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운명처럼 한 권의 책을 만나
비전공자인데도 ‘수학책’만 10권 저술
수학사, 영화, 고전, 한글을 넘나드는
기발하고 재밌는 ‘수학 작가’ 김용관
지난 11일, 서울 동교동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난 김용관 작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지난 11일, 서울 동교동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난 김용관 작가.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그의 작업은 폐곡선을 가로지르는 선을 닮았다. 수와 계산의 변천사, 수학사에 한 획을 그은 데카르트와 피타고라스를 주인공으로 한 철학 소설들, 수학으로 보는 영화, 수학으로 읽는 고전, 수학사의 ‘위대한’ 오답들, 수학으로 본 한글, 그리고 우리말 속 수학적 의미 풀이까지 그는 수학 안팎을 넘나드는 주제로 지난 9년간 수학책 10권을 내놓았다. 김용관(48)작가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학교 밖에서 수학 분야를 16년째 파고 있다. 말 그대로 맨땅에서 삶을 수학으로 개척한 셈이다. 지난 1월 자신의 열 번째 수학책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생각의길)을 내놓은 그를,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경의선 책거리에서 만났다. 이날 서울 날씨는 ‘구름 조금’. 하늘엔 구름이 30~50% 끼어 있었다.

김용관 작가는 서른두살에 운명처럼 수학을 만났다. 대학에서 산업공학과를 전공하고 성공회대 엔지오(NGO)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2003년 한 대학원 선배가 <수학의 몽상>이란 책을 그에게 건넸다. 그때까지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던 그의 인생행로가 수학이라는 원과 접점에서 만난 순간이었다.

- <수학의 몽상>은 어떤 점이 와 닿았나요?

“고민이 많았어요. 나를 이해하고 싶었고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우연한 기회로 읽은 이 책은 근대 수학의 역사를 철학의 흐름과 맞물려 보여주는 책이었죠. 다른 인문학책을 볼 때보다 더 친밀하고 끌렸어요. 수학의 언어와 역사를 통해 내 세계관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처음엔 수학을 혼자 공부했어요. 그러다 성미산학교, 꽃피는 학교 같은 대안학교에서 수학교사로 일하면서 수학공부 모임이나 세미나에 참석했어요. 나중엔 어른들을 상대로 동네 도서관에서 수학의 역사 등을 가르치는 ‘수냐의 수학카페’라는 강좌도 열었죠.”

- 전공자도 아닌데 뒤늦게 뛰어들 만큼 수학공부가 매력적이었나요?

“사람들은 회화를 보면 화가의 느낌과 생각을 궁금해하잖아요. 색과 이미지를 보면서 말이죠. 수학에서 수와 공식, 이론을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수학자가 왜,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고 썼을까 궁금했어요. 그 개념들이 탄생하기까지 생각의 집합, 충돌, 궤적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죠.”

김용관 작가가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한 미술 전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용관 작가가 경의선 책거리에 있는 한 미술 전시관에서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그런 역사를 추적한 책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2017)이었죠? 가장 인상적인 오답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어떻게 될까’를 두고 오랜 세월 수많은 수학자가 굉장히 창의적이고 재밌는 답들을 내놨어요. 지금 보면 다 오답들이죠. 어느 수학자는 0으로 나누면 0이 된다고 했고, 누군가는 무한대가 된다고 했고, 어떤 수학자는 나누기 전과 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어요. 심지어 한 수학자는 0은 ‘절대적인 무(無)’이므로 0으로 나눌 땐 분모를 공란으로 비워 두자고도 주장했어요. 학생들이 생각할 법한 오답과 유사하죠.”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은 김용관 작가가 외국 논문 등을 추적해 열두 가지 주제에 관한 과거 수학자들의 기발한 오답들을 소개한 책이다.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이란 주제에선 7~19세기 수학자 9명이 내놓은 답들을 소개한다. 오답들을 딛고 찾아낸 정답은 ‘어떤 수를 0으로 나눌 수는 없다’이다.

- 학교에서 배울 땐 ‘그런가보다’하고 지나쳤는데 쉽게 찾아낸 답이 아니네요?

“학생들이 수업에서 ‘이거(답) 맞아요? 틀려요?’라는 질문을 정말 많이 해요. 맞는다고 하면 학생들은 한 문제 더 풀고, 틀렸다고 하면 거기서 그만두죠. 틀렸더라도 끝까지 가보는 것이 중요해요. 오답이면 왜 오답인지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게 수학이고 수학사였어요. 오답에서 배우는 오답의 긍정성이기도 하고요.”

- 가장 최근 발간한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을 쓰면서 어떤 단어들이 인상적이었나요?

“‘암산’은 한자로 ‘어두울 암’, ‘셈 산’인데, 암산의 반대말 ‘명산’(밝을 명, 셈 산)도 있을까 궁금했어요. 찾아보니, 실제 고려 시대 과거제도에서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 중에 명산과가 있더라고요. 오늘날 산수에 해당하는 시험을 봤죠. 그걸 발견하고 짜릿했어요. ‘할망구’라는 단어도 ‘바라볼 망’과 ‘아홉 구’를 붙여 ‘아흔을 바라본다’는 뜻이 있었어요. 지금은 비하의 뜻을 담아 쓰지만 원래 ‘할망구’는 아흔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인 81살을 뜻하는 것이었죠.”

김용관 작가가 쓴 책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김용관 작가가 쓴 책들.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은 일상의 단어들에서 수학적 의미를 발견하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스스로 곱한다는 뜻 ‘자승’(自乘)은 우리말로 ‘저의 곱’이다. 이를 줄여 ‘제곱’이란 말이 나왔다. 태반은 2/3, ‘모호’(하다)는 10의 ?48제곱이라고 지칭한 중국 수학책 <산학계몽>(1299)의 내용도 책에 소개한다.

- 슬하에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뒀다고 들었는데요, 아들은 수학을 잘하나요?

“아들은 운동과 랩을 좋아해요. 수학공부는 열심히 하진 않아서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어쩐 일인지 지난 겨울방학엔 수학을 배우고 싶다고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가끔 거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수학문제를 적어놔요. 문제에 대한 궁금증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려고요. 한 번은 ‘어떤 수를 0으로 나누면 답은?’이란 문제를 적어놨는데, 아들이 몇 주 동안 여러 차례 오답만 얘기하더니 결국 스스로 답과 그 이유를 설명해내더라고요. 기특했죠. 아들도 그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요.”

- 초등수학과 중학수학의 차이에 관한 책, <수냐샘의 중학수학, 이렇게 바뀐다>도 냈군요. 중학수학의 결정적인 특징은 뭔가요?

“단적으로 초등학교에서 수는 자연수, 분수, 소수를 배우는데, 중학교에선 갑자기 음수와 무리수가 튀어나오죠. 초등수학은 대상이 분명한 수학이지만, 중학수학부턴 추상화된 수학의 세계로 들어가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수의 개념을 머릿속에서 이해해야 하죠. 중학교부터 수학이 어려워져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수학을 발달시켰다. 수를 사과 한 개, 배 두 개와 같이 물리적 대상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단계를 넘어 1, 2와 같은 수 개념 자체를 다룰 것을 강조했다. 그 연장선에서 음수와 무리수가 탄생했다. 수학자들은 수백 년간 이에 반대하며 저항했다고 한다. 처음 접하는 음수, 무리수, 소인수분해, 함수 같은 개념들이 저항감을 주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중학교 수학 시간에 잘 삼켜지지 않았던 개념 몇 가지를 김용관 작가에게 물었다.

기자와 산책하며 인터뷰하고 있는 김용관 작가(사진 왼쪽).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기자와 산책하며 인터뷰하고 있는 김용관 작가(사진 왼쪽). 사진 윤동길(스튜디오 어댑터 실장)
- ‘(5-3)’이라고 쓰면 되는데 왜 ‘5+(-3)’라는 식을 쓰나요?

“음수의 계산을 배우는 과정이죠. 모든 걸 양수로 표현할 수 있으면 음수가 필요 없었겠죠. ‘작은 수에서 큰 수를 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같은 문제처럼 수 체계에 틈이 생겼을 때 그 틈을 메워야 할 필요 때문에 음수를 받아들인 거죠.”

- 루트는 왜 루트인가요?

“방정식의 답을 뜻하는 ‘근’도 뿌리라는 의미의 ‘루트’(root)라고 부르죠. x의 제곱이 2일 때처럼 근이 정수나 분수로 떨어지지 않을 때 그 근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수학자들이 고민하다가 그 근을 ‘루트 2’라고 표현하기로 한 거죠.”

- 함수는 왜 꼭 X가 Y 하나와만 대응해야 하나요?

“함수의 목적은 두 대상의 관계를 명확히 아는 거예요. 하나가 여러 개에 대응하면 그 관계를 명확히 알 수 없죠. 우리 세상사와 비슷하지 않아요?(웃음)”

223개 단어의 수학적 의미를 풀어낸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 책 중간 즈음 ‘소박’(素朴)이란 단어가 나온다. 한자 뜻 그대로 ‘바탕이 되는 성질’이다. 소박은 2, 3, 5와 같은 소수처럼 다른 것을 덧대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성질인 것이다. 김용관 작가에게 ‘10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냐’고 묻자 “둘 중 하나”라고 운을 뗐다. “매너리즘에 빠져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을 짜내는 순간 글쓰기를 그만둘 것이고, 내 나름의 관점과 메시지를 계속 전달할 수 있으면 독자들과 공감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어요.” 소박한 그의 꿈은 소수를 닮았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참고서적 <어느 괴짜 선생님의 수학사전>(2019),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2017), <수학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한 수학>(2016)

수학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으로 시작한 수와 양에 관한 학문. 인류 역사에서 철학, 천문학, 약학 등과 같이 가장 오래된 학문 가운데 하나. 자연과학이나 기술은 물론, 사회, 인문,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 발전에 공헌한 학문이기도 하다. 최근 수학책을 모여 읽거나 수학 수업을 듣는 중장년층들이 생겨나고 있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