태어나면 나는 법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이었다. 소르바스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앞의 두 약속은 지키지만 새끼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인간과 소통해서는 안 된다는 고양이 사회의 금기를 깨뜨리고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인 시인에게 도움을 청해 날게 한다. “날개만으로 날 수 있는 건 아냐! 오직 날려고 노력할 때만이 날 수 있는 거지”라는 말에 새끼 갈매기는 난간을 박차고 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세차게 가르며 날아오른다. 소르바스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를 사랑하고 인정하진 못했어.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 하지만 이젠 다른 존재를 존중하며 아낄 수 있게 되었단다. 네가 그걸 깨닫게 했어.”

진정한 자유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대한 존중에서 비롯되며, 궁극적으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지구 자체에 대한 존중을 의미한다는 이 동화의 메시지는 세풀베다가 평생 추구한 가치였다. 코로나19는 그런 가치의 몰각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기후 변화를 포함해 자연을 존중하는 가치관의 회복이 없이 권력과 자본이라는 허상만을 좇는다면 인류는 코로나20, 코로나21 하면서 계속 그 숫자만 늘리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기후 변화가 가장 심각한 한국에서 그것이 코로나19의 근본적 대응의 차원에서 총선의 의제로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점은 우리 모두에게 앞으로 더욱 큰 짐이 될지 모른다. 지금 당장, 자가용이라도 멈추어야 하지 않을까?

▶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