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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 서지현 “피해자들이 행복해졌다면 제가 다시 언론에 안 나왔을 거예요”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9-01-03 (목) 11:36 조회 : 101
[표지 이야기] 올해의 인물 서지현 “피해자들이 행복해졌다면 제가 다시 언론에 안 나왔을 거예요”
한국 사회 미투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 이후 그동안 숨죽였던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얻고 봇물처럼 미투 폭로가 이어졌다. <주간경향>이 서 검사를 2018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이유다.



사법연수원에서 그가 검사를 지원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놀랐다. 어떤 이는 “지현아, 검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성적이 좋아야 해”라고 조심스레 알려줬다. 사법연수원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임관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애’ 정도로 여겨졌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공간에서 그는 유난히 잘 웃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눈에 띄었다. 

만 30세에 검사가 됐다. 2000명 검사 중에 여자 검사는 100명 남짓 되던 시절이었다. 한 부장검사가 “너처럼 생긴 애 치고 검사 오래하는 애 못봤다.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속상한 마음에 선배에게 털어놓자 선배는 “그 부장이 거짓말한 거야. 지금까지 너처럼 생긴 검사는 없었어”라고 말했다. 긴 웨이브 머리에 작은 체구, 서지현 검사(45) 이야기다.

그는 2018년 1월 생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이 성추행과 부당인사를 당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미세하게 떨렸다.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는 모습이 화면상으로도 확연했다. 서 검사의 고발은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국면으로 이어졌다. 온갖 분야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 한국 사회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서 검사 개인의 힘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올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미투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많은 여성들이 성희롱·성추행을 당했다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법을 다루는 사람이, 그것도 직업 자체로 권력인 검사가 성추행을 당했고 자신의 힘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 주간경향>은 서 검사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선뜻 인터뷰에 응했다. 1년 동안 바뀐 게 없고 피해자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전화로만 소통하다 실제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는 “어머~”라는 감탄사와 함께 기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언론에 비춰지지 않던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는 스스로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이토 시오리 기자는 “서 검사에게 처음 연락을 했을 때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해서 놀랐다. 따뜻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인터뷰도 그런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는 대체로 잘 웃었다. 무거운 질문에는 시선을 멀리 둔 채 답했다. 

-언제 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법조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중학교 무렵이에요.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일,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버지가 ‘검사는 양심에 따라 일을 하면 되는 사람이다’라며 권하셨고, ‘검사는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다’라는 검찰시보 당시 지도검사님 말에 감명을 받아 검사를 지망했어요.” 

서지현 검사가 지난 2월 4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서지현 검사가 지난 2월 4일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아버지 말씀이 인상 깊은데요. 보통 그런 이야기는 잘 안하지 않나요?

“그런가요?(웃음) 아버지는 ‘목숨을 잃을지언정 불의와 타협할 수는 없다’는 분이셨어요.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 맞고 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는데 부모님은 달랐어요. 언니가 학교에서 맞고 왔던 날 부모님이 학교에 전화를 걸어 강력하게 항의했던 기억이 나요. 아버지는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셨어요.”

-학창시절도 궁금합니다.

“학창시절 몸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체력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요. 아플 때는 집에서 쉬거나 엄마랑 놀았고요. 그러다 몸이 좀 괜찮아지면 공부하고 그랬어요.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서지현 검사’라고 하면 정의롭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방송 인터뷰 후에 ‘용감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처음 JTBC 인터뷰에 응한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였어요. 살아오면서도 특별히 정의감이 강하다는 생각은 안 했고요. 사실 수줍음이 많고 소극적인 성격입니다.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해서 검사생활 할 때도 ‘이건 정말 양심에 반한다’고 생각될 때만 종종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체력이 안 좋은데 검사생활은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러게요. 주제파악을 했어야 했는데”라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주제파악’이라고 하기엔 일을 너무 잘했다. 한 번 받기도 어렵다는 법무부 장관 표창을 2009년, 2012년 두 차례 받았다. 우수수사 사례로 선정된 게 12번이고 미투 직전인 2017년에만 6차례 상을 받았다.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했나요? 

“책임감이죠. 초임 때는 한 달에 400건 정도 사건을 처리했어요. 최근에는 200~250건 정도 처리했고요. 제게는 그 일이 수백 건 중에 하나지만 당사자는 평생에 한 번이잖아요. 여검사 개개인이 전체 여검사를 대표할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2004년에 여검사가 처음으로 100명이 넘었는데 난리가 났어요. 이제 검찰 조직은 망했다고 대놓고 이야기하더라고요.”

-15년 전이면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성차별을 거의 못 느꼈어요. 형제가 언니밖에 없어서 집에는 딸만 있었고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거든요. 그런데 딱 30세에 검사가 돼 사회에 나와보니 차별이 너무 심한 거죠. 여자 검사는 남자 검사의 보조적 역할 정도로만 여기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에 많이 놀랐어요.” 

-나이가 어리다보니 특히 초기에 차별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첫 발령지가 홍성지청이었어요. 70세가 넘은 범죄예방위원이 ‘여자 검사는 처음 봤다’고 말했어요. 동료는 물론이고 피의자로부터 받는 차별도 만만치 않았어요. 한 번은 주말에 피의자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제 신분을 밝히고 상황을 설명했는데 피의자가 한다는 말이 ‘야이 ○○아, 니가 검사면 나는 대통령이다’ 이러더라고요.” 

그는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냥 검사가 아니라 ‘결혼 안 한 어린 여자’라는 수식이 붙는 게 싫었다. 무시받지 않겠다는 생각에 큰소리를 내며 수사도 해봤다. 그게 자신에게는 별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내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 때문에 자백할 사람은 없겠구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상대의 말을 듣는 것과 증거를 수집하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어떤 이유로도 범죄는 합리화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되도록 만든 환경도 간과하지 않으려 했다. 고소인으로부터 “검사님, 범죄자 말을 왜 이렇게 잘 들어주냐. 나쁜 놈인데 혼내주셔야지”라는 농담 섞인 원망까지 들어봤다. 

어느 청에서든지 실적이 3위 밖에 난 적이 없다. 2007년 여관 강도사건 범인을 공소시효 6시간을 앞두고 검거했고, 2010년 청원경찰 친목단체 청목회의 국회의원 뇌물비리를 파헤친 ‘청목회 사건’을 맡아 여야 국회의원 11명을 기소했다. 


“범죄자 말을 왜 친철하게 들어주냐”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이후 온갖 음해가 쏟아졌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업무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업무능력과 성폭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말에 흔들렸다. “저는 제 업무실적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지만 업무실적이 안 좋았던 사람은 범죄피해를 입어도 되나요? 그리고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는 건가요?” 

서지현 검사가 12월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 >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지현 검사가 12월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JTBC 뉴스룸 첫 인터뷰 이후 언론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았는데요.

“출근을 안 하니까 거의 집에만 있었어요. 한 달 전쯤 ‘사람들은 서 검사가 굉장히 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좀 있어라. 이제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라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거든요. 더 이상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를 정도로요. 가해자에 대한 1심 판단도 나지 않았는데 뭐가 그만하면 됐다는 건지. 화가 났어요. 다른 사건도 마찬가지예요. 사건이 해결되어서 피해자들이 행복해졌다면 제가 다시 언론에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최근 인터뷰가 잦은데 건강은 괜찮은가요? 

“원래 몸이 약한 편이에요. 그런데 어디가 아픈지 이야기하기는 싫어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바라는 것 같아서. 잘 먹고 잘 자라고 하는데 원래 먹을 거에는 관심이 없고 잠은 크게 신경을 안 써요. 통영지청으로 발령 나고 부당인사를 당했다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비유적 표현이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못 자면 죽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 죽더라고요. 그래서 자도 그만 안 자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박창진 대한항공 전 사무장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공식 행사에서 처음 보고 이후 개인적으로 한 번 만났어요. 사무장님이 이야기를 하면 제가 울고 제가 이야기를 하면 사무장님이 울었어요. 다른 곳에서 다른 사건을 겪었는데 너무 비슷했어요. 저는 아직도 마스크를 안 쓰면 밖에 못 나가요. 그런데 사무장님은 당당하게 행동하시더라고요.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죠. 또 저는 이용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사무장님이 ‘내가 이용당해서 대한항공의 근로환경이 나아지고 갑질문화가 사라진다면 충분히 이용당해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충격받았죠. 지금은 체력과 정신력이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이용당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개인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이 검사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더 크게 들어주고, 그래서 제가 다른 피해자들을 대신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선천적으로 밝고 잔걱정 없는 성격 덕에 버텨내고 있지만 너무 힘들어지면 한국에서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토 시오리 기자가 일본을 떠나 런던에서 살고 있어요. 떠나게 된다면 따뜻한 기후의 나라로 갈 것 같아요.”

-시간을 되돌려도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습니다만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 것 같나요. 

“사표를 내고 조용히 가족들과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거예요. 힘들어서 도저히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친한 후배들에게 ‘나는 검사도 변호사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것이다. 이 파렴치하고 비열한 인간들이 너무 신물이 난다’고 말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어와요. 복귀는 할 것이지만 사실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미련이 없어요. 제가 진실을 알고 신이 제 진심을 아니까요. 힘들 때는 또 다른 우주의 또 다른 나는 평온하고 고요한 삶을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는 ‘성선설’을 믿어왔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태근 전 검사에게 당한 성추행을 언론에 알리기 전에 조직 내에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 상사는 피해를 호소하는 서 검사에게 “대체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냐”고 열 번 넘게 물었다. 가해자가 권력자였기 때문이다. 그때 느낀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힘들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어둠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둠 속에서 몸부림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촛불을 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즐거운 생각을 하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 즐거운 생각, 행복한 생각은 뭐냐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았다. “소중한 걸 말하면 그들이 빼앗아갈까봐”라는 게 이유였다. 

그가 사건을 고발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여전히 당시 상황은 어땠는지, 왜 8년이나 지나서 이야기를 꺼냈는지, 정치를 하려는 것 아닌지 등의 질문이 날아온다. “세상이 얼마나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자기 경험으로 세상에 우리 같은 피해자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하겠거든 제발 상상력이라도 좀 키우라”고 답했다.

3시간이 넘는 인터뷰가 끝나고 그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제가 검찰청에서 취미생활이 후배들 고민상담, 연애상담 이런 거였으니 언제든 달달한 거 드시고플 때나 세상에 욕하고 싶을 때나 남자친구가 속 썩일 때 연락주세요.” 인터뷰 내내 그가 보여줬던 모습과 어울리는 따뜻함이었다. 

< 글·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사진·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artid=201812241413101&code=115#csidx2e0d6479c7715fcb31afc3e1e563e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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