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인터뷰
블랙리스트 판사 1호 서기호 변호사

“사법농단 판사 솜방망이 징계 한심
행정처에 현직 판사 상근제 없애야”

‘가카 빅엿’ 페이스북 발언 2년 전
촛불 재판 개입한 신영철 사건 때
법원장이 불러 “요주의 인물” 경고

“존경받는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본격적으로 잘해보려고 하던 참에 나가라고 하니 참 황당했죠.”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상록’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존경받는 판사가 되는 게 꿈이었죠. 본격적으로 잘해보려고 하던 참에 나가라고 하니 참 황당했죠.”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에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 변호사가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상록’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서기호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에게 찍혀 2012년 강제로 판사 옷을 벗었다. 당시에도 ‘비판적 판사에게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최근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서 법원행정처가 서기호 당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사실상 기획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나 사법농단 실태와 법원 민주화 등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법정에 두번 선 적이 있다. 한번은 제2금융권의 한 회사가 고정금리 계약을 어긴 채 일방적으로 올린 금리에 대해 소액 소송을 제기했을 때(원고)였고, 다른 한번은 선거운동 한달 동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을 때 이를 깬 기사를 썼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당했을 때(피고)였다. 지금은 상당히 나아졌지만, 당시 판사는 원고든 피고든 법정의 당사자에게 말할 기회를 거의 주지 않았다. 태도도 고압적이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기자에게 ‘비폭력대화법’을 페이스북 등에서 전도하고 자신의 법정에서도 이를 적용하는 판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비폭력대화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공격적인 폭력성을 제거하는 대신에 공감하고 배려하는 대화를 말한다. 상대의 말을 먼저 있는 대로 들어주고 이해하는 게 필수적이며, 상당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법정에서 결코 쉽지 않은 대화법이지만, 그런 시도 자체야말로 소중하게 여겨졌다. ‘가카 빅엿’이라는 유행어로 대통령(이명박)을 비판했다가 2012년 초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던 서기호(48·호칭 생략)가 바로 그 판사였다.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2012년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2012년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법원행정청의 서기호 찍어내기 문건

-요즈음 어떻게 지내나.

“국회의원 끝나고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2년간 일했는데 잘 안 돼서 접고, 지난 8월부터 법무법인(상록)에서 일하고 있다. 요새 변호를 맡은 사건은 미투 1호였던 서지현 검사 건이다. 공익적인 성격이 강한 사건이어서 저한테 딱 맞다.”

-최근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 과정에서 2012년 서 변호사의 판사 재임용 탈락이 기정사실화 돼 있었던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데.

“며칠 전에 검찰에 조사받으러 갔을 때 보니까 2012년 2월1일자로 작성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에서 만든 문건이 있더라. 내가 재임용 탈락을 통보받은 날이 2월10일인데 그 열흘 전에 이미 탈락을 기정사실화해 놓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웠던 내용이다. 제가 법관인사위에 출석해서 소명하고 한 게 다 형식적 절차였던 셈이다. 당시에도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어서 확실히 말을 못했는데, 이번에 드러나는 증거를 보면서 법원이 정말 이렇게까지 했구나 싶어서 정말로 참담하다.”

서기호는 2011년 12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들을 심의하겠다고 하자 이를 비판하며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심의하면 할수록 감동과 훈훈함만 느낄 것이고, 촌철살인에 감탄만 나올 것이다. 앞으로 분식집 쫄면 메뉴도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라는 글을 올렸다. <조선일보>가 이를 1면에 보도하면서 타킷이 됐고, 이듬해 2월 그는 재임용에서 탈락됐다. ‘가카 빅엿’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나꼼수’가 만든 캐롤송 ‘쫄면 안 돼’ 노래 가사의 일부였다.

-재임용 탈락 때 ‘가카 빅엿’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사실 저에 대한 찍어내기는 그보다 3년 전인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터졌을 때 그에 대한 문제 제기가 출발점이었다.”

신영철 당시 대법관이 2008년 서울 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관련 재판을 특정 판사에게 몰아주기 배당을 하는가 하면 재판을 빨리 끝내라고 판사들에게 압력을 넣은 사실이 2009년에 밝혀졌다.

-당시 서울지법 판사였던 서 변호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과 판사회의에서 신영철에 대한 징계를 요구한 것 때문인가.

“징계 요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법원 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린 사람은 20명이나 됐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의견 개진을 하는 정도였다면 저는 글만 올린 게 아니라 판사회의 개최를 주도적으로 요구하고, 법원 사무분담에 관한 법원장의 권한 축소 등 제도 개선도 촉구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저는 선동자이자 주동자급이었다. 게다가 법원행정처에서 신영철 재판관 문제를 미봉하기 위해 무슨 제도개선 티에프를 만든다면서 나보고 일선 판사 대표로 참석해달라고 요구했는데 거부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속셈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판사들은 그 정도 선에서 수용하고 마는데 저는 저항했으니 그때부터 내쫓으려고 작심했던 것 같다.”

-찍혔다는 기미를 느낀 것은 언제인가.

“2010년 초에 서울 북부지방법원으로 인사 이동이 있어 갔더니 법원장(고 박삼봉)이 처음부터 ‘서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 사건 때 나선 것 때문에 요주의 인물이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하더라. 그 뒤에 제가 재판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예를 들어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고 연습해서 재판에 적용해 보고 이를 확산시키려고 하면 그런 것을 왜 하느냐고 막았다.”

2012년 2월 17일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서 그를 지지하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힘 회원들이 선물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2년 2월 17일 재임용 탈락으로 법원을 떠나는 서기호 판사가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앞에서 법원노조와 시민들이 열어준 퇴임식에서 그를 지지하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힘 회원들이 선물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1년 판사 첫 언론인터뷰 이어
페이스북 등 통해 ‘표현 자유’ 길 터
비폭력대화법 재판 적용 등 실험

“탄핵돼야 할 사람을 차관급 대우해” 판사 재임용 탈락은 1997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었다. 서기호가 법원을 떠나던 2012년 2월17일 서울 북부지방법원 정문 앞에서는 북부지법 직원들과 시민들이 연 ‘국민 퇴임식’이 열렸다. 그의 구명을 바라는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회원들은 이날 서기호에게 자신들이 만든 ‘국민법복’과 ‘국민법관’ 임명장을 전달했다.

-재임용 탈락은 개인적으로는 고난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두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판사 등 법조인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는 측면이다.

“검찰도 마찬가지지만 법원 수뇌부는 개별 법관의 표현의 자유에 매우 인색하다. 법원이 통일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저는 판사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사회적 이슈나 쟁점에 대한 자기 견해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활동도 그런 차원이었다. 2011년 12월 쯤엔가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난 뒤 CBS의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이건 팩트에 가깝고, 저도 많이 반성이 됐다, 앞으로 저렇게 해서는 안 되고, 공개재판이니 녹음도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현직 판사가 그런 인터뷰를 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법원 내부가 시끄러웠겠다.

“당시까지만 해도 공보관이 아닌 판사가 스스로 외부 인터뷰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여기던 때다. 며칠 뒤 법원장이 불러서 갔더니 법원의 공식 입장과 다른 것을 인터뷰하면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 당시 차한성 행정처장이 ‘부러진 화살은 허구다, 실제 재판을 그렇게 진행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찍힐 줄 알면서도 그랬나.

“사실을 얘기하는 거니까 설마 찍히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그런 나의 행동은 책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웃음) 책을 읽다보니 폭이 넓어지고, 용기와 지혜가 좀 생겼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면서 살고 싶었다.”

-지금 판사나 검사들의 표현의 자유가 많이 나아졌다.

“그렇다. 지금은 판사들이 자유롭게 실명으로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인터뷰도 하고 있다. 검사들도 과거에는 허가를 받아서 언론 인터뷰를 했지만, 지금은 신고만 하면 된다.”

서기호는 1997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2000년 제주 지방법원 예비판사로 법원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 뒤 인천지법과 서울남부지법을 거쳐 2008년부터 서울지법 민사단독 판사로 일했다. 2009년 신영철 사건이 불거졌을 때 그는 서울지법 단독판사 대표 2명 중 한명으로, 문제 제기에 앞장섰다.

-법원의 행정권력에 대한 통제 즉, 법원 민주화 문제도 서 변호사가 제기했던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최근 제안된 사법 개혁안이 대법원에서 많이 후퇴하는 등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대법원장 일인에게 집중된 사법행정 권한을 사법행정회의라는 합의제 기구에 이양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행정회의에는 외부인사가 절반 들어가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처에 현직 판사가 상근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사법발전 방안이 현직 판사들의 반대로 대법원에서 대폭 수정됐다. 이름만 행정처에서 사무처로 바꿀 뿐이지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원래 사법발전위원회 후속추진단(단장 김수정)이 마련한 안대로 가야 한다.”

-사법행정 권력을 휘둘러 재판에 개입하는 등의 사법농단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징계도 솜방망이에 그쳤다. 법원이 뼈를 깎는 자성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징계에 회부된 사람 중 이민걸, 이규진, 박상언, 정다주, 김민수 등 최소 5명은 관여 정도가 심해 징계가 아니라 탄핵 대상이다. 그런데도 6개월 정직과 감봉 처분에 그쳤다. 또, 2명은 아예 불문에 부쳤다. 법원 스스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직을 받은 사람은 그 기간이 끝나면 일선 판사로 복귀가 가능하다. 그들은 고등부장이기에 관용차 지급 등 차관급 대우를 계속 받게 된다. 기가 막힌 일이다.”

1970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서기호는 3남1녀 중 셋째다. 그는 네살 때부터 2년 간 부산의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없어 적적했던 작은 어머니가 데려다 키웠지만, 어린 그에게는 심리적인 트라우마가 됐다. 목포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뒤 1988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1학년 2학기에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 들어간 가톨릭학생회 활동에 푹 빠졌다. 2학년 때는 동아리 대표, 3학년 때는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4학년 때는 전국 조직을 만들었다. 1991년 여름 경희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에 참석하려다 경찰의 검문에 걸려 집시법 위반 혐의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받기도 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95년 복학했을 때는 “사회운동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서기호 변호사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법원 민주화를 위해서는 우선 행정처에 상근하는 판사부터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서기호 변호사는 지난 26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법원 민주화를 위해서는 우선 행정처에 상근하는 판사부터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재심해 이긴 뒤, 스스로 사표 내고파”

-서 변호사야말로 사법농단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문건으로 속속 나오고 있는데 구제받을 길은 없나.

“현행법상으로 재심은 안 된다. 재심이 가능하려면 제 재판의 재판장이 직무와 관련된 범죄를 저질렀어야 하는데 그런 혐의는 아직 없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을 허용하는 특별법이 제정돼야 가능한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어 20대 국회에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21대 국회에서라도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저는 설령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재심에서 이기더라도 판사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다. 승소하더라도 바로 사직서를 낼 것이다. 여러 활동을 해보니까 판사로 재판하는 것도 좋지만, 법원 밖에서도 할 게 너무 많더라.”

-재임용에서 탈락한 뒤 정의당 비례대표로 4년 간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는데 다시 정치할 생각도 있나?

“정치도 법원 밖 활동의 한 영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4년 간 정치를 해보니까 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문영역이더라. 준비가 된 사람이 해야 하고, (정치에) 맞는 사람이 해야 한다.”

서기호는 가정에서도 아들 두명이 사춘기를 지날 때 “불화한 적이 없”었다. 비폭력대화의 힘이었다. 최근에는 명상에도 입문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동안 ‘싸움닭’ 또는 ‘튀는 판사’라는 험담에 시달렸다. “사건 처리하는 공무원이 아니라 존경받는 판사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을 짓밟은 자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였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