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⑤ 토니 모리슨(1931~2019)

39살에 등단…“마흔살에 시작하라”
‘빌러비드’ 등으로 인종·성 차별 고발
트럼프 반대 등 현실정치에 목소리
토니 모리슨. AP 연합뉴스
토니 모리슨. AP 연합뉴스
지난 5일, 토니 모리슨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꼭 30년 전인 1989년 미국에서 그녀의 최고 걸작인 <빌러비드>(Beloved)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났다. 남북전쟁 직후 마거릿 가너라는 노예 여성이 노예농장을 탈출한 뒤 노예 사냥꾼들에게 추격당하자, 두 살짜리 딸이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죽이고 자살하기 직전에 체포당한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죽은 아기가 그 어머니와 가족을 괴롭히기 위해 ‘빌러비드’(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유령이 되어 찾아온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그 뒤 나는 그녀의 모든 작품에 열광했다. 노동법 수업 첫 시간에 나는 누구나 조선시대 말까지 인구의 30퍼센트 이상에 이른 노비의 후손일 수 있다고 하면서 <빌러비드>를 소개했다. 오랫동안 노예 문제를 다룬 문학이나 역사를 일부러 찾아 읽으면서, 모리슨이 199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그런 문학이 받은 최초의 영광이라는 점에서 좋아했다. 모리슨은 20세기 최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 허먼 멜빌이나 마크 트웨인처럼 평가되었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내 조상 노예들의 증언자였다.

미국 최고 소설의 하나 ‘빌러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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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오하이오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모리슨은 물론 노예가 아니었다. 그러나 조지아주에서 자란 아버지가 15살 때 백인들이 백주에 두 명의 흑인 사업가를 살해하는 것을 목격했을 정도로 20세기 미국은 여전히 준노예사회였다. 아버지는 그곳을 떠나 오하이오에 정착했지만, 모리슨이 두 살 무렵 집세가 밀렸다는 이유로 집주인에게 방화를 당했다. 그 이야기가 나오는 <솔로몬의 노래>처럼 가족은 절망하기는커녕 도리어 집주인을 비웃어 그 기괴한 악을 이기며 인간성을 지키고 주체적 삶을 주장했다. 전통적인 흑인 민화와 유령담 및 노래와 같은 민주적 문화를 통해 언어에 대한 감각을 심어준 부모의 지혜는 어려서부터 탐독한 제인 오스틴,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과 함께 그의 문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1949년 워싱턴 디시(DC)에 있는 유서 깊은 흑인 대학인 하워드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식당과 버스를 비롯한 공공시설의 인종차별을 경험하면서 현실을 더욱 뜨겁게 끌어안았다. 영문학으로 1953년 학사, 1955년 석사 학위를 받은 뒤 1957년부터 하워드대학교 등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결혼하면서 12살에 가톨릭 신자로 얻은 앤서니라는 이름에 남편 성을 따서 새 이름으로 삼았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두 자녀까지 낳았으나 가부장적인 남편과는 6년 만에 이혼해야 했다.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이라는 이중차별을 스스로 뼈저리게 체험한 모리슨은 뉴욕으로 이사하여 랜덤하우스에서 최초의 흑인 여성 편집자로 일하며 1970년에 첫 작품인 <가장 푸른 눈>을 썼다. 뒤에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충고로 “마흔 살에 시작하라”고 조언한 것은 3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등단한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모리슨이 1984년까지 17년간 편집자로 일하며 흑인에 대한 책을 낸 경험도 중요했다. 1973년에 낸 두 번째 소설인 <술라>는 흑인 여성이 그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에 우정으로 저항하는 이야기였고, 흑인 남성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행을 통해 흑인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는 내용의 세 번째 소설인 <솔로몬의 노래>(1977)는 버락 오바마가 자서전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그 책을 생애 최고의 책이라고 격찬할 정도의 걸작이었다.

처녀작에서와 같이, 외모지상주의자여서 흑인인 것이 싫은 흑인 패션모델 여성이 도리어 흑인이기에 행복한 가난한 방랑자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인 네 번째 소설 <타르 베이비>(1981)는 모리슨이 추구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었다. 이어 쓴 첫 번째 희곡인 <꿈꾸는 에멧>은 1955년 흑인 십대 소년이 백인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을 다루었다. 1987년에 낸 다섯 번째 소설 <빌러비드>와 함께 3부작을 이룬 <재즈>(1992)는 재즈 음악의 리듬을 모방한 언어로 뉴욕의 할렘 르네상스 시절의 삼각관계 사랑을 통해 노예의 역사를 복원했다. 그해에 그녀는 또한 첫 문학 비평인 <암흑에서의 연주: 백인성과 문학 상상력>을 출판하여 미국 백인 작가들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판했다. 199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에도 3부작의 마지막인 <낙원>(1998)을 발표하여 흑인의 자치공동체를 추구했다.

놀랍게도 21세기에 들어 70대의 모리슨은 <빌러비드> 여주인공의 삶을 다룬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다. 2003년에는 소설 <러브>를 썼고 2004년에는 인종 분리 공립학교를 위헌으로 선포한 1954년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대법원 판결 50주년을 기념하는 아동도서를 만들었다. 2006년 <뉴욕 타임스 북 리뷰>는 지난 25년간 출판된 미국 소설 중 최고 작품으로 <빌러비드>를 선정했다. 2008년에는 1682년 버지니아 식민지를 배경으로 한 소설 <자비>를 냈다. 2011년에는 셰익스피어 <오셀로>의 아내 데스데모나와 그 작품에서 간단히 언급된 아프리카 간호사 바버리와의 관계를 다룬 오페라 <데스데모나>를 제작했다.

그 뒤 아들이 죽어 소설 작업을 중단했다가 2012년 한국전쟁 참전 용사가 여동생을 백인 의사의 잔인한 의학적 실험으로부터 구하려고 한 이야기인 <집>을 완성하여 아들에게 헌정했다. 2015년에 출판된 마지막 열한 번째 소설인 <신은 아이를 돕는다>는 패션과 미용산업의 경영자가 짙은 피부로 인해 고통을 겪는 이야기로 처녀작을 연상케 한다.

저항의식 회복 강조

평생을 두고 차별에 저항했지만, 모리슨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유롭기 위해 닫힌 입장을 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어떤 사상에 속하기를 거부했다. 자기 작품을 페미니즘이라고 하지 않았으며, 가부장제를 거부하지만 그것이 모계제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노예해방 이후 흑인이 백인 사회에 편입되어 지배이데올로기를 추구하면서 재즈나 구전과 같은 선조의 저항적 가치를 잃어 정체성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보는 모리슨은 저항의식을 회복해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흔히 모리슨의 문학을 ‘시적 리얼리즘’이라고 하는 점에는 문제가 있다. 같은 시기에 등단한 앨리스 워커를 ‘비판적 리얼리즘’이라고 부르는 비평가들의 구별이지만, 모리슨은 ‘최고의 예술은 아름다우면서도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현실정치에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특히 빌 클린턴과 오바마를 지지했고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반대했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직후에 쓴 ‘백인을 위한 애도’에서 백인들이 인종에 의해 그들에게 주어진 특권을 잃는 것을 너무 두려워해 트럼프를 선출하면서 백인 우월주의를 살리기 위해 큐클럭스클랜(KKK)의 승인을 받았다고 비판했다.

모리슨이 죽자 오바마는 트위터에서 “모리슨의 글은 우리의 양심과 도덕적 상상력에 대한 아름답고도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추모했고, 오프라 윈프리도 인스타그램에 “모리슨은 우리의 양심이며 선지자, 진실을 말해주는 이였다”며 “그녀는 말의 힘을 이해한 언어의 마술사였다. 그 말을 이용해 그녀는 우리를 휘젓고 일깨웠으며 교육시켰고, 우리의 깊은 상처와 대면하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썼다. 윈프리는 모리슨의 <빌러비드>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노예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 수천년의 인류 지성사를 다시 집필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나는 모리슨을 필두로 노예문학이라는 문학의 한 장르를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임꺽정>이나 <장길산> 같은 영웅적 주인공이 등장하는 문학만이 아니라 <빌러비드>의 탈주 노예와 같은 평범한 노예들의 비통한 삶을 다룬 문학을 대망하는 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노예의 후예들이 사실은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홍규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